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시상식만 하면 뭔가 오점을 남기는 악습이 있는데, 이번 KBS 연예대상에선 이승기가 받은 최우수상이 최악의 오점으로 남을 듯하다.

SBS라면 말이 된다. SBS에서 이승기는 <강심장>을 맡아 놀라운 진행능력을 선보였다. <강심장> 성공의 4할은 이승기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SBS에서 강호동과 이승기가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는다면 그건 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KBS? 이승기가 올해 <1박2일>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활약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이건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이승기의 인기’에 대한 시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최우수상이 아니라 인기상 같은 적당한 명목의 상을 따로 만들어서 줬어야 한다.

이번 KBS 연예대상은 박명수에게 ‘적당한’ 명목의 상을 줬다. 최고의 엔터테이너상이라는 정체불명의 상을 수여한 것이다. 박명수에게는 최고의 엔터테이너, 이승기에게는 최우수상? 말이 안 된다.

박명수는 작년에도 냉대당한 바가 있으므로 올해엔 최우수상을 받아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유재석의 그림자에 가려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다. 위악적인 캐릭터 때문에도 대중의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하지만 박명수가 만들어내는 재미는 결코 작은 수준이 아니다. 그야말로 ‘큰웃음 빅재미’를 선사해주는 사람으로서 그가 이렇게 계속 냉대 받을 이유는 없다.

박명수는 이번에 이승기가 최우수상을 받을 때 눈물을 흘리는 상황극을 연출해 또다시 ‘큰웃음 빅재미’를 선사해줬다. ‘뼛속까지 개그맨’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뼛속까지 웃기는 사람들이,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에게 너무나 쉽게 밀리는 모습은 ‘공정한 사회’의 풍경이 아니었다. 박명수의 MBC 최우수상을 기대한다.

- 이수근도 대인배 됐다 -

이번 KBS 연예대상은 강호동이라는 대인배를 배출해냈다. 강호동은 객관적으로는 분명한 대상이면서도 상을 놓치고 이경규를 축하해줬다. 그리고 또 다른 대인배가 배출됐는데, 그건 바로 이수근이었다.

이수근이야말로 올 KBS 연예대상의 진정한 최우수상 수상자였다. 그는 KBS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을 강호동과 함께 구해냈다. <1박2일>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강호동과 이수근의 활약이 가장 컸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수상에 그치고 정작 최우수상은 이승기에게 갔다. 둘 사이에 상이 뒤바뀐 것이다. 그것을 밝은 모습으로 축하해줬으니 이승기도 대인배에 등극한 셈이다.

올해 KBS를 가장 빛낸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그 프로그램을 위기에서 살린 2명이 나란히 ‘대인배’가 된 것이 공교롭다. 그나마 강호동이 대인배가 된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가 연속해서 대상을 독식하는 것보다 선배가 받는 것을 축하해주는 것이 훨씬 강호동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수근이 대인배가 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의 기여도에 비추어, 반드시 최우수상이 가야 했다. 그가 최우수상을 받는다고 강호동처럼 독식의 이미지를 줄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아이돌 출신 꽃미남 꽃미녀 예능인들이 득세하는 지금 정통 코미디언 출신의 성장기로 미담이 될 만한 사례였다.

그가 이승기에게 밀린 것은 이승기 같은 키 큰 꽃미남이 아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공정해야 할 연예대상이 ‘1등 외모스타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깨워 준 것이다. 불유쾌한 연말선물이다. 한국에서 공정한 시상식을 바라는 것은 몽상일 뿐인가?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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