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 채널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후폭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합격한(?) 사람들은 연일 더 많은 특혜를 달라고 난리고, 떨어진 사람들은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당은 규탄 토론회를 열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난리굿을 보고 있는 심정은 참으로 떨떠름하다. 한두 개 결정됐다면 모를까, 네 개씩이나 한꺼번에 종합편성채널이 생겨서는, 도무지 누구도 살아남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사망을 선고받은 모태 사형수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은 예상된 그대로 진행됐다. 최문순 의원이 지적한 대로, 처음부터 청와대는 '다 주거나 한 두 개만 탈락시키겠다'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도는 그대로 관철됐다

▲ 12월 31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최시중 위원장이 종편에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가 보도전문채널에 연합뉴스가 최종 선정됐다고 브리핑하는 모습ⓒ권순택
시청자에 대한 질문이 사라진 종편 논쟁

그런데, 종편에 관심없는 이유는 오히려 따로 있다. 미디어업계 종사자 입장에서야 '누가 살아남고 광고 시장의 파이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가 관심사이겠지만, 일반 시청자 입장에선 종편이라고 해도, 케이블 채널 하나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종편은 새로운 SBS가 되기를 꿈꾸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물론 케이블 채널에서만 방송된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케이블 가입가구 숫자는 약 1500만, 전체 시청 가구의 3/4정도가 가입돼 있는 상태다. 이 정도면 지상파 방송과 다르지 않다. 2010년 방송된 엠넷의 슈퍼스타K 시즌2는 최고 18.1%라는 (케이블 채널에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거기에 케이블 채널에서 강제로 낮은 번호를 배정받는 특혜라든가, 계열사 소유 미디어를 통한 붐 업 작업, 광고 따오기 등의 일들이 행해진다면 다른 케이블 채널보다 더 많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종편 채널 결정 이후, 벌써부터 인기 연예인들의 몸값이 뛰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린다...그런데, 그걸 누가 볼까?

미디어 관성이란 이름의 복병

이런 당연한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기 연예인을 내세우면 알아서 시청률이 올라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세상이 그리 만만했다면 이미 케이블 채널들이 시청률을 석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 기적(?)을 만들어냈던 슈퍼스타K가 뜨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년이었다. 1500만 케이블 가입 가구가 가장 많이 시청하는 채널, 아니, 정확히 압도적으로 시청하는 채널도 결국은 지상파 방송이다.

물론 지상파 프로그램이 케이블 프로그램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재미없는, 영 안 팔리는 프로그램도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지상파 방송은 굳건하다.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나는 이것을 미디어 관성이라고 부른다. 보던 채널만을 습관적으로 그대로 보는 행위. 너무 많은 채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제한하고, 합리적으로 채널을 선택하기 위해 행동하는 자연스러운 습관.

아이러니하게도, 듣기로는 이런 미디어 관성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서울 목동이나 강남의 부유층들이었다. 아직 드러난 통계는 없지만, 이쪽 지역에는 은근히 케이블이나 IPTV를 보지 않는 가구가 많다. 아마 조선일보 종사자 가운데에도 자신들의 자회사에서 방영되는 비지니스앤-채널을 즐겨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시청자들은 누가 종편에 선정되건 말건 별로 관심이 없다. 결국 당분간은 보던 것만 볼 것이다. 광고 시장을 나눠먹기 함으로써, 군소 매체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슬프게도, 시청자들은 잔인하다. 그러건 말건 여전히 관심 없는 것은 똑같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데이터 스모그

물론 10년 뒤에는 사정이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현재 편성된 종합편성 채널이 지상파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두세 개 정도 정리된 다음 유일한 종편 하나만 남아서 지상파와 경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심가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더미 정보의 다량 생성으로 인한 데이터 스모그다.

인터넷 미디어가 범람함으로써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 이 더미 정보였다. 소셜네트워크와 공명을 일으키지 못한는 정보. 단순히 사이트 트래픽을 증가시키고, 광고주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것 이상도 이하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쓰레기 기사들. 그리고 그 더미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뭐가 중요하고 아닌지를 판별하기 어렵게 된 상태를 우리는 데이터 스모그라 부른다.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지는 친구들의 추천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런 더미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데이터 스모그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종편이라고 이런 더미 기사 생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광고비를 따오기 위해 광고주를 만족시키는 프로그램. 숫자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트래픽(또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글쎄. 지금까지 만들어진, 지금 선정된 조중동매가 만들었던 케이블 방송 채널에선, 그들이 제시한 장미빛 미래 청사진에선, 그런 걱정을 덜어줄 만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앞으로가 걱정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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