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선설 혹은 성악설, 착하거나 악하거나. 하지만 그런 '본성'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봉준호 감독은 말한다. 결국 인간을 규정짓는 건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한 인간의 선함 혹은 악함은 그 인간이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해체되고 사회적으로 규정될 뿐이라고 영화 <기생충>을 통해 말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시장 썩은 생선 속에 버려진 아이 '그루누이', 체취가 없는 그를 아이들은 두려워했다. 두려워하다 못해 죽이려고까지 했다. 냄새를 결핍하고 태어난 아이 그루누이, 그가 가진 평생의 소원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냄새'는 그 사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가장 본원적인 요소다. 바로 그 인간을 표현해 주는 가장 본원적인 요소인 냄새로부터 봉준호 감독은 '우리 사회의 경계'를 도출해 낸다.

학창시절, 꼭 한 반에 한 명 정도 아이들이 짝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대변하는 건 냄새, 유독 그 아이에게선 옆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 정도로 오래 씻지 않아 나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냄새는 그 아이의 가난을 상징했다. 그렇게 가장 원초적인 냄새로 상징되는 사회적 계급, 그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낙인’으로부터 차이는 시작된다. 계급으로 고착된 사회를 이보다 더 절묘하게 상징해내는 수단이 있을까.

상하로 재편된 설국열차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우리 사회엔 수많은 사업들이 스쳐지나갔다. 무슨무슨 체인점에서 갖가지 전문점까지, 다들 시작은 '대박'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제일 수지맞는 장사가 '폐점 물품 처리업'이라는 웃픈 현실처럼, 저 대박 아이템들은 '한 철 장사'도 넘기지 못한 채 무수한 가장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기택(송강호 분)과 근세(박명훈 분)가 공교롭게도 모두 '카스테라'집 사장님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선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시작이 IMF였든 혹은 정리해고였든 우리 사회 평범했던 다수의 가정들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져왔다.

그렇게 한때 사장이었지만 이제는 무기력한 가장들과 함께 가정도 무기력해진다. 아내는 돈을 벌어보지만 그 푼돈이 사업을 들어먹은 내리막길의 가정을 구하기는 역부족일 터이다. 충숙(장혜진 분)이 방안 가득 늘어놓은 수세미나 박 사장네 살림을 도맡아 했던 국문광(이정은 분)이나, 지하를 면치 못하는 충숙네 가정형편이나, 박 사장 집을 나서자 대번에 얼굴에 빚쟁이들의 흔적을 남긴 국문광을 보면 알 수 있다.

부모가 그럴 진대 아이들이라고. 우리 사회 교육이 곧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한다는 건 이젠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이 여전히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하고 있고, 딸내미가 그나마 다니던 학원조차 쉬어야 하는 건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을 번듯하게 밀어붙일 부모의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그래도 그들은 순박하다. 아버지가 방구석에 등짝을 보이고 무사태평 누워있고, 엄마가 기껏 수세미나 짜고 있는데도, 여전히 가족이란 울타리가 무사하다. 그러나 그 '순박하고도 여전한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허망한지 드러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봉준호 감독은 가난하지만 여전히 해체되지 않는 가족을 통해 이후 그들이 뛰어든 범죄가 그들의 타고난 성향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음을 변명한다.

가난한 지하 가족에게 찾아든 돌멩이, 아니 행운. 아들 기우(최우식 분)의 친구 민혁(박서준 분)은 자신이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동안 가장 믿을만한(?) 친구로 대학도 가지 못한 기우를 점찍었다. 그렇게 해서 기우가 문지방을 넘은 박 사장네, 어리숙한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 분)를 다혜(현승민 분)의 맥 한번 짚는 것으로 설득시킨 기우의 다음은 딸 기정(박소담 분)이었고, 이어 기택 그리고 결국 충숙까지 온가족이 '완전 취업'의 행운을 얻었다. 덕분에 가족의 맥주는 '필라이트'에서 '아사히'로 격이 달라진다.

모두가 실직이었던 가족이 그저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얻은 일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실직이다. 기택네로 인해 박 사장 집에서 밀려난 국문광 부부의 비밀,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는 이 두 가족의 엇갈린 희비극, 그리고 그런 두 가족의 사기에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박 사장네. 단지 경계를 넘나드는 저들의 냄새가 불편할 뿐인 그 지상과 지하의 위계는 흡사, 상하로 재편된 '설국열차'와도 같다. 계급에 따라 구분되었던 열차의 칸은 우리 사회 사람들을 볼모로 사로잡은 '집'이라는 칸을 통해 적나라하게 재편된다.

계급이 존재를 만든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하지만 기택 가족의 행운은 안전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지상의 박 사장네로 안착한 듯한 가족의 흔적은 '냄새'로 남았고, 그들의 완전 범죄는 비오는 날 찾아든 국문광으로 인해 흔들린다.

행운의 돌 때문이었을까. 기우의 학력위조부터 몹시도 순탄했다. 서울대 문서 위조학과가 있으면 가야겠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아버지. 범법 행위를 하는 자식들을 자랑스러이 말하는 이 가장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아니 지하에 사는 그들의 궁상이 너무도 옹색해 이 가족의 범법 사실을 잊게 만든다. 아니, 사기를 치고도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그들의 철면피스러움이 그들의 죄를 눙친다.

기택네와 문광네가 저지른 짓은 사기다. 그런데 그 '사기'에 의탁하여 박 사장네 가정의 평정은 유지된다. 가르치던 과외 선생이 어학연수를 가도 딸 다혜의 과외는 순탄하게 이루어지고, 정신없는 아들의 돌출행동이 다스려졌다. 요리는 물론 살림이라고는 젬병인 아내의 살림살이 역시 사람이 바뀌어도 빈틈없이 메워졌다. 박 사장 수행기사 기택 역시 냄새의 경계를 빼놓고는 무리가 없다. 백수 가족을 하루아침에 온 가족 취업으로 만든 문서위조라는 통과의례만 빼놓는다면 사기의 실체는 애초에 논할 바가 못 되고 만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 박사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게 바로 기생충의 마음’이라 정의 내린다. 인간을 숙주로 살아가는 기생충. 서민 박사는 길이 10M가 되어도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힘든 기생충을 예로 들었지만, 인간의 장 속에만 1000 종류가 넘는 균이 있다는 사실만 봐도 '공존'의 현실은 역력하다. 나아가 인류 그 자체도 지구에 붙어사는 기생충에 불과하다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영화 속 상하의 설국열차는 적나라한 우리 사회 공존의 현실일 뿐이다. 다만 <설국열차>처럼 뜨거운 혁명의 기치가 아니라, 웃게 되지만 돌아서니 어쩐지 먹먹해지는 '블랙코미디'이다.

멀리서 보면 웃기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슬플 수밖에 없는 현실은 경계를 타고 넘나드는 냄새처럼, 결국 그 경계의 선을 넘나들다 파국을 맞이한다. 경계라지만 기생충과 인간의 경계가 아니라 사실은 사람과 사람의 경계, 이들이 사람과 사람으로 섞여지는 순간 아비규환으로 치닫는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으로는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우는 여전히 그 지하방에서 마음을 먹는다. 잔혹동화로 끝난 <기생충>, 혁명이 사라진 <설국열차>, 더 고착화된 빈익빈부익부 자본주의 사회의 만화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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