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론 : 새로운 시작>은 최근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가 그랬듯이 한참의 세월이 흘러서 제작된 속편입니다. 정확히 무려 28년으로 언제 봤는지, 어떤 영화였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한 시간이죠.

전편 <트론>은 당시에 꽤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천재 프로그래머 케빈 플린은 뜻하지 않게도 컴퓨터 속의 세계, 즉 디지털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그는 의인화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상대로 대전을 벌이고, 소기의 목적을 이뤄 현실로 돌아오고자 독재자로 군림하던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과 맞서 싸웠습니다. 이를테면 계보상 <매트릭스>의 그것보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는 위치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담았던 <트론>은 1982년작인 만큼 기술력의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작사인 디즈니는 이것을 꽤 신선한 발상으로 커버했습니다. <스타워즈>처럼 미니어처와 컴퓨터 그래픽 등의 힘을 빌어 실감 넘치는 영화를 만드는 대신, 애니메이션을 동원해 실사합성영화에 가깝도록 제작한 것입니다. 이 편이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디지털 사이버 공간을 구현하기에 훨씬 수월하고 적합했을 것이라는 추측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트론>은 5년 전에 만들어진 <스타워즈>나 같은 해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보다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쿨 월드> 등에 근접한 영화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트론>도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했지만 실제로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상은 마치 게임 속 화면을 보는 듯한 효과를 선사했습니다.

자, 그로부터 장장 28년이 흘러 <트론 : 새로운 시작>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20대 이하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점에서 말입니다. 이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고서는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를 영접했을 때처럼 "도대체 이제 와서 속편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울러 "언제쯤 소재 고갈로 인한 폐해를 양산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인가?"라는 회의감에 젖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적어도 이제 와서 제작될 만한 가치는 가진 속편이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당연히)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수십 년 전에 디지털 사이버 공간에서 무사히 돌아온 케빈은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며 아들과 함께 평화로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홀연히 증발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알란은 케빈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고 믿지만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알란은 케빈의 아들인 샘을 찾아가 아버지의 옛 오락실 겸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샘은 그곳으로 찾아가고, 전편에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곧장 <트론 : 새로운 시작>의 백미이자 압권이며 묘미가 펼쳐집니다. 길게 늘여서 쓸 것도 없이 그냥 한 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이 뭘까요? 바로 "우와~!!!"입니다. 이 외마디의 감탄사가 비주얼에 대한 제 견해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트론 : 새로운 시작>은 28년의 세월 동안 영화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진보했는지 확연하게,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이미 <아바타>도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고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시각적인 만족도에서 <아바타>보다 <트론 : 새로운 시작>이 더 나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전편을 보시면 왜 이런 망언(?)을 하는지 한결 이해가 가실 겁니다. 저도 일부러 <트론>을 최근에 다시 봤는데, 덕분에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흐른 세월만큼이나 <트론 : 새로운 시작>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청출어람의 기세를 보입니다. 동시에 비주얼만큼은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거든!"이라고 외치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이만큼 비주얼에 극찬을 하게 된 데는 확실한 비교대상이 존재한 탓이 큽니다. 일단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당연히 <트론>과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케빈 플린이 한번 들어갔다 나왔지만 다시 자취를 감춘 디지털 사이버 공간이죠. 이번에는 아들인 샘이 이곳에서 아버지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배경공간의 미학적 완성도가 상상을 훨씬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앞서 <트론>은 실사합성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에 가깝다고 했었죠? 반면 <트론 : 새로운 시작>은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향연을 벌이며 전작의 애니메이션을 실사의 단계로까지 격상시켰습니다.

