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참 깜찍한 예능이다. 2011년 첫날에 방영된 무한도전 뒤끝공제 정산 토론 프로그램은 언제나 그랬듯이 퇴색한 백분토론에 대한 묘한 풍자가 담겨 있었다. 김태호 PD가 예능국 소속이기는 하지만 MBC의 위기를 겪으면서 백분토론 손석희 아나운서를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한도전을 시청률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최고 예능으로 손꼽히게 하는 소위 천재성은 이런 인간적인 면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무한도전 연말정산에서는 이런저런 의제가 논의됐지만 많은 부분 이미 200회 특집에서도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2부에서 패널을 초대해서 다룬 무한도전 위기설이 진정 무한도전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먼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무한도전이 위기면 대한민국 예능 중에 위기 아닌 프로그램이 없을 것이다. 2부 패널토론에 나온 김석원 작가가 “한국 예능은 무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는 말을 했다. 다소 과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무한도전은 스스로의 도전과 진화 외에도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모티브가 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무한도전의 아류도 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뿐이다. 사실 무한도전이 가진 진정한 위기는 프로그램 모두에 보여준 시청자 분석에 나와 있다. 주로 젊은 층이 선호하고 지지하지만 그들은 소위 시청률에 영향을 끼치는 본방사수가 어려운 계층이라는 점이다. 그 점은 일밤의 뜨거운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로 안고 있는 고민이자 숙제다.
결국 무한도전 뒤끝공제 연말정산의 진정한 취지는 시청률이라는 제한적인 조사로 무한도전의 가치를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토론 후반부에 멤버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은 김희철의 말처럼, 너무 남과 다르게 하려는 것이 순수한 도전의식이 아니라 강박이 될 수도 있다는 자기반성도 담긴 것으로 읽혀진다. 무한도전은 분명 의식이 있는 예능이다. 그것이 꼭 무한도전이 자주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탈북 소녀복서 이야기라든가, 프로 레슬링 등에서 얻은 무한 감동이 오히려 더욱 무한도전을 의식 있는 프로그램으로 규정짓게 한다. 우리는 위인이 없는 시대를 힘겹고 무겁게 걸어가고 있다. 기껏해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영웅이 될 뿐이다. 그리 많지 않은 올림픽 영웅들 외에 정신적으로 허기진 대중에게 즐거움과 동경을 주는 연예인이 우상이 되어줄 뿐이다. 다른 나라도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그런 황폐한 시대에서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웃기를 바라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예능 프로그램은 늘어나게 된다. 그런 속에서 눈물이 쏙 빠지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면 이보다 더 사회성 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기왕 하는 것이면 성공하는 편이 더 좋다. 그러나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배우는 것이 많다. 무한도전 초기에 시도했던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것은 이기지 못했고, 이길 수도 없었지만 이 악물고 달리던 모습들이 참 진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패널 중 누군가 초심을 잃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어디에 써도 다 통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상투적 말보다 오히려 김희철이 좀 내려놓으라는 에두른 말이 오히려 더 그 초심을 다그치고 있었다.
무한도전이 꼭 1등만 하라는 법은 없다. 무한도전이 꼭 웃음 뒤에 의미를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무한도전이 꼭 감동을 줘야 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많은 경우 무한도전의 아이템 회의하는 소소한 장면들에서 무한도전만의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게 되듯이 무한도전의 2011년은 작년의 무한감동이 다시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하다. 오프라인에서건, 온라이에서건 일요일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무한도전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