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PD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한없이 간단하지만 그 존재의 근본을 따져보자면 또 밑도 끝도 없을 질문이다. <미디어스>가 만난 기자는 PD가 되고 싶었던 기자이다. 이제 막 5년차를 지나는 그 기자의 꿈은 모든 기자들이 그러하듯, '단독' 그리고 '특종'이다. 그는 꽤 유능한 기자다. 홀로 '강남 사설 카지노에 한 달 간 잠입 취재'를 했었고, 특종으로 '건국대 축구부 비리 문제'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유능하되, 운은 없는 기자이기도 했다. 그의 리포트들은 하필이면 '변양균 신정아 사건'이 터진 날이라 묻혔고, 기가 막히게도 '북한 핵실험'날과 겹쳤다.

'상복'은 없던, 그래서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자는 마침내 2010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단독' 보도로 '특종'을 했다. 3개월 여 간의 취재 끝에 그가 세상에 내놓은 리포트는 위력적인 '사실'이었다. 그의 리포트 이후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특임검사제'가 도입됐다. 그는 SBS 보도국의 '팔방미인', 법조팀의 김요한 기자다.

▲ 그림도 잘 그리고, 드럼도 치고, 축구도 잘 해, SBS 보도국의 팔방미인으로 불리는 김요한 기자
늦었지만, 이달의 방송 기자상 축하한다. <그랜저 검사>의 파문은 올 해 법조 뉴스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

"SBS 법조팀 앞으로 제보 편지가 왔다. 내용은 사실에 대한 간략한 메모였다. 발신자 역시 없었다. 간략한 제보의 내용을 토대로 당사자를 찾는데 한 달 정도 걸렸다. 그리고 검찰에 확인하는데 까지는 한 석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타사에 대한 보안에 신경 쓰면서, 법조팀 내에서 역할을 나눠 진행했다. 단서만 던져준 매우 소극적인 제보였다"

<그랜저 검사>는 단적이지만 올 해, SBS 법조팀의 활약이 눈에 많이 띄었다. 블로그에 'SBS 법조팀은 고되기로 유명하다'고 쓰기도 했다. 유난히 단독 보도가 많았던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나 비결이라도 있었나?

"SBS 법조팀은 굉장히 강하다. 사실 SBS뿐만 아니라 타사 역시 법조 출입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법조에는 훌륭한 기자들만 모이는 것 같다.(웃음) SBS 법조팀은 일단, 네트워크 측면에서 굉장히 강점이 있다. 법조 기자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많은 법조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얼마나 부지런하냐에 달려 있는 거다. SBS 법조팀 선배들은 자질도 훌륭하지만 정말 다들 성실하다. 그런 전통이 내려오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 아닌가 싶다. 법조 취재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각각의 취재를 통해 퍼즐을 맞춰내는 작업이 많다. 팀워크가 좋다는 것은 결국 퍼즐을 잘 맞출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법조계가 취재가 자유로운 조직은 아니지 않은가. <그랜저 검사>만 하더라도 굉장히 고급 정보였다.

"국회나 재계 정도를 제외하고, 취재원이 기자를 원하지 않는 것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성으로 취재원에 접근하는 편이다. 정보는 진정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이후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눈길들이 많다. 이명박 정부 동안 대부분 법조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는데

"참여정부와의 상대성을 많이 이야기하던데, 참여정부 당시엔 법조기자가 아니어서 단순 비교나 형평성을 따져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논란이 됐던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부분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그렇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관련 내용들을 자의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보도에는 기자 사회의 속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자는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것으로 업으로 한다. 검찰이 기본적으로 정보를 잘 흘리지 않음에도 기자들은 피의사실을 좇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이 언론을 그만큼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서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조 기사들이 일반적으로 유죄 사실이 인정되기 전, 그러니까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는 떠들석하다가 막상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보도가 심드렁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명숙 보도 같은 경우에는 단적인 사례다

"기본적으로 혐의사실을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조사를 받는 사람이 유죄일 수도 있고 무죄일 수도 있는데, 수치로 따지면 위험성이 50%라는 얘기 니까. 그런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기사 경쟁을 하는 것은 양면성이 좀 있다. 시간이 좀 지난 내용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이다. 방송 뉴스의 경우 실시간 시청률을 보면, 기소나 수사단계가 지난 사건이 나오면 시청률이 확 떨어진다. 물론 시청률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민일수밖에 없는 거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나 역시 기소 전 단계에서 기사가 생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싶은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딜지언정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조기자가 아닌 김요한 기자에 대한 질문을 하겠다. 2006년 입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흔히, '언론고시'라고 하는 어려운 과정인데 어떻게 기자가 됐나

"대학 시절엔 PD가 되고 싶어서 언론정보학부에 갔다. 그러나 결국 큰 틀에서 보면 기자와 PD가 속성 자체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예능이나 드라마 PD를 지망한 것은 아니니까. 기자나 PD나 결국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 삶이 얽힌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 구심점에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사람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살펴보니 기자를 해야겠더라. 점점 더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어서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면 기자와 PD의 경계가 큰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신문 기자는 지망하지 않았다. 방송이 좋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하고 싶다고, 고민한다고 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엄청난 '스펙' 관리가 필요하다. 블로그를 보니 그림도 잘 그리고, 드럼도 치고, 축구도 하던데 대학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

