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신독재와 노동개혁이다. 얼마 전까지 ‘좌파독재’를 주장하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신독재’ 주장이고, 근로기준법의 시대가 기울었으니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보호를 거두는 ‘노동자유계약’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는 과격한 주장이었다.

나경원 “절대 권력 완성 위해 민주주의 악용…신독재”(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지칭해 물의를 빚었던 지난 대표연설과 유사한 점은 이번에도 외신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바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6월 ‘후퇴하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내용의 일부 인용이었다. 당연히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는 한국은 언급되지 않았다. 터키와 베네수엘라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KBS가 빠르게 이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에 나섰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따져본 것이다.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세계자유지수’를 먼저 따져봤다. 한국은 4년 연속 80점대로 등급이 가장 높은 국가에 해당됐다. 이코노미스트가 언급했던 터키는 30점대, 베네수엘라는 10점대로 비자유국가로 분류된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 계열사가 자체 분석한 민주주의 지표 역시 이와 비슷하다. 한국은 8점대였고, 터키와 베네수엘라는 3점, 4점대였다. 한국의 점수는 박근혜 정부 때 7점대로 떨어졌다가 최근 회복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미 알려진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에서도 한국은 2016년 70위에서 올해 4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팩트체크K] “문재인 정부는 신독재”…따져보니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국은 민주주의지수도 높고 언론자유지수도 신장되었지만, 독재국가라는 비문이 된다. 형용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신독재 주장은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했다지만 사실은 인용도, 무엇도 아닌 ‘거짓 주장’이었다. 일반 국민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좌파독재’ 주장을 외신 보도를 운운하며 ‘신독재’로 포장하려 했으나 공허한 주장에 그치고 말았다.

나 원내대표의 또 다른 주장인 ‘노동자유계약’은 한국을 독재국가로 규정하려 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친노조’ ‘친민노총’이라고 규정하면서 ‘반노동적’이라고 몰아붙였다. 정부가 친노조인 것은 적어도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친민노총이라는 말에는 동의가 어렵다.

[팩트체크K] “문재인 정부는 신독재”…따져보니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어쨌든 나 원내대표가 주장한 “근로기준의 시대에서 계약자유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고 무엇보다 위헌적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근로기준에 대한 법률의 보호는 헌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근로기준을 없애자는 발상은 당연히 위헌적일 수밖에 없다. 나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자유노동계약의 시대가 된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된 비정규직은 더욱 심화될 것다.

이처럼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은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교섭단체 연설을 통한 정부 욕보이기 이상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주장으로 국민들 특히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말들을 일일이 팩트체크를 해야 하는 것은 인력낭비일 뿐이다. 적어도 제1야당의 원내대표 국회 연설이라면 ‘따져봤더니 의미가 있었다’라는 평 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굳이 막말이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자유한국당 피로감만 추가된 유감스러운 연설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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