<트론 : 새로운 시작>에는 전편의 배경은 물론이고 여러 메카닉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기체나 바이크 등이 그러한데, 이것을 비교해서 보시면 한참 뒤늦은 속편이 적어도 스스로의 존재가치는 증명한다는 것을 여실히 실감하시게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속편이 아니라 전편을 온전히 리메이크했더라도 충분히 훌륭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정말 숫제 신세계라고 불러도 결코 과찬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냥 화려하기만 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화면의 전체 톤이 청록색을 띤 것에 더해, 배경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극도로 절제하여 묘사한 것은 차갑고 무미건조한 디지털 세계를 구현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는 곧장 영화의 주제와도 직결하기 때문에 극찬이 아깝지 않다고 역설(力說)하는 것입니다.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전편보다 세계관을 확장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좀 더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사실상 <트론>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과거에 케빈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동료가 돈방석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은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프로그램을 빼앗긴 채 내쫓긴 것이죠. 그런데 마침 회사에 친한 동료가 있어 그들과 함께 자신이 프로그램을 설계했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케빈이 디지털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는 메모리에 담긴 증거를 찾고자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의 방해에 저항합니다.

따지고 보면 <트론>은 지극히 개인적인 명분이 극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철학적이거나 심오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관객이 보기에는 그러한데, 이 때문에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보다 진중한 주제를 파종하려고 합니다. 전편대로라면 <매트릭스, 다크 나이트> 등의 블록버스터로 한껏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영화로 전락할 운명이 뻔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를 들어 '불완전한 인간 VS 완전한 기계'라는 다소 해묵은 대립구도를 끌어들였습니다.

이것까지는 제법 현명한 판단입니다. 어차피 <아바타>도 저런 식으로 분류하자면 이야기에 있어서 새로울 게 없긴 별반 다르지 않으니 벌써부터 인색할 것까진 없습니다. 더불어 기계가 만든 불완전함인 'ISO(Isomorphic Algorithms)'를 가미시킨 것도 적절했고, 미약하게나마 종교적인 색채를 입힌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극에 잘 녹아들어갔는지인데, 그런 점에서는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 탁월하긴 탁월합니다.

<트론 : 새로운 시작>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비주얼에 주안을 둔 것이 역력하게 보일 만큼 주제가 거의 부각되지 못합니다. 마지막에 친절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캐릭터도 평면적인 데다가 긴장감마저 현저히 떨어져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는 거죠.

여하튼 <트론 : 새로운 시작>의 세계는 비주얼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관여한 모든 파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더라도 이론의 여지는 크지 않을 겁니다. 이보다 더 영화와 잘 부합하는 가상의 공간을 창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역시 빈약한 서사의 전개가 별점 1개를 날리게 했습니다.

덧1) 박스오피스 소식에서 말씀드렸듯이 돈을 좀 더 주더라도 가급적이면 아이맥스로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덧2) 저는 아이맥스 4D로 봤는데 오프닝부터 오감을 만족시켜주더군요! 처음엔 영화에 걸맞게 개량된 디즈니의 로고로 시작해 상공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해변에 위치한 케빈의 집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며 카메라가 회전하는데, 좌석이 그대로 화면과 연동하면서 실감을 극대화시킵니다. 물론 이때도 감탄사 작렬! "우와~~~"

덧3) 프랑스의 듀오 'Daft Punk'가 맡은 음악과의 조합도 기가 막힙니다. 누가 이들에게 의뢰를 한 건진 모르겠지만, 일렉트로니카를 삽입하기로 한 건 참으로 적절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역시 이들의 음악은 클럽의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리더군요. 이 장면에서는 실제로 다프트 펑크가 디제이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덧4) 샘이 엔콤의 건물에 잠입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엄청 큰 문이군" 정확하진 않지만 뭐 이 비슷한데, 전편에서 케빈도 엔콤에 잠입할 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단, 샘은 "huge", 케빈은 "big"이라고 차이를 뒀습니다.

덧5) 전편에서 케빈을 도왔던 두 명의 동료 중, 'Tron'을 설계한 알란(브루스 복슬레이트너)은 적은 비중이나마 속편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홍일점이었던 로라(신디 모건)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좀 아쉽더군요.

덧 6) 킬리언 머피가 거의 카메오로 출연합니다. 전편에서 케빈의 공을 훔쳤던 에드워드 딜린저의 아들로...

덧7) 올리비아 와일드는 예뻤습니다. 무지하게 예뻤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난 어쩔 수 없는 남자니까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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