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프린세스는 두 가지 커다란 가능성과 의미를 확보했다. 하나는 아주 오랜 MBC 수목드라마의 저주에서 비로소 벗어날 기대를 갖게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향기 없는 꽃 김태희에 마침내 연기라는 향기를 더해준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자체의 화제성은 아이리스가 훨씬 더 컸지만 아쉽게도 김태희는 그 드라마를 통해서 연기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 후의 절치부심 그리고 파스타를 만든 권석장 감독의 합작으로 이뤄낸 MBC와 김태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첫 회에 불과 0.2% 차이라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차이로 싸인과 1,2위를 다투었지만 이후 경쟁에서 싸인을 이길 가능성을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김태희의 연기력 그것도 여신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망가짐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분명 좋고 화제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드라마의 흡인력을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경쟁 상대는 박신양이다. 일부 박신양의 버럭연기가 한결같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혼신을 다하는 그의 연기에는 눈길을 돌리기 힘든 어떤 마력이 존재한다.

김태희, 송승헌의 연기력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박신양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캐스팅까지도 마이 프린세스는 스토리와 연기로 승부하기보다는 황실재건이라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변주한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에 걸맞게 비주얼 최강인 배우들을 배치시켰다. 문제는 그런 형식으로 MBC 수목드라마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마이 프린세스는 저주를 끊어낼 강력한 희망의 스타트를 보였지만 드라마 본연의 재미로의 전환이 없는 한 싸인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우려내도 또 국물이 나오는 것이 신데렐라 스토리다. 누구나 인생역전을 꿈꾸기에 언제고 먹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기발하기는 하지만 황실재건이라는 픽션이 다소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황실재건이라는 것이 아주 폭넓은 공감을 얻기에는 다소 한정된 발상이라는 점이 문제다. 황실재건이 아주 잠시 이슈가 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전혀 의미 없는 공상적 스토리도 아니지만 시청자에게는 너무 생소한 이슈가 되기에 김태희가 재건 황실의 공주 혹은 여왕이 되는 과정에 몰입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로 전환하게 된 근현대사의 원동력이 자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일제에 의한 강제적이고 굴욕적인 역사에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발상에 씽긋하고 미소를 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대다수의 시청자가 공감하게 하기에는 미약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체 중 고작 2회만 봤을 뿐이라 앞으로 마이 프린세스가 왕실재건의 이유를 설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김태희, 송승헌을 비롯해 박예진, 류수영 등의 4각 관계와 김태희의 공주되기 스토리를 엮어가기에도 바쁠 것이다.

물론 시작은 놀랍게도 싸인과 마이 프린세스가 박빙의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이대로 끝까지 동반상승하는 일도 있겠지만 어느 시점에서 우열이 갈릴 것이다. 그 분기점이 어디가 될 것인지가 두 드라마 경쟁을 지켜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먼저 마이 프린세스의 아킬레스는 역시나 왕실재건에 대한 공감과 설득에 달려 있다. 그리고 싸인은 CSI에 익숙한 시청자에 CSI를 뛰어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에 견줄 만한 법의학적 만족도를 지루함 없이 줄 수 있겠냐가 문제다.

또 하나는 싸인이 첫 회에 검사를 권력의 끄나플 정도로 묘사했지만 그런 시각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2회에 이미 검사 엄지원에 의해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다시 제2의 하도야가 예상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검사 엄지원의 밀어붙이기가 좀 과한 면이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또 속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엄지원의 케릭터는 발전하겠지만 박신양이 도전하는 타겟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 그것은 박신양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싸인의 기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마이 프린세스와 싸인의 팽팽하면서도 위태로운 경쟁에 시청자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둘 모두 아직 시청률 20%를 뚫어내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누가 1위냐는 의미가 없다. 누가 먼저 아니 누구든 그 벽을 넘을 수 있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 희망은 충분히 가져볼 수가 있다. 둘 모두 첫 회보다 2회에 시청률이 소폭이지만 의미 있는 상승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뜨거운 드라마 열전이 흥미롭고 무엇보다 MBC의 수목 드라마가 부활할 기미를 보이는 것이 반갑다.

드라마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10시 경 리모컨을 쥐고 무엇을 볼까 고민하는 몇 분의 갈등도 드라마를 보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와 긴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가했던 수목의 리모컨이 당분간은 이 사람 저 사람 손때를 탈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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