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은 고유정 씨의 살인사건이 알려진 후 한 달 가까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살해수법이 정상적이지 않은 만큼 언론의 보도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자세한 범행 수법 묘사, 고유정 씨의 학창시절 에피소드 등 범행의 본질과 상관없는 보도는 다른 문제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이 있다.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고유정 씨의 살인사건은 일반적인 살인사건과 달랐다. 이번 사건은 살해 방법, 시체 훼손 등 자극적 소재로 가득했다.

▲네이버에 '고유정'을 검색하니 2295건의 기사가 나왔다 (사진=네이버 화면 캡쳐)

언론은 이에 호응했다. 고유정 씨의 얼굴이 공개되기 전 언론에는 간략한 사건의 개요와 의붓아들 질식사 정도를 다뤘다. 하지만 지난달 5일 고유정 씨의 신상이 공개된 후 구체적인 범행 수법·개인신상 보도가 나왔다.

다수 언론은 ▲고유정 씨가 피해자와 대학교 봉사동아리에서 만났다(서울신문 <고유정, 전 남편과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생활 중 흉기”>) ▲고유정 씨는 ^^, ♡ 등의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는 등 흉악 범죄자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국민일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서^^” 고유정이 인터넷에 올린 글>) ▲고유정 씨가 층간소음을 참지 못했다 (중앙일보 <[단독]욕하고 걷어차···'친절한 유정씨'의 돌변, 집만 오면 악마였다) 등의 보도를 했다. 모두 사건의 본질과는 연관이 없는 내용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고유정 씨의 실명이 공개된 지난달 5일부터 14일까지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 22곳(10대 일간지·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통신사)에서 나온 관련 기사는 1280건에 달한다.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나온 보도는 573건, 지난달 25일부터 이번 달 3일까지 나온 보도는 487건이다.

이러한 보도행태는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인권보도준칙에는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인권친화적인 방향으로 정책 변경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고유정 씨 살인사건이 언론의 조회수 상승 요인으로만 작용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너무 볼품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언론이 고유정 씨에 대한 신상털기와 신변잡기에 집중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고유정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현재 언론 보도는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언론이 대중의 이목이 쏠린 사건을 보도할 때는 사회적 공기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짐승 같은 사람을 짐승처럼 대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현재 언론 보도는 고유정 사건의 본질과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최진봉 교수는 “고유정 씨의 안팎 행동이 다르다거나, 폭압적 성격을 가졌다는 보도들은 조회수 확보 때문일 것”이라면서 “과거의 행적을 파헤쳐서 보도하는 건 불필요하다. 독자가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니다. 언론은 개개인의 인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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