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골키퍼는 늘 소외되는 포지션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축구했던 사람들은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가장 실력이 없고, 축구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할 때 골키퍼 포지션을 맡기는 경우를 이야기하면 대략 골키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필드 플레이에 비해 많이 뛰지 않는데다 실력 차가 큰 팀과 경기를 가질 때는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일 기회가 없어 '보이지 않는 숨은 활약'을 펼쳐도 그다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포지션이 바로 골키퍼였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골키퍼는 그런 전반적인 인식 때문에 크게 소외되고 '실력 없는 선수들이 하는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포지션으로 인식되면서 팬들의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특히 이케르 카시야스, 지안루이지 부폰, 줄리우 세자르 등 필드 플레이어 못지않게 스타 골키퍼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이운재가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꾸준하게 문전을 지키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병지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 2010년 8월11일 축구대표팀 친선경기 한국-나이지리아 경기에서 이번 경기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는 수문장 이운재가 전반 후배 정성룡과 교체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2011년 시작부터 한국 축구는 그야말로 골키퍼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정성룡이 FA 최대어로 떠오르면서 나아가 해외 진출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 이운재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큰 이슈메이커로 다시 부상했습니다. 또 수원 삼성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박호진이 신생팀 광주 FC 플레잉코치로 이적했는가 하면 플레잉코치를 맡았던 경남 FC의 김병지는 선수로만 뛰기로 해 '시간이 거꾸로 가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밖에도 김용대, 김영광이 팀 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등 전체적으로 골키퍼들의 몸값, 대우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에서도 골키퍼는 핫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난해 8월, 이운재가 대표팀 공식 은퇴를 한 뒤 골키퍼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표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물론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모두 뛴 정성룡이 다소 앞서기는 하지만 그와 경쟁할 만한 젊은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내외적인 시각 때문에 김진현이 새로운 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등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예전에는 특정한 한 선수에게만 시선이 꽂혔던 것이 이제는 경쟁력, 실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만 봐도 골키퍼에 대한 관심, 그리고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골키퍼가 크게 달라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골키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팬들 뿐 아니라 축구 일선 지도자들도 이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축구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전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장 혜택을 입은 포지션이 바로 골키퍼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는데요. 과거에는 골문만 지키고 위협적인 슈팅을 막아내는 것이 전부였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골문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최후방에서 선수들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조율하고 전술적으로도 최종 수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선수라는 인식의 변화, 발전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위기 순간에 막아내는 슈퍼 세이브는 경기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대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면 골을 넣지 못한 스트라이커 못지않게 상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도 '엄청난 선방'보다 '결정적인 실수로 인한 실점'에만 관심이 갔던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달라진 인식을 얻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실수를 해도 전반적으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 '좋은 골키퍼'로 인식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많은 역할을 해내는 골키퍼를 바라보며 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확실히 높아지는 계기로 이어졌고, 이러한 흐름에 맞춰 각 팀들도 우수한 골키퍼를 보유하고 키워내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골키퍼가 이제는 '그라운드의 최종 지휘자'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그 중요도가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내부적으로 좋은 골키퍼들이 나오고, 그에 걸맞게 대우를 해주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외받는 포지션이었던 골키퍼의 전성시대는 이제 시작됐습니다. 더욱 기를 펴고 훌륭한 선방으로 많은 축구팬들의 찬사를 받는 골키퍼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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