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여왕의 연장 방영도 한참 지났다. 그렇지만 막상 스토리는 전개된 것이 없고, 연장의 구실이 됐을 황태희-구용식의 관계가 아주 조금씩 좁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도 때때로 진지하다가도 금세 장난처럼 긴장을 풀어버려 시청하는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울다가 웃기는 게 역전의 여왕이 가진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황태희와 구용식의 관계는 밀고 당기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난도 아니고 참 납득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24회는 주요 모티브는 신제품 개발을 위한 현지 방문이었지만 다소 생뚱맞은 러브신으로 때웠다. 23회 엔딩신이자 24회의 러브신들을 허무하게 만든 꿈의 차용은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라 허탈함을 넘어 살짝 기분이 상할 지경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드라마를 쓸 수는 없겠지만 민박집에서의 하룻밤. 그것이 주는 로맨틱한 통념을 헤집는 작가의 치기 발랄함을 뭐라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아쉽고 또 속은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전의 여왕이 32회로 상당히 많은 분량을 늘렸는데 그것을 때우기 위한 것인지 극중 패러디가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초반의 한두 번은 그저 애교와 재치로 받아드릴 수도 있었지만 대폭적인 연장 후의 지나친 패러디는 분량 때우기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23회에 등장한 슈퍼스타K의 유행어 “제 점수는요”였다. 그 장면을 보고 충분히 웃고, 재미를 느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 장면에서 그 유행어의 패러디가 꼭 필요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아니 거꾸로 그 유행어를 써먹기 위해서 갑자기 구용식이 팀원들에게 아이템 기획을 제출하라고 한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명색이 기획팀이니 아무리 외인구단이라 할지라도 평소 신제품에 대한 궁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갑자기 제출하라는 것은 다소 억지인 탓이다. 결국 평생 승승장구하던 황태희는 구용식의 “제 점수는요”에서 유일하게 낙제점을 받아 혼자 야근을 해야 했고, 그것은 둘만 회사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진한 키스까지 진전한 두 사람은 여전히 데면데면할 뿐이다. 10대의 풋사랑도 아니고 30대가 아무리 강제 키스라 할지라도 그것까지 갔으면 관계에 대해서 진지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도 이 둘은 여전히 장난스럽고 건조하다. 물론 민박집에서 꾼 꿈에서 황태희가 자신이 흔들리고, 복잡하고, 어지럽고, 두렵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곧 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꿈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현실에서의 관계는 아직도 갑과 을의 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도 모든 연인의 필수 코스인 영화 러브 스토리의 눈싸움은 또 재현하고 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전개다. 물론 실제로 이런 연애도 꼭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이 커플은 도대체 언제쯤 돼야 서로를 인정하고 성인다운 진지함으로 감정으로 표출하게 될지 의문이다. 그러는 한편 정작 이 드라마의 본래 목적은 뒤로 내몰린 상황으로 가고 있다. 거기에 구용식의 친모에 얽힌 이복형의 음모가 더해지고 있어 역전을 위한 칼 갈기는 좀 더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역전의 여왕 대폭적인 연장은 충분히 납득될 만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의 10회 이상의 연장은 그 자체로 무리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애초에 준비한 것에서 아무리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새로운 에피소드가 샘솟듯이 분출될 리도 없는 일이고,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제에 맞는 것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 늘어난 분량을 때우기 위해서 잦은 패러디가 등장하고, 심지어 해외 유명 브랜드의 사장을 설득하는 중요한 유치전을 말 그대로 유치한 발상으로 성공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몇 번의 폭풍 감동을 주었던 목부장의 에피소드도 보류됐고, 소심한 소녀 가장 유소영의 자기 계발도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구용식의 비서 강우의 러브 라인이 추가됐지만 이조차 구용식 프로포즈의 패러디로 채웠다. 그것은 구용식의 로맨스조차 갉아먹는 자살골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의 것은 주인공만 갖는 것이 좋다. 그것이 좋다고 모두 나눠 갖는 것은 둘 다 죽이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주차에도 구용식은 또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한 귀마개 고백을 선보였다. 이것마저 또 강우가 흉내 낸다면 참 난감한 일이 될 것이다.

결국은 애초에 무리한 연장이 문제였다. 이렇게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라면 굳이 연장을 해서도 안 되거니와 하더라도 한두 주 정도에서 만족했어야 했다. 그나마 월화 드라마 군에서 꼴찌를 면하는 것은 김남주, 박시후가 가진 힘 덕분이 아닐까 싶다. 반면 갈수록 거의 조연급으로 존재감이 줄어드는 정준호의 입장에 연민이 갈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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