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시작되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김영현 극본, <나의 아저씨>, <미생>의 김원석 연출, 그리고 장동건, 송중기, 김옥빈, 김지원, 김의성, 박해준 출연. 이미 제작진과 출연진 면면만으로도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 초기부터 화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소문난 잔치'의 첫 삽은 어땠을까?

스탭들 갈아 만든 <왕좌의 게임>의 복사판?

<아스달 연대기>가 방영되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칸 황금종려상이라는 쾌거와 함께 모든 스탭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준수하여 촬영을 한 점으로 다시 한번 호평을 받은 영화 <기생충>. 이처럼 촬영 현장에서 스탭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가고 있는 즈음에, 안타깝게도 <아스달 연대기>는 지난해 10월부터 1일 25시간의 노동을 밀어 붙였고, 특히 브루나이 해외촬영 기간에는 최장 7일간 총 151시간 30분 휴일도 없는 연속 근로를 강제한 것으로 방송스태프노조가 발표했다. 심지어 안전상의 이유로 현지 코디네이터가 만류했음에도 야간에 강에서 카약을 타는 촬영을 강행하는 등 안전 조치도 미비한 상태였음이 밝혀져 '스탭들을 갈아서 만든 드라마'란 꼬리표가 방영도 하기 전에 따라붙었다.

제작비 540억,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로 기간 내 제작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진 우리 드라마 제작 관행과도 같은 스태프 혹사.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에 대한 잡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티저가 나오자마자 <왕좌의 게임> 시청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좌의 게임> 포스터에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의상, 심지어 극중 '센터빌'이라는 지역적 배경마저도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허구의 국가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7개의 국가와 하위 몇 개의 국가들로 구성된 연맹 국가의 통치권을 둘러싼 예측 불허의 싸움을 시즌별로 그려내고 있는 <왕좌의 게임>은 2011년 방영 이래 2019년 시즌 8에 이르기까지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덕후들을 양산한 미드이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와 관련된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서 티저에서 드러난 <아스달 연대기> 출연진의 면면이 <왕좌의 게임>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아스달 판타지의 낯선 세계관

그렇다면 이런 잡음과 우려를 짊어진 <아스달 연대기>의 첫 회는 어땠을까? 드라마는 인간과 뇌안탈의 협상으로 시작된다. <왕좌의 게임>에서 와일들링이 연상되는 '뇌안탈'. 그들에게 인간족은 쑥과 마늘을 보여주며 함께 땅을 일구며 기름진 농경사회를 만들어가자 권유한다. 하지만, 쑥과 마늘을 먹지 않는다며 거부한 푸른 입술과 푸른 피를 가진 뇌안탈. 그들은 인간 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의 지략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달의 평원을 빼앗기고 살아남은 자는 처절한 '사냥'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간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그들은 각자 인간족의 타곤(장동건 분)과 아사혼(추자현 분)에게 구출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꿈속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이아르크로 도망치려했던 아사혼.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 은섬이 발견한 굴을 통해 이아르크에 자신을 희생시키며 도착하지만, 그런 희생의 과정이 결국 '아스의 신' 아라문이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남겨진 은섬(송중기 분)은 인간족에게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난다.

<아스달 연대기> 첫 회는 <왕좌의 게임>이 연상되건 어떻건 웅장했다. 540억이란 제작비가 손색없을 정도의 규모, 태고의 땅 아스와 각 인물들의 배경이 되는 CG는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규모와 CG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부하들을 베고 인간족과 뇌안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전리품으로 품에 안은 타곤의 젊은 날을 비롯하여, 배우들도 '상고시대 아스' 속 자신이 아직은 낯선지 어설퍼 보였고, 뇌안탈과 이족들의 낯선 언어는 쉽사리 태고의 전설에 익숙해지기 힘들게 했다.

이아르크로 온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 은섬, 그리고 아버지에 의해 전쟁터로 떠밀려난 타곤 등을 중심으로 '아스'의 전설이 써내려져 갈 것이다.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자는 아스 산웅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채 부족의 절멸을 맞이한 뇌안탈, 그들의 앞에서 산웅은 '국가'를 논한다. 함께하지 못하면 결국은 짧은 전투와 길고 긴 학살의 사냥이 이어지는 대결의 세계. 일찍이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이래 시대의 담론, 국가와 통치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져왔던 박상연, 김영현 작가는 자신들의 세계관을 역사라는 한정적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상고 시대'라는 공간 속에서 펼쳐내고자 하는 포부를 펼친다.

하지만 그 포부의 세계관은 낯설다. <왕좌의 게임>은 물론 <어벤져스> 시리즈 중 <토르> 시리즈, 그에 앞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이 서양의 옛 신화와 전설에 기대어 '판타지'를 펼쳐나갔던 바, 전설과 설화의 세계를 차용하는 건 이제 판타지 세계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서구인들의 정서적 기반에 바탕이 되는 전설과 설화를 차용한 것과 달리, <아스달 연대기> 속 '판타지적 설정'은 이미 <태왕사신기> 등을 경험했지만 그보다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갓을 쓰고 돈키호테의 갑옷을 입은 등장인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등장인물의 한국어가 신선하게 다가올 정도니.

물론 우리는 쑥과 마늘의 곰 토템 신화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판타지'에서 문화적 국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스달 연대기>의 관건은 이런 낯선 세계에 대해 제작진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낯섦을 '신선한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는가, 여전히 <늑대소년>처럼 고운 송중기와 30대라 해도 믿을 만한 장동건의 근육만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장황한 입문서와도 같았던 1회에서도, 푸른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뇌안탈 라가즈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자신이 이용당했다며 죽어가는 아사혼의 눈물어린 죽음이 슬펐다. 분절음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출생의 비밀은 궁금했고, 비극적 죽음은 마음을 울렸다. 이런 아직은 '난해한 전설'을 넘어 <왕좌의 게임>만큼 치열한 국가론이 펼쳐지길. 제작비 540억을 쏟아 부은 드라마의 성취는 그저 한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드라마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성패로 이어질 테니 부디 새로운 장르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