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정부여당의 추가경정예산 통과 주장에 "추경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듯 말하고 있다"며 "처음 보는 희한한 풍경"이라고 썼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내들 때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때는 맞다더니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11일자 조선일보는 <추경 되면 경제 살아난다는 것은 또 무슨 이론인가> 사설에서 "'경제가 탄탄하다'던 정부·여당이 갑자기 '대외 여건 악화'를 내세우면서 '추경예산 통과'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 하방 리스크'를 10여 차례나 언급한 뒤 '추경이 늦어지면 일자리 1만~2만개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마치 추경이 집행되지 않아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고, 추경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듯 말하고 있다"며 "처음 보는 희한한 풍경이라고 썼다.

▲1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추경이란 본 예산이 확정된 뒤에 발생한 예기치 못한 재정 수요에 대응하는 예외적인 것"이라며 "재난 대처 등이 대표적이고 액수도 많아야 수천억 정도로 하는 것이 맞는다. 우리나라에선 역대 정권이 재정을 풀어 선심을 쓰는 용도로 이용한 탓에 규모가 몇 조원까지 부풀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이것으로 '경기 부양을 한다'고 한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번 추경 규모도 6조7000억원이다. 본 예산 470조원의 2%가 안 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경기 침체는 이 정부의 정책 실험이 실패한 결과"라며 "정부가 지금 추경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미루고 2차, 3차 등 후속 추경으로 내년 총선용 선심 총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목적은 아닌가"라고 했다.

▲4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문재인 정부 추경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25일 <"나라 곳간 활짝 열자"며 빚까지 내 3년 연속 추경> 사설에서 "정부도 '미세 먼지'만으론 명분이 약하다고 보았는지 '선제적 경기 대응'을 또 다른 이유로 내걸었다"며 "지역 SOC 건설이나 벤처·창업 지원 등 경기 부양 용도로 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이라고 했고, 경제부총리는 보름 전에도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기 하강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추경을 한다고 말을 바꿨다"며 "이번 추경 예산의 절반은 취약 계층 현금 지원과 공공 일자리 사업에 쓰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선심성 현금을 뿌리고 관제 아르바이트를 급조하겠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추경에 부정적인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추경이 '예기치 않은 경우'에 한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는 식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 조선일보의 태도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3, 2015, 2016년 세 차례 추경이 있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경기 부양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추경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8월 24일 조선일보 3면.

지난 2016년 8월 24일 조선일보는 1면 톱에 <추경 절실한데 리더십이 없다> 기사를 게재했다. 3면에는 <"현체력으론 '저성장 늪' 탈출 못해…추경은 최소한의 불쏘시개">, <주가·집값 뛰고 해외여행 느니까 경기회복? 착시입니다>, <"오늘 100원으로 해결할 문제, 내일은 200원 써야"> 기사를 게재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추진하고 있었던 시점이다.

조선일보는 이두원 연세대 교수의 발언을 빌어 "수출이 저조한 지금 한국 경제가 기댈 곳은 내수뿐인데, 내수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추경이 늦어지면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며 "추경 11조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인데, 정쟁으로 발이 묶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2016년 8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2016년 8월 25일에는 추경이 통과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함까지 호소했다. 조선일보는 8월 25일자 사설에서 <추경 무산 놓고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청·야 강경파들> 사설에서 "여야 대치로 총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한 달 가까이 미뤄지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사상 초유의 '추경 무산 사태'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걱정했다.

조선일보는 "19개월 연속 감소한 수출과 내수 부진, 대기업 구조조정 등 당면한 위기 속에서 최소한의 불쏘시개로 마련된 추경은 하루가 급하다"며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경이 올 3분기 내에 모두 집행된다면 내년까지 최대 7만3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0.3%p의 경제성장률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고 강조했다.

2015년 추경 당시에도 조선일보의 입장은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5년 7월 3일 박근혜 정부는 11조8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다음 날인 7월 4일 조선일보는 <경기 부양 추경 규모도 작은데 국회서 발목까지 잡히면> 사설을 게재했다.

▲2015년 7월 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우리 경제는 2012년 바닥을 치고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다 올초부터 다시 하강 기류를 타고 있다"며 "수출은 6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세다. 제조업 가동률은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 충격과 그리스 국가 부도까지 겹쳤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5%로 낮췄지만 경기가 반등하는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정부는 연초부터 경기 하강 신호가 켜졌는데도 머뭇거리다 메르스 충격이 오자 뒤늦게 추경 카드를 꺼냈다"며 "그나마 추경 규모가 15조원 이상일 것이라는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민간에선 적어도 20조원의 추경을 해야 3% 성장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추경안의 규모가 작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추경의 시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추경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추경 집행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며 "그런데 야당은 자체 추경안을 오는 8일쯤 내겠다면서 정확한 심사가 우선이라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추경에도 반대하고 총선용 선심 예산도 걸러내겠다고 한다"며 "여야가 추경안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겠지만 추경을 집행하는 시기를 놓치는 일만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걱정되는 것은 여야가 정책 자체가 아닌 다른 엉뚱한 일로 다투다 정책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라며 "이번에도 야당이 아무 상관없는 정치적 사안을 추경에 연계해 발목을 잡으려 한다면 국민 인내를 시험하는 게 될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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