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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벨’- 노답인 관계보다 기꺼이 고독을! 홀로 빛나도 아름답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6.09 15:27

속도전의 시대 현대사회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은 70대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스템화된 업무처리 과정에서 주저앉고 만다. 그의 심장박동이 인터넷망에 대한 숙지보다 빨랐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이, 굳이 영화 속 70대의 노인뿐일까. 

우리 사회 50대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 사회의 주도적 세력이라 믿는다. 하지만 어느덧 직장에서 퇴직을 하거나 퇴직 즈음의 처지, 그게 아니더라도 함께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동료라기보다는 어르신으로 대접하는 나이다. 여전히 TV 드라마 속 로맨스에 가슴이 설레지만 어느덧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는 나이, 사회의 주도적인 존재로 살아가려 하지만 속도가 안 맞는 런닝머신처럼 자꾸만 헛발을 짚게 되는 즈음 과연 '나이듦'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바로 그런 난감한 세대에 ‘엄마 손은 약손'이 될 만한 작품이 찾아왔다. 바로 줄리언 무어의 <글로리아 벨>이다. 

50대의 글로리아가 사는 법

영화 <글로리아 벨> 스틸 이미지

글로리아는 이혼 12년차의 싱글이다. 그녀에겐 아들과 딸이 있지만, 이미 그녀의 품을 떠난 아이들은 각자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 모처럼 글로리아가 전화를 걸어 '엄마야, 어떻게 지내니? 사랑한다'라며 보고 싶다는 암묵적 대화를 나누어야 겨우 얼굴 한번 보는 관계. 이젠 아들의 육아에도, 딸의 사랑과 결혼에도 엄마의 자리는 숨죽여 눈물이나 흘리는 궁색한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든 어머니는 그녀에게 십년은 금방이라며 딸의 나이듦을 걱정한다. 

아직은 직장을 다니지만 가장 친한 동료가 어느덧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는 즈음, ‘언제든 필요할 땐 연락해’라고 하지만 그녀 역시 언제 그 동료의 처지가 될지 모를 나이다. 어디 그뿐인가. 병원에서는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는다. 치료 방법이라고 해봐야 하루 두 번 넣는 안약으로 경과를 늦출 뿐. 

50 즈음의 많은 사람들이 '허하다' '외롭다' '다 소용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듯이, 아마도 글로리아 처지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저런 단어에 천착했을 터이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겐 '특효약'이 있다. 그녀의 출근길은 그녀가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의 음악과 함께한다. 목청 높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그녀는 한껏 자신의 에너지를 고양시킨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쉴 사이 없이 이어지는 고객들과의 상담으로 채워지고, 방전된 그녀가 돌아가는 곳은 그녀 혼자 깃들어 사는 빈 집이 아니다. 젊은 시절 그녀가 즐겨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을 기꺼이 홀로 찾는다. 

영화 <글로리아 벨> 스틸 이미지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홀로 바에 앉아있는 글로리아의 어깨가 리듬에 맞춰 으쓱거려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클럽의 중심에서 리듬에 온 몸을 맡긴 그녀가 눈에 띈다. 파트너? 적어도 그녀의 목적이 '헌팅'은 아니다. 빈집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가는 대신, 함께 리듬에 맞춰 즐길 수 있는 그 누구라면 거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기꺼이 춤을 추며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겠다는 글로리아, 우울증 대신 기꺼이 웃음 치료를 받는 그녀. 그것이 바로 글로리아만의 '힐링 포인트'이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던 글로리아에게 한 사람, 아놀드(존 터투로 분)가 다가왔다. 예의 클럽에서 무심하게 함께 춤을 즐기던 다른 파트너들과 달리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그. 이런 감정이 다시 생길 줄 몰랐다며 그녀에게 상투적이지만 진심어린 고백을 수줍게 전한 아놀드의 순정에 글로리아의 마음도 뜨거워진다. 

이혼 12년차와 이혼 1년차, 거칠 것 없는 싱글인 두 사람의 사랑에 뜻밖에 복병이 등장한다. 아놀드의 전처와 딸들이다. 여전히 아놀드의 경제력에 의지하는 두 딸과 전처는 수시로 그의 핸드폰을 울리며 '아버지'를 호출한다. 그런데 문제는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그들이 싫어 자유롭고 싶어,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위절제술까지 받고 가정을 떠났다는 아놀드의 태도이다. 

홀로, 빛나리 

이제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순간 충실하려는 글로리아와 달리, 이혼 1년차 가정으로부터 채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아놀드는 전처와 딸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대하는 건 물론, 글로리아와의 관계도 드러내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글로리아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홀로 줄행랑을 쳐버린다. 그리곤 글로리아의 핸드폰에 불이 나도록 전화를 해대는 아놀드,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두 사람은 화해의 허니문으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지만 이번에도 '아놀드'의 가족들은, 아니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아놀드는 글로리아에게 시련을 남긴다.

영화 <글로리아 벨> 포스터

자식도 떠나고 사랑도 떠나고 이제는 늙고 병든 자신만 남겨진 글로리아. 하지만 글로리아는 '신세 한탄' 대신, 'Gloria, you're always on the run now~' 음악에 맞춰 다시 한번 힘껏 몸을 흔든다. 

2013년 칠레의 중년 여성 글로리아를 통해 피노체트 정권 하의 '자유'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풀어냈던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 이 영화로 주인공 폴리나 가르시아는 63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자신의 영화 <글로리아>를 헐리우드 버전으로 리메이크한다. 아니, '줄리안 무어' 버전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나이듦과 우울의 경계에서, 적극적이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길어내는 여성 글로리아란 캐릭터는 전적으로 배우 줄리안 무어에 의존한다. 나이가 무색하게 섹시한 몸매와 자유분방한 몸짓, 줄리안 무어는 커다란 뿔테 안경과 그 안경 뒤에서 깊게 빛나는 눈빛으로 50대의 고뇌를 시원하게 무찔러버리는 글로리아를 매혹적으로 표현해낸다. 

영화에서는 사랑으로 표현되었지만 글로리아와 아놀드의 엇갈림은 결국 사랑 자체보다 '삶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줄기차게 자신을 찾아오는 아놀드에게 글로리아가 던진 '어른답게 굴어요'란 대사는 바로 우리 사회의 화두인 어른됨에 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무능력한 딸들 때문에, 아픈 전처 때문에’라고 하지만, 그런 아놀드에 대해 '어른다워지라'고 한 글로리아의 지적은 어쩌면 우리 역시 고독과 고립에 대한 처방으로 ‘관계’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하게 만든다. 노답인 관계보다 기꺼이 고독을 선택한 글로리아,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어른됨'이요, 자기주도적인 페미니스트의 길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나면 어쩐지 내 몸의 근육들도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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