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프로야구의 흐름 중 하나는 ‘쓸 만한 우타자는 품귀’라는 푸념이 일 정도로 각 팀 마다 테이블 세터와 중심 타선이 좌타자 일색이라는 것입니다.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통념이 모든 선수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 좌타자를 막지 못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선발과 불펜 모두 우수한 좌투수를 보유하는 것이 8개 구단의 지상과제가 되었습니다.

8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의 오명을 남긴 LG의 2010 시즌 최대 약점은 마운드였습니다. LG의 팀 방어율은 5.23으로 8개 구단 중 7위에 머물렀습니다. 리그 최상급이라 자부할 수 없지만 중상위권인 팀 타율(0.276, 3위)과 팀 홈런(121개, 3위)를 감안하면 마운드 붕괴가 저조한 팀 성적의 근본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좌완 투수를 살펴보면 선발 요원 중 에이스 봉중근도 시즌 초반 2군에 내려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1승도 올리지 못한 곤잘레스를 대신해 5월에 영입된 더마트레는 8.22의 방어율로 난타당하며 시즌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퇴출되었습니다. 서승화는 여전히 유망주에만 머물며 물의를 빚었고 최성민은 시즌 말에야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을 뿐입니다. 불펜 요원 류택현은 팔꿈치 부상으로 거의 등판하지 못하더니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으며 오상민은 스프링 캠프에 처음부터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1, 2군을 들락거렸습니다.

다사다난했던 LG 마운드에서 시즌 내내 1군을 고수한 유일한 좌완 투수는 이상열입니다. 2010 시즌을 앞두고 히어로즈에서 방출되어 LG 유니폼을 입은 이상열은 4월 14일 잠실 삼성전에서 2149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고 7월 11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역대 18번째로 500경기에 등판하는 등 2승 2패 15홀드 방어율 3.32의 시즌 기록을 남겼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평범한 기록일 수 있으나 5인 선발 로테이션조차 제대로 확립하지 못할 정도로 선발 투수가 초반에 쉽게 무너졌으며 제대로 된 승리 계투조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상열이 없었다면 과연 6위조차 가능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허약했던 LG 마운드였습니다.

시즌 전 함께 좌완 불펜 요원으로 분류된 류택현과 오상민보다는 젊지만 프로 15년차 이상열 역시 33세의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면 시즌 내내 1군에서 활약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상열이 등판한 경기는 한 시즌 133경기 중 절반이 훌쩍 넘는 무려 76경기로 8개 구단 모든 투수들 중 1위입니다. 투수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이틀 연속 등판이 13차례이며, 혹사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3일 연속 등판도 6차례나 됩니다. 게다가 불펜 투수가 등판하기 위해 한 경기에도 여러 차례 몸을 풀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임을 감안하면 이상열의 부담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방출 선수로 입단해 별다른 기대를 받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한 것만으로도 이상열은 제몫 이상을 해낸 것입니다. 만일 LG 마운드가 보다 두터워 이상열이 등판 간격과 이닝을 충분히 관리받으며 출전했다면 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LG가 다년 간 하위권에 머문 것에 대해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팀워크가 좋지 않다는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 LG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다른 선수들이 이상열처럼 1군에서 과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최소한 팀워크가 좋지 않다는 의구심에서 LG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11 시즌 LG의 4강행을 위해서는 역시 마운드의 힘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는 가운데 새로 뽑은 외국인 투수 2명에 대한 기대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에 앞서 2010년 좋은 활약을 한 투수들이 2011년에도 최소한 현상 유지를 해야 합니다. 내년 시즌 LG의 좌완 불펜은 류택현이 떠난 가운데 오상민과 이상열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데 어느덧 오상민이 선수단 최고참에 이르렀으니 이상열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시즌에도 이상열의 소금과 같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2008년 LG의 숨은 MVP 김정민

2009년 LG의 숨은 MVP 김광수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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