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분배가 돋보였던 2010년 연예대상에서 가장 의외의 수상자, 혹은 순위가 바뀐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은 역시 현재 1박2일의 투톱을 맡고 있는 이수근과 이승기가 나란히 수상한 버라이어티부분의 우수상과 최우수상의 자리입니다. 이 두 사람의 뛰어난 활약에 물음표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해피버스데이에서도 진행자를 맡았었고, 개그 콘서트에서도 기둥역할을 하고 있는 이수근의 공헌이 좀 더 다양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수상 기준 자체가 단일 프로그램에서의 공헌을 비교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연속 우수상에 그치기에는 이수근의 성장과 입지가 아쉬운, 그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것이 모양새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죠.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지금 이승기가 1박2일에서 보여주고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영향력을 가리지는 못합니다. 수상식에서 농담처럼 왕비호가 내뱉은 것처럼 강호동이 이승기에게 묻어가는 것만 같은. 언제나 적절한 파트너를 찾지 못해 독불장군의 이미지가 강했던 강호동이었기에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짝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승기의 가치는 엄청나거든요. 당연히 이수근 역시도 강호동의 한쪽 날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강호동의 파트너를 꼽아보라면 그 자리는 이승기의 것입니다. 이 엄청난 호감덩어리가 보완해주는 장점들이 강호동의 빈자리를 적절하게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는 몹시도 똑똑하고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지능적인 승부사이지만, 강호동은 그가 내뿜는 강력하고 일방적인 이미지 때문에 기본적으로 호불호를 많이 타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하장사다운 그의 기백과 에너지에 힘을 얻고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걸하고 큰 목소리과 과장된 리액션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잘되는 것, 가능성 있는 것에 올인하는 그의 집중력은 가끔씩 출연자 몇몇의 분량을 날려버리는 편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만약 1박2일이 강호동식만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 이 프로그램이 누리고 있는 놀라운 성공은 그런 강호동의 빈구석을 채워주는 동료들의 어우러짐이 만든 성과물이란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승기의 장점은 이 프로그램은 물론 강호동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정말 절묘한 호흡과 조합을 뽐냅니다. 그야말로 호감덩어리인 그의 선한 이미지는 1박2일 전체에 걸쳐 따스함과 친근함을 배가시켜주고, 연예인답지 않은 허당 이미지와 형들과 함께 먹고 싶다며 삼겹살에 소주를 탐하는 막내다운 순진함으로 편안함을 더합니다.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매력을 뽐내는 이는 많지 않아요. 그가 보유하고 있는 선한 캐릭터의 장점은 그동안 1박2일이 겪어온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준 가장 든든한 토대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재간둥이의 성장은 참으로 특이하게도 강호동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동료인 유재석의 장점을 선보이고 있거든요. 이전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관찰력', 이번 주 1박2일에서 이승기는 주위를 살펴보고 그들의 특징을 잡아내서 적절한 순간에 활용하는 이 마법 같은 힘을 이승기는 나영석 PD의 모습을 흉내 내며 뽐냈습니다. 출연진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과 함께 오랜 시간동안 일요일 저녁을 보냈던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패러디와 흉내 내기로 이승기는 다소 밋밋할 수 있었던 자유여행에 확실한 포인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른 멤버들로서는 하기 힘든, 그리고 그동안 1박2일에서 볼 수 없었던 굉장히 독특한 즐거움이었어요.

'땡', '안 됩니다' 이 짧은 두 마디를 맛깔스럽게 살리는, 그리고 전체 흐름에서 적절하게 조합하는 장면으로 그는 예능 진행자로서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히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연기자로서의 재능과 어우러진 능력이 꽃피운 것이죠. 절대 웃지 않는다던 완벽한 파트너 강호동의 배려와 맞장구와 함께 나영석 PD마저도 뒤로 넘어가게 만드는 그의 원맨쇼는 마치 이승기가 왜 자신이 최우수상에 걸맞은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시간이었어요. 이 젊은이가 과연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1박2일은 물론이고 강심장을 지켜보는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점점 더 성장하는 이승기의 모습입니다. 최우수상은 그에게 작은 통과점에 지나지 않아 보여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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