[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주말 한 전직 중앙일보 기자의 SNS 글이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십 년 전 저는 중앙일보 기자였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서 시위대 반대편에 서고, 용산 참사 유족 분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를 취재했습니다. 나이 서른에, 메이저 언론사로는 아마도 처음으로 애엄마 수습기자로 들어가, 조직에 충성하고 선배들의 사랑을 받고자, 제 손에 여러 번 피를 묻혔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자신이 과거 취재·보도한 일련의 기사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의 글은 자기연민에 가까웠다. 그는 이 같은 기사를 쓰게 된 원인으로 '조직'과 자신의 '재능'을 언급했다. '나를 아끼던 데스크가 만약 진짜 나의 모습을 알았다면 결코 시키지 않았을' 취재 지시를 내렸고, "제가 쓴 것들과 쓰지 않은 것들로 세상의 모든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상반된 성향의 사람들이 비밀을 털어놓게 만드는 종류의 재능' 때문에 이중간첩의 심정으로 울며 기사를 썼다고 했다. 그의 게시물에는 그를 위로하고, 걱정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이 글은 내부고발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중앙일보는 당시 간부 및 데스크들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보도는 허위기사가 아니며, 기자의 취재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기사일 뿐 데스크의 사주나 지시로 작성된 것들이 아니라는 공식입장을 냈다. 기자는 조직논리에 따른 악의적 기사의 '업보'를 토로하고, 조직인 언론사는 이를 부인하는 형국이 그려졌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숱한 가해자들의 '사과 아닌 사과'와 이에 2차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 당사자들을 목도하며 단순하고도 확고한 사과의 원칙을 정립해왔다. 자신의 잘못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사회는 이를 '진정성 어린 사과'라고도 부른다.

'사과 아닌 사과'의 전형적 사례는 자기연민이다. SNS는 이를 더욱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한다. 그의 글에는 자신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게 만든 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다. 피해 당사자에 직접 사과했다는, 혹은 사과할 것이라는 얘기도 없다.

중앙일보 2008년 8월 8일자 <15일 이후엔 촛불집회 주최 않기로>, 2009년 3월 16일자 <정부 "용산 유족에 위로금 주겠다">, 2009년 4월 10일자 <노건호, 미국 유학 중 월세 3600달러 고급주택가서 살아>.

그는 2009년 3월 16일 용산구청과 경찰이 참사 유족에 위로금 지급을 제안하고 유족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그는 "단독 입수한 경찰 문건에 따르면 '용산구청과 경찰은 사망한 양희성 씨 유족에 1억 5000만원, 이상림 씨 측에 7000만원 등 2억 2000만원의 위로금을 제안했다'고 명시돼 있다"며 "유족 측은 '사과 표명과 함께 정식 절차를 밟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는 "수배 중인 남경남 전철연 의장 측도 '장례 절차를 조기에 마무리하는 데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민변의 한 변호사가 수배 중인 남경남 전철연 의장 측의 메시지를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유족은 하루 사용료 300만원이 넘는 장례식장 비용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범대위가 5일부터 모금운동을 벌였지만 열흘간 인터넷을 통해 접수된 돈은 160만원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에 당시 용산범국민대책위는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라며 "문건에 나타난 경찰 측 대응은 전형적인 '내부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논평했다. 기사에 언급된 고 이상림 씨의 유족 정영신 씨는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유족들과 기사를 함께 봤는데, 말 같지도 않고 대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전철연의 한 간부는 "남경남 의장의 메시지 운운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범대위의 비판에 그는 "문건에 따르면 유족 측을 대리하는 중개인이 비공개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보상금도 보도한 것처럼 명시되어 있다"며 "민변의 한 변호사가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확인된 사실관계다. 문건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2008년 8월 8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15일 광복절을 기점으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더 이상 주최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완전한 허구"라며 "대책회의 관계자 중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한 사람이 없다. 내부에서 이에 대한 논의조차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그는 "기사 내용 모두 사실이기 때문에 표현과 내용에 대해 정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2009년 4월 10일 '노건호, 미국 유학 중 월세 3600달러 고급주택가서 살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미국 유학 중이던 지난해 봄 실리콘밸리의 고급주택으로 이사했던 것으로 9일 확인됐다"며 노 씨에 대한 스탠퍼드대 유학 자금 출처 의혹을 제기했다. 그가 '꼴보수 아버지'의 "거, 그만 해라"라는 전화에 "알아요. 근데 멈출 수가 없어요. 제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답한, "그 집이 그다지 비싼 집이 아니고, 그 자동차가 그렇게 비싼 차가 아니며, 그 골프장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 건 저도 알고 저의 데스크들도 모두 알았습니다"라고 한 기사다.

그는 SNS 글에서 "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습니다만, 사과할 때를 놓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직접 피해 당사자를 찾아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다. 그저 SNS에 "죄송합니다", "평생 동안 몇 번이고 계속해서 사죄하고 참회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저는 역사의 죄인이며, 그 트라우마를 안고 어떤 방법으로든 평생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글이 SNS상에서 회자되고, '양심고백'으로 기사화되기 시작하자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자신의 SNS에 생각을 밝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주말 뜬금없이 용산참사 유가족 보상금 운운하는 2009년 기사가 sns에 올라왔다. 전 중앙일보 기자의 자기 고백?, 변명?... 그의 글을 읽게 되었다. (중략) 늦었지만 반성적 고백인지, 자기위안을 위한 늦은 변명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어느 한쪽만은 아닐 거다. 괴로웠겠지. 그리고 지금은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으니 과거 잘못을 이해받고 싶고 털어버리고 싶었겠지. 그냥 씁쓸했다.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부터 그의 글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거짓기사를 쓰도록 조정한 사람들을 수사'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개설되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문까지 냈다. 누군가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입장이 있어야하는 건 아닌지, 청와대 청원에 동참을 호소하며 쟁점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기 싫다. 진상규명을 위해 그 때의 기억들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지만, 저런 기억까지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다. 355일,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며 겪었던 숱한 모욕들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도 '때를 놓쳤다'는 사과를,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우린 아직 제대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그의 글과 중앙일보의 입장에서 여전히 보도 피해 당사자들은 배제되어 있다. 누구도 피해자보다 더 슬프고 억울할 수 없음에도,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SNS와 지면상에서는 각자의 억울함만이 성토되고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은 자신의 책 '타인의 고통'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고통 받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처절하게 되돌아봐야 하는 시대, 가해자의 자기연민 전시와, 그 자기연민에 보내는 또 다른 연민과, 가해자가 인정한 가해사실을 부인하는 조직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는 자신을 '언더그라운드의 수잔 손탁'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과거 기사가 잘못됐음을 시인한 지금, 늦었지만 그가 해야할 일은 보도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이다. 중앙일보는 과거 기사는 잘못됐으며 조직논리가 작용했다는 전직 기자의 증언이 나온 만큼 '간부와 데스크들에게 확인한 결과'라는 입장을 낼 것이 아니라, 언급된 기사의 취재와 보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면밀히 검증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는 것이 공신력 있는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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