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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의 체스판 위에 놓인 북핵 협상미국 중국 일본 뒤엉킨 혼돈의 도가니…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본질 돌아봐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6.28 08:25

[미디어스] 올해 상반기 외교정책 결산의 시작점이 될 G20 회의 일정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시작으로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정상과 회담 일정을 가지게 된다. G20 회의 직후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역시 예정돼있다.

국내의 분위기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 실질적 성과가 나올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는 상황인데, 그런 문제를 떠나 이쯤에서 근본적 차원의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한중정상회담은 G20 회의 기간 동안 열린 정상회담 중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평가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걸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첫째는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변함이 없다. 둘째는 대화로 문제를 풀고 싶고 인내심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국과 화해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고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일견 북미대화의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 외무성이 연일 내놓는 메시지를 보면 그렇게만 보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담당국장의 발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적대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미대화 과정에 남한 정부를 통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내놨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대화는 실무협상을 통해 비핵화 협상의 대략적 얼개를 확인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실무협상을 진행하는 당사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메시지에는 하노이 회담의 실패 원인의 한 축을 남한 정부의 ‘중재’에서 찾겠다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한 정부의 태도가 북미대화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당시 우리 정부가 내놓은 ‘영변 등 핵시설 폐기와 사찰 수용, 북미 양자 간 종전선언 및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완화 대신 남북경협 허용’이라는 중재안이 정상 간 회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제재 완화 대신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하겠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북한 외무성이 2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비난하면서 “우리는 제재 해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27일 연합뉴스가 개최한 2019 한반도 평화 심포지엄 특별강연에서 주장한 바도 마찬가지 내용을 시사한 걸로 볼 수 있다. 문정인 특보는 북미 간 불신 극복을 위해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조사를 허용하고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폐기하는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북미수교나 불가침조약 체결 등을 입구에 놓고 북한의 비핵화와 교환하는 과감한 역발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안전보장과 제재완화인데, 제재완화가 비핵화 조치 완료 이후에야 가능하다면 일부 안전보장 조치라도 실현할 수 있다고 해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미수교나 불가침조약에 준하는 안전보장 조치는 결국 동아시아 안보 질서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제재완화 논의에서는 남북경협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할 수 있지만 안전보장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개입 수단을 갖출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오히려 북미 간의 안전보장 조치 논의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의 개입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결국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오사카 웨스틴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미중무역협상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전선을 확장하고 시진핑 주석의 방북으로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개입을 본격화하면서 동아시아는 강대국들의 거대한 체스판으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안보조약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와 경제는 혼돈 그 자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을 당할 경우 미국이 개입해야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일본에 주어지는 의무가 없다면서 “그들은 오직 소니 TV로 공격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과거 1960년에도 미일안보조약의 불평등을 주장하며 개정을 요구해 관철시킨 바 있는데 이는 극우적 정치 캠페인의 성과로 평가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아베 신조 내각이 추진하는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의 논리적 근거를 강화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달갑지 않아 하는 것은 더 이상 감당할 필요가 없는 안보 관련 비용이 증가나 1960년 당시 ‘안보투쟁’으로 기시 내각이 붕괴된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니 TV’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이 문제가 무역 협상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로 앙숙이던 일본과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잡는 분위기까지 연출되고 있다.

남한 정부가 북핵 문제에 개입할 지렛대를 사실상 상실한 상황에서 북한이 내놓은 새로운 전략은 결국 남북미의 관계라는 특수성에 기대는 게 아니라 이 복잡한 동아시아 내 강대국들 간의 경쟁 구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남한 정부 입장에선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 북핵 문제 해결이 필요했던 맥락, 즉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갈등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시도가 오히려 갈등을 촉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럼에도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남북경협이나 남북경제공동체 등으로 묘사되는 경제 문제이고 둘째는 총선 등에 끼칠 정치적 영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구도는 평화라는 허울뿐인 대의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이해득실이 본질이라는 냉소주의적 인식에 기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를 첨단산업 중심으로 바꾼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으로 한국의 정부와 재벌 대기업들은 그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의 든든한 파트너로 낙점된 듯 하다. 제2의 중동특수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외면하는 것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잡은 기회는 서방의 자본이 철수하면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반체제 언론인이자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 인물이라는 의혹은 그가 왕정 국가의 잔혹한 통치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걸 넘어 남의 불행이 곧 우리의 행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사우디의 ‘자주국방’은 한국의 협력으로 개발된 신무기가 예멘 내전 등에 투입되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핵 리스크’가 제거된 시장의 활성화나 제2의 중동특수가 아니라 전 세계의 피억압 민중들과의 연대의식을 형성하는 정치일지도 모른다. 물론 냉혹한 현실정치에서 전적으로 이상적인 상황만을 전제하고 주장할 수는 없다. 엘리트 통치 집단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상을 말하는 요구와 이를 목표로 하는 정치의 시도는 있어야 한다.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 오늘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물음이 아닐까 한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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