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을 본격적으로 맞기에 앞서 2010년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2010년 한 해 한국 스포츠가 이룬 성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동계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이 한꺼번에 열리는 '4년 주기' 시기에 걸맞게 다양한 일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들도 잇달아 터져 나왔던 해가 바로 지난해, 2010년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다소 우울한 소식들이 많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일도 있었지만 스포츠는 충실히 청량제 역할을 해내며 2010년 한 해를 빛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다양한 성과들, 그리고 크게 주목받거나 떠올랐던 선수들을 키워드로 압축해서 정리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다, 최초, 최고

지난해는 유독 최다, 최초, 최고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그만큼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고, 의미 있는 성과들이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국제 대회 뿐 아니라 국내 대회, 리그 등에서도 다양한 기록들이 많이 나와 스포츠 팬들을 즐겁게 했던 해가 바로 지난해였습니다.

우선 국제 종합 대회에서 한국 스포츠의 선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이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종합 5위에 올라 역대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특히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최초 금메달, 역대 최고 성적, 그리고 쇼트트랙을 제치고 최다 금메달을 따내는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웠습니다. 또 피겨 여왕 김연아는 한국 선수 첫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온 국민을 열광시키고 감동시켰습니다.

11월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1개를 따내며 역대 원정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메달 기록을 세우고 4회 연속 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수영에서 3관왕에 올라 역대 최초 한국인 아시안게임 2회 연속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볼링의 황선옥은 아시안게임 한국 여성 선수로는 첫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냈습니다. 또 사격은 금메달 13개를 따내 단일 대회 최다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한국 축구가 원정 월드컵 첫 16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한 달 뒤 열린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는 당시 역대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라 한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해 여자 축구 르네상스를 알리는 계기를 열었습니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양대산맥 야구와 축구가 관중 기록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내 희망을 보여줬습니다. 프로야구는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도 592만 8626명의 관중을 동원해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프로축구는 역대 관중, 평균 관중 기록 등은 아쉬웠지만 FC 서울이 프로 축구 팀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50만 관중을 돌파하고, 특히 어린이날 성남 일화전에서는 6만 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하는 등 프로축구도 흥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밖에 육상에서는 김국영이 31년 만에 남자 100m 한국 기록(10초23)을 갈아치웠고, 양궁 남자팀의 희망 김우진이 개인 싱글 합계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아마추어 스포츠에서의 새로운 기록도 많은 박수를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김연아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자 싱글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한국 올림픽 역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 피겨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와 4대륙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모두 석권하며 여자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주인공이 됐다 ⓒ 연합뉴스
다양한 성과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피겨 여왕' 김연아는 몇 년째 이슈메이커로 꼽혀 왔음에도 역시나 크게 질리지 않을 만큼 대단한 한 해를 만든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최근 체육 기자들이 선정한 2010년 가장 큰 성과로 '김연아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꼽혔다고 하는데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환상적인 연기로 합계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그야말로 한국인의 희망이자 자랑으로 크게 우뚝 서며 '만인의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여러 가지 시련과 텃세, 부담감 속에서도 김연아는 눈부신 기량을 보여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을 선보였고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환상적인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습니다. 뒤이어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연기로 2위에 올랐던 김연아는 이후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결별 문제로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했지만 미국 LA로 옮긴 뒤 피터 오피가드 코치의 지도 아래 올해 3월에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목표로 다시 구슬땀을 흘리며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만을 바라보며 달려오고, 결국 목표했던 바를 이루며 활짝 웃었던 김연아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만한 '2010년 스포츠 베스트 명장면'이었습니다.

세대교체

다양한 스포츠 대회들이 열린 만큼 신예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동계올림픽에서 이규혁, 이강석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반면 모태범과 이승훈이 새로운 간판으로 떠오르며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모태범은 깔끔한 주법으로 단거리 부문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따내 새로운 스타로 거듭났고, 얼마 전까지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하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한 이승훈은 그야말로 '깜짝 금메달'로 세계를 놀라게 하며 역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펼쳤습니다.

수영에서는 '얼짱 스타' 정다래가 한국 여자 수영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대주로 떠올랐고, 리듬체조의 손연재 역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 첫 동메달을 따내며 새로운 희망에서 간판으로 거듭났습니다. 또 기계체조의 양학선은 처음 출전한 세계 기계체조 선수권 남자 도마에서 4위에 오르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 한국 첫 올림픽 체조 금메달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며, 태권도의 이대훈도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한국 태권도의 최고 기대주로 주목받았습니다. 탁구 남자 기대주 정영식과 김민석도 유승민이라는 거대한 에이스를 제치고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내 기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 손흥민, 분데스리가 데뷔골 폭발 - 이 골은 한국 선수로는 최연소로 유럽 1부 리그 데뷔골이며 올 시즌 개막 후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나선 두 번째 공식 경기에서 터진 손흥민의 첫 골이다 ⓒ 연합뉴스
축구에서는 손흥민이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이청용, 기성용 등이 한국 축구를 이끌 새 에이스로 주목받았지만 손흥민의 등장은 이전의 선수들과는 뭔가 다른 신선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했습니다. 아버지 손웅정 씨로부터 기초적인 실력을 닦으며 중학생이 돼서야 제도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손흥민은 탄탄한 기량과 개성 있는 장점으로 고등학생 신분이던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 입단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그곳에서도 경쟁력 있는 실력을 자랑하며 서서히 입지를 다진 손흥민은 성인 정식 데뷔 해였던 지난해 7경기에서 나서 3골을 터트리는 눈부신 경기력으로 축구팬, 그리고 축구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급기야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린 손흥민은 2010년 하반기에 한국 축구가 건진 최고의 기대주이자 세대교체를 가속화시킬 에이스로 주목받으며, 2011년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글로벌

