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축구가 만들어낸 쾌거 가운데 가장 큰 일을 꼽는다면 바로 여자 축구의 선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초만 해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여자 축구는 7월, 독일에서 있었던 U-20(20세 이하) 여자월드컵 3위를 시작으로 주목하기 시작해 9월에는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이라는 쾌거까지 이어지면서 남자 축구 이상의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성인 여자 대표팀 역시 피스퀸컵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홈팀 중국을 꺾고 3위에 올라 사상 첫 입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화려하게 올해를 마무리했습니다. 지소연과 여민지는 한국 여자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고, 전가을과 김나래, 문소리 등도 이에 못지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자 축구의 쾌거 덕분에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여자 축구 활성화에 모두 185억 원을 투입하기로 해 양적인 부분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이행된다면 한국 여자 축구 발전은 더욱 탄력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지소연이나 여민지, 전가을 선수가 다수 나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나아진 환경 속에서 축구만 몰입할 수 있는 선수들이 나올 거라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바야흐로 진정한 여자 축구의 르네상스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여자 축구의 환경은 많이 열악하고 갈 길이 멉니다. 등록 선수 역시 1천여 명 안팎에 불과하며 초,중학교 팀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선수들의 경기력, 경쟁력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정부 대책이 실행돼 팀이 생겨나고 그만큼 선수들이 늘어나면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이번 대책이 '반짝'으로 끝나고 꾸준한 지원, 관심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여자 축구는 언제든지 다시 2010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 선수들에게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뿌리가 흔들려 자칫 어렵게 만든 여자축구의 공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 송파초등학교 여자축구팀과 꿈나무마을 팀이 맞대결을 벌였다. 승패보다 선수들의 꿈을 키우는데 더없이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만들어졌던 훈훈한 경기였다. (사진- 국제피스스포츠연맹 제공)
그런 가운데 최근 풀뿌리 여자 축구에 힘을 실어줄 만 한 의미 있는 경기가 열려 화제를 모았습니다. 국제피스스포츠연맹이 진행하고 있는 '드림버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서울 꿈나무마을 선수들과 서울 송파초등학교 팀이 지난 18일, 송파초등학교에서 맞대결을 벌인 것입니다. 눈이 다소 쌓여 있는 가운데 치러진 이 경기는 스포츠에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드림버스'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국제피스스포츠연맹이 지난 5월부터 코치를 지원해 축구교실을 열어주고 있는 꿈나무마을 선수들과 서울 유일의 여자 축구팀인 송파 초등학교 팀 선수들에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됐습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지니고 있겠지만 두 팀에서 뛰는 선수 모두 열악한 환경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장벽처럼 여겼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꿈나무마을 선수들은 정식 축구부원이 아니다보니 그간 정식 경기를 치르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형편이었고, 춘-추계 대회 우승, 소년체전 2위에 빛나는 송파초등학교 역시 서울에 있는 유일한 여자팀이다보니 남학생들을 상대하거나 지방으로 원정 경기를 떠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알게 된 국제피스스포츠연맹은 두 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했고, 옛골토성 권태균 회장이 적극 지원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지난 18일, 의미 있는 매치가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단체와 기업의 후원 속에 두 팀은 매우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미래 지소연이 되고픈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꿈나무마을 팀이 접전 끝에 5-4로 이겼지만 승패보다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나눔과 큰 꿈을 가질 수 있어 더없이 소중하고 많은 의미를 가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이 한 경기를 통해서만 한국 여자 축구의 희망이 빛난다고 보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지만 소중한 경기가 훗날 한국 여자 축구의 주역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경기 뿐 아니라 올 한 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크게 빛낸 여자 축구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경기에 뛰는 모습을 자주 보고 팬들은 열렬하게 응원하는 문화가 완전하게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선수들이 5년 뒤, 아니면 10년 뒤에 진짜 국가대표로 거듭났을 때는 한국 여자 축구가 크게 성장해서 세계적인 강호로 떠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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