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허위·외압 논란이 제기된 KBS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을 둘러싸고 열린 세 차례 보도위원회에서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취재가 부실했다는 정황과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보도위원회 책임자 측 위원인 이영섭 KBS 보도기획부장은 보도위원회 논의 과정을 밝히며 이번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실무자 측 주장을 반박했다. 이 부장에 따르면 '시사기획 창' 실무자 측은 취재 당시 태양광 사업 관련 부처 차관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는 보고가 허위보고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달 18일 KBS '시사기획 창'은 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 발전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저수지 태양광 패널의 면적 제한이 청와대 관련 TF 회의 이후 대폭 완화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60% 한 데를 보고 박수를 쳤거든. 그러니까 차관이 '사장님 30% 그것도 없애버립시다' 그래요"라고 했다.

또 제작진은 최 전 사장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우편함엔 국민정치연구소 민주연대라고 붙어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쓰던 사무실"이라고 방송했다. 이에 청와대는 태양광 시설 완화의 배경에 대통령이 있다는 등의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KBS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편 방송화면 갈무리.

9일 이 부장은 KBS 사내게시판에 <'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 보도위원회 책임자 측 위원으로서>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부장은 "그간 3차례에 걸쳐 열린 보도위원회에서 책임자 측 위원으로서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며 "보도본부의 건강한 소통과 해결점을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설명되지 못한 사실관계 등을 밝힌다"고 말문을 열었다.

보도위원회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부분은 반론 문제였다. 최 전 사장 인터뷰 내용에서 언급된 모 차관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절차가 있었는지, 차관의 반론은 프로그램에 필요한 사안이었는지 등에 대한 판단 부분이다.

이 부장에 따르면 프로그램 제작자는 차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는 취재 당시 보고가 허위보고였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최 전 사장이 정부 태양광 사업 추진에서 핵심 관계자인 만큼 반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부장은 "제작진은 '차관의 반론이 필요했는가?'라고 묻는다. 제작진은 성명에서 '최규성 사장의 녹취가 해당부처 차관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다면 차관의 반론이 필요했겠지만'이라고 주장한다"면서 "최규성 사장의 녹취는 해당 차관을 공격하는 내용이 될 수 있어 반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마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중앙부처 차관이 중요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이 부장은 최 전 사장이 정부 사업의 핵심 관계자였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제작진에 대해 "그렇다면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전언'을 듣고 어이없는 결정을 했다는 차관은 최규성 사장보다 더더욱 중요한 '핵심 당사자'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KBS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편 방송화면 갈무리.

'최규성 사장의 사무실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쓰던 사무실'이라는 보도내용에 대해서도 양측 입장은 엇갈렸다. 제작진은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며 '청와대의 말은 믿고, 후배 기자의 말은 믿지 못하나'라고 주장한 반면, 이 부장은 "책임자 측 위원으로서 그보다는 노영민 실장이 비리 복마전으로 묘사된 태양광 사업과 어떻게 연루가 돼 있었는지에 대한 흔적들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며 그 부분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 부장은 "제작진이 성명서에서 규정했듯 현 정권의 측근이 연루된 비리 의혹을 고발한다는 취지는 100% 동감하지만 그에 걸맞게 충분한 정황증거나 그렇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보도위원회에서 책임자 측은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상대(청와대)에 대응할 수 있지 않느냐며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더라도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 시간을 주면 노영민 실장이 복마전 태양광 사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취재해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부장은 ▲2018년 3월 농어촌공사가 태양광 패널 저수지 설치와 관련, '저수지 면적 대비 10%'라는 내부지침을 자체 폐기한 후 농림부의 요청 등으로 지난 4월 복원한 점 ▲최혁진 청와대 사회경제비서관과 관련된 2개의 협동조합이 태양광 사업 보조금을 많이 받았다고 했으나, 오히려 현 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사업보조금 수령액이 줄어든 점 ▲청와대 TF회의 시점(2018년 4월~6월)과 문재인 대통령이 박수치고 좋아했다는 시점(새만금 에너지 비전 선포식, 2018년 10월 31일)을 고려했을 때 발생하는 모순 등을 언급하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 부장은 "상대가 청와대라고 보도본부 책임자들이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청와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다룬 방송에 문제가 있다며 항의해 오면 책임자 측은 당연히 '리뷰'를 한다"며 "제작진도 마땅히 응해야 한다. 기자 개인의 사적인 이름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KBS의 이름을 걸고 언론중재위와 자칫 재판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부장은 "상대측(청와대)에서 앞으로 공식적으로 언론중재위 신청을 해 오면 제작진은 보도위원회 등에서 강조해온 바대로 ’프로그램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반론보도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KBS 사옥(KBS)

이 부장이 밝힌 보도위원회 논의 내용과 앞서 양승동 사장이 밝힌 입장 등을 종합해 보면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을 둘러싼 논란은 제작진에 제기된 부실취재 의혹뿐만 아니라 KBS의 보도 시스템에 의문을 갖게 한다.

앞서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달 26일 KBS 정기이사회에서 "사전심의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에)두세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제작진 데스크에서 사전심의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KBS의 데스킹·심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KBS는 향후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절차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KBS는 8일 입장을 내 "보도본부는 그동안 보도위원회를 세 차례 열어 프로그램의 내용, 반론 취재 여부 등 취재과정, 데스킹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심도 있게 살폈다"며 "앞으로 제작 과정에서 방송제작가이드라인 위반 여부, 심의규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사내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면밀히 검토를 거쳐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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