이렇게 손흥민을 비롯하여 축구 해외파들의 활약이 유독 눈부셨던 한 해가 바로 지난해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올 한 해, 아니 2010-11 시즌에 어떤 모습으로 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길지 주목됩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이름 없는 영웅'에서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는 '진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9-10 시즌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좋은 활약을 펼쳤던 박지성은 2010-11 시즌, '부상 병동'인 맨유의 공격진 부재 약점을 말끔하게 씻을 만 한 맹활약을 연일 펼치며 6골-4도움으로 한 시즌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10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이청용도 돋보였습니다. 데뷔 시즌에 5골-8도움을 기록해 팀내 최우수 선수상을 탔던 이청용은 2010-11 시즌도 현재까지 2골-5도움을 기록해 두 시즌 연속 10개 이상 공격포인트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 리그에 지난해 나란히 데뷔한 기성용과 차두리도 셀틱 FC의 주축 멤버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아시안컵 대표팀 합류 전 마지막 경기에서는 나란히 골을 터트려 팀 승리를 주도하는 등 인상적인 경기도 수차례 보여줬습니다. 프랑스 AS 모나코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의 해결사 역할도 역시 주목할 점이 많았습니다.

▲ 추신수, 2연속 3할-20홈런-20도루 ⓒ 연합뉴스
야구도 해외파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던 한 해였습니다. 추신수는 타율 3할(0.300)과 홈런 22개, 도루 22개를 기록해 구단 창단 이래 최초로 2년 연속 3할, 20홈런-20도루를 작성한 선수로 기록됐습니다.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 클럽을 2년 연속 작성한 것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손가락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꾸준한 경기력으로 일궈낸 성적이어서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또 비록 더 이상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됐지만 '영원한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동양인 투수 통산 최다 승인 124승을 기록한 것도 매우 의미 있고 감동적인 기록이자 역사에 남을 장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좌절

물론 아쉬운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이날을 위해 열심히 땀흘리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 고개를 떨군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규혁, 이강석이 그러했고, 쇼트트랙에서는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을 단 한 개도 따내지 못하며 최강 지위를 중국에 내줘야만 했습니다. 또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유도 왕기춘, 배드민턴 이용대 등 베이징 올림픽 영웅들의 금메달 실패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24년 만에 아시안게임 우승을 노렸던 축구의 금메달 실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통해 주목받고 싶어 했다 결국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고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맛봤던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쇼트트랙은 국가대표 선발전 과정에서 승부 조작, 담합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이정수, 곽윤기 등 올림픽에 나섰던 선수들, 그리고 지도자들이 징계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또 연말에도 지난 5월에 있었던 중-고교 대회에서의 승부 담합이 또 발각돼 쇼트트랙 최강국의 위상에 완전히 흠집이 갔습니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 부족 등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실업팀들이 해체되거나 그 과정을 밟아 '효자 종목'으로 주목받은 선수들의 갈 곳을 잃은 경우가 유독 눈에 띄었던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 이정수-곽윤기, 3년 징계 '선수생명 위기' ⓒ 연합뉴스
도전

그래도 도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며 나아가 스포츠의 위대함을 알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 세계선수권 5연패 실패라는 아픔을 딛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의 분투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사상 처음으로 나선 봅슬레이 대표팀의 결선 진출도 아름다운 도전의 위대함을 보여준 '작은 쾌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남자 핸드볼은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편파 판정으로 인한 노메달의 아픔을 씻고 중동 팀들을 상대로 잇달아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따내 명예 회복을 이뤄냈고, 사상 처음으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제무대에 도전한 여자 럭비대표팀의 '무한 도전'도 대단했습니다.

희망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린 일들도 있었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낸 여자 축구는 올해부터 3년간 정부의 지원 속에 더욱 튼실하게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을 지난해 11월, 마련해 진정한 르네상스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또 낙후된 시설 때문에 흥행을 하고도 뭔가 아쉬움이 많았던 프로야구에서도 광주를 시작으로 대전, 대구가 잇달아 경기장 신축 방안이 구체화돼 나왔는가 하면 프로야구 9-10구단 창단 가능성이 높아지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축구에서는 프로축구 제16번째 구단 광주 FC가 창단됐고, 병역 의무를 다 하면서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팀인 상무 구단이 경북 상주로 연고를 이전해 16개 구단 체제로 갖춰졌습니다. 그밖에 핸드볼은 20년 넘는 숙원 사업이었던 전용 경기장 건립이 이뤄졌으며, 전남 영암에서는 F1 그랑프리가 열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지방이 스포츠를 통해 조금이나마 떠오를 수 있는 희망을 남기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지금까지 7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2010년 한국 스포츠를 조목조목 살펴봤습니다. 좋은 일도 있고, 아쉬웠던 일도 물론 있었지만 이러한 다양한 일들을 통해 한국 스포츠가 보다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계기를 만든 것은 또 하나의 큰 특징이자 성과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해 있었던 여러 가지 성과, 반성 등을 통해서 2011년에는 보다 더 알차고 희망적인 소식들이 가득한 한국 스포츠가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