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통신재벌이 동시다발 인수합병을 추진 중입니다. 통신이 방송을 장악하려 합니다. 세상에 세 종류의 리모컨만 있다면, 그 리모컨을 통신재벌들이 만든다면, 그 방송과 통신은 얼마나 다양하고 공공적일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티브로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나쁜 인수’에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방송, 통신 가입자인 여러분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함께해주십시오. 이 싸움 이길 때까지 ‘철농성’은 계속됩니다. /글쓴이주

②편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수가 된 이유>를 잇습니다

여러분은 ‘노동조합’과 ‘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어떤 분은 그야말로 ‘빨갱이 집단이 회사에 돈 뜯어내려고 데모나 한다’고 생각할 터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살기 힘들면 저런 짓들까지 할까’하며 혀를 찰 것이다. 그리고 아주 더러 극소수의 시민들이(요즘 들어서는 자주 꽤 많은 시민들이) ‘저 사람들 진짜 데모할 만하네’라며 공감해준다.

민주노총 중에서도 강성으로 평가받는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간부답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맞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결국 ‘사측과 정부와 국회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가 외치는 구호들에는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할 스토리가 숨어 있다. 구호의 대부분은 상당한 확률로 노동자들이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들을 당했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보라. 노동자에게 일자리는 ‘전부’다.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고 정리해고를 통보받는다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노조탄압 중단하라”는 어떤가. 삼성, 태광 등 무노조, 반노조 기업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한 노조탄압을 해왔다. 이걸 세상에 알리려는 게 저 구호다. “최저임금 만원” 이 구호는? 케이블방송 판에서 십 년을 구른 나조차도 최저임금 노동자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내 임금이 오른다. 심지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오늘도 구호를 외친다.

정말 역사적 사명감을 느끼고 투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가, 국회가, 사측이, 재벌이 알아서 일자리를 만들고 노조를 인정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세상은 없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는 한 그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의 대부분, 특히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은 대체로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이쯤 되면 우리가 왜 머리에 ‘단결투쟁’ 띠를 악착같이 두르고, 목이 쉬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거리에 천막을 치고, 왜 단식을 하고 고공농성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하셨을까.

▲활짝 웃는 조합원들. (사진=희망연대노조)

투쟁은 절박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회사 앞에서 집회를 한다고 하자. 햇볕은 따갑고 바람은 덥다.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는 펄펄 끓는데 노조에서는 얼음물 달랑 하나 챙겨준다. (이마저도 집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미 반쯤 녹는다.) 따가운 햇볕에 살은 아리고, 온몸에는 땀이 주르륵… 데모라는 게 이럴진대 데모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서 나는 정말 강하게 주장한다. 투쟁은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 왜냐면 온갖 즐거움과 재미의 요소를 집어넣어도 투쟁은 결국 엄근진 모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사 다시 한 번 주장한다. 투쟁은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우리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에서 수년간 투쟁을 하며 즐거웠던 기억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과천정부청사 앞 농성장에서,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광장에서, SK텔레콤과 티브로드 앞에서, LG유플러스와 CJ헬로 앞에서, KT와 딜라이브 앞에서 역대급으로 즐겁고 재밌는 투쟁을 기획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 비가 축축, 장마철에는 역시 ‘슬라이딩’

1) 긴 부직포(약 50M쯤) 두 겹 정도 바닥에 깐다.
2) 부직포만큼 긴 비닐을 한 번 더 깔아둔다.
3) 비닐 위에 비누거품을 잔뜩 만들어서 흩뿌려 둔다.
4) 각 지회별(혹은 분회)로 대표자등을 뽑아 비닐위로 최대한 길게 슬라이딩을 한다.
5) 가장 멀리 간 사람이 승리. (선물 획득)

여름철 농성장을 지키다 비가 온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농성물품과 함께 피신하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 노조도 거의 그랬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이런 짓을 해봤다. 그날 우리 조합원들은 모두 우비를 뒤집어쓰고 슬라이딩을 했다. 웃고 떠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가장 즐거운 투쟁이었다.

▲간이볼링을 즐기는 조합원들. (사진=희망연대노조)

넘쳐나는 페트병, 볼링으로 재활용

농성은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특히 밥을 먹고 나면 졸립고,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면 배만 나온다. 농성장에서 푸시업 같은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암튼 정신이 몽롱한 식후, 어떤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농성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페트병볼링’이다.

준비는 간단하다. 페트병 10개와 탱탱볼을 준비한다. 사실 준비할 필요도 없다. 페트병은 농성장에 깔렸다. 여기에 모래를 조금 넣어서 무게중심을 잡고 페트병을 배치한다. 그리고 상품을 걸고 볼링대회를 시작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단결력도 높여주는 훌륭한 놀이다.

이밖에도 기차놀이, 회사 앞마당 캠핑

이외에도 할 것은 많다. 비 오는 날, BPM 높은 음악을 틀어놓고 기차놀이를 할 수도 있다. 조합원 3백명이 회사 앞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투쟁 필수품인 앰프로 노래자랑을 하면 정말 신난다.

어떤가. 나는 이 추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올해 우리가 얼마만큼 즐겁게 투쟁할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분명 시대는 변했다. 즐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몽둥이와 화염병에 맞선 폭력의 시대에서 고립과 차별에 맞서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즐겁게 싸워야 하고, 공감과 연대를 끌어내야 한다.

모든 조합원이 엄지척하며 “투쟁 재밌다”고 외칠 때까지 기획하고 또 기획할 거다. 즐겁게 싸우고 ‘고용안정’ 약속 받아낼 거다. 이게 나의 투쟁 출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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