"역설적이지만, 내 대학 생활의 모토는 '스펙' 관리가 아니었다. 학점은 적당히 받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경험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 점에서는 학교 덕을 많이 봤다.(한동대학교) 원하는 대로 전과가 가능했으니까. 대학 2학년 때는 산업디자인 학부생이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서 기술 보다는 기획이 맞다고 생각해 언론정보학부로 전과했다. 난 대학 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 마실 시간도 없고, 원래 못 마시기도 하고. 아마 술을 멀리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웃음) 방학이 돼도 집에는 일주일 정도만 머물고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하거나 해외로 나갔다. 연극 동아리, 축구동아리, 밴드, 영화제작, 학생회, 자치회 할 것 없이 정말 일을 많이 했다. 대학생활이 100이라면 120정도 한 것 같다"

▲ 지난 8월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한 김요한 기자, 왼쪽 첫번째
기자 5년차다. 큰 상도 받았지만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는 자부심도 클 것 같다. 5년차 기자로 살며, 기자가 되니 이건 참 좋더라, 이건 진짜 별로더라 하는 것을 꼽자면?

"좋은 점은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기자가 아니라면 부장검사, 부장판사, 법원장 분들이 나를 왜 만나겠나. 반면 별로인 점은 사람들이 나를 자연인 김요한이 아닌 기자 김요한으로 본다는 거다. 기자와는 친구도 않는다고 하던데 진짜 그런 것 같다. 표면적이고 상투적인 인관관계가 늘어나는 것 같아 힘들 때가 있다. 술 문제도 있다.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기자는 특히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 술 아니면 성인 남자들이 저녁에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한국 사회의 음주 문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큰 낭비가 아닐까 싶다. 모두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갈 때는 ‘아 오늘 빡세게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냐. 사회생활 하면서 정말로 즐거워서 마시는 술자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술 마시는 얘기가 나왔으니, 영화 <부당거래> 얘기 좀 해보자. 거기 보면 기자가 향응 받고 시계 받는 그런 존재로 묘사된다. 법조기자는 어떻게 봤나, 실제로 그런가? "

그 영화를 여자 친구랑 같이 봤는데 "저렇게 노냐"고 물으며 싸늘하게 쳐다 보더라.(웃음) 그 얘기를 트위터에 썼더니 "실제로 그러지 않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더라. 기자를 기득권의 일부라고 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부당거래는 그냥 영화다. 삶은 영화와는 다르다. 기자 이전에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하고,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좋은 기자일텐데, 희망을 버릴 정도로 모든 언론이 썩진 않았다. 검사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상식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부당거래>에 보면, 연예인 마약 사건에 관한 부분도 나온다. 사회적 이슈를 연예인 마약사건으로 덮는 상황 말이다. 검찰의 캐비닛에는 수많은 사건이 들어있다. 이것을 시의 적절하게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많다. 실제로 어떤가?

"그런 의도가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상당부분 결과론적인 판단이 아닐까 싶다. 뉴스가 되느냐 마느냐는 사실 변수가 너무 많다. 예전에 수원삼성 구단과 건국대 축구부 비리 문제를 다뤘던 적이 있다. 몇 주 동안 준비한 야심차게 준비했었는데, 보도하는 날 오후에 신정아 변양균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그냥 묻혔다. 또 한 번은 강남지역 사설 카지노 취재를 한 적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 거의 한 달을 밖에서 살았다. 그렇게 2꼭지 만들어서 사설 카지노와 경찰이 연루된 사실을 보도했는데, 그 날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뉴스 말미에 아주 간신히 보도됐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의도를 가지고 보도를 하려고 해도 생각만큼 파장이 일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거다. 대중들의 수준이 있지 않나. 이걸 컨트롤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컨트롤이란 쉽지 않다. 결과들만 묶어서 해석을 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지 몰라도"

기자 생활 동안 가장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는 보도는 무엇이었나?

"작년(2009년)에 캐나다 교포인 분이 70일 정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정신질환이 있는 분이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람 이름만 알게 됐다. 당사자 찾는데 3주 걸렸는데, 검경 모두 본인이 취재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렵게 어렵게 당사자 가족들을 만나보니 사실은 그 반대더라. 본인은 굉장히 억울해했다. 그래서 그 취재를 하면서 거대한 조직이나 힘을 가진 집단과 그에 맞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검경의 말만 믿고 접었더라면 사건은 그냥 묻히고 말았을텐데, 언론의 몫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

"기자의 역할은 남을 지적하는 것인데, 이만큼 불편한 일도 없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겠냐. 그래서 내 좌우명은 겸손과 존중이다. 기자 생활 끝까지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내게 주어진 사회적인 역할일 뿐이니까. 내게 주어진 특혜를 권력으로 여기는 순간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듣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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