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언론 보도에도 담합이 존재한다면 오늘자(24일)의 경우 의심이 들만도 하다. 태안주민들의 서울 상경시위를 대다수 신문이 사진기사로만 처리했기 때문이다. 사진기사로 처리한 것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 시위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행태도 닮았다.

▲ 중앙일보 1월24일자 12면.
태안주민들이 서울로 올라와 시위를 하면서 무엇을 요구하고 주장했는지는 일단 관심 밖이다. 이 정도면 ‘철저한’ 무시다. 한겨레를 제외하고 삼성중공업의 사과광고를 일제히 게재했던 대다수 신문들이, 정작 그 사과를 받아야 할 ‘주체’들인 태안주민의 요구와 절규에 대해서는 ‘외면’한 셈이다. 한국 언론의 ‘윤리’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삼성중공업 사과문 게재한 대다수 언론, 태안주민 상경 시위는 사진기사로만

오늘자(24일) 아침신문들 가운데 태안주민들의 서울시위를 비중 있게 보도한 곳은 조선일보와 한겨레.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신문은 사회면에서 사진기사로만 ‘간단히’ 걸치는 수준에 그쳤다. 태안주민들의 서울집회 사진을 1면에 배치한 곳 역시 한겨레가 유일했다. 명심하자. 삼성중공업 사과문 광고가 실리지 않은 매체가 한겨레라는 사실을.

대다수 신문이 사회면에 ‘걸친’ 사진설명도 태안주민들이 집회 당시 요구했던 사안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특히 정부의 특별법 제정 요구는 부각한 반면 삼성에 책임을 묻는 부분은 대부분 ‘누락’시켰다. 국민일보는 태안주민들의 집회 자체를 보도하지 않았고, 사진기사로만 작게 처리한 중앙일보는 오피니언 면에서 ‘자원봉사기념관을 태안에 세우자’는 외부칼럼을 게재했다.

오늘자(24일) 대다수 신문에 실린 태안주민의 사진기사는, 삼성의 언론에 대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23일 서울역 앞에 집결한 태안주민들은 삼성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요구했는데 이 부분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자(24일)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서울역 새 역사 앞 계단과 광장을 가득 메웠고, 연단 앞에 팔지 못한 김·조개·굴·바다메기 등을 쏟아부었다. 이들은 ‘보상하라!’, ‘타도 삼성!’ 등을 외치며 나무로 만든 삼성중공업 예인선 모형과 텔레비전, 냉장고 등 삼성제품을 망치로 때려 부수기도 했다 … 대책위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이건희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행복한 눈물> 등 고가 미술품을 팔아 태안군민이 흘리고 있는 고통의 눈물을 닦아줄 용의는 없는가’라며 ‘삼성이 그토록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떠들면서 왜 유독 이번 사고와 관련한 사회적 책임은 모르쇠로 일관하는가?’라고 물었다.”

▲ 한겨레 1월24일자 12면.
태안주민들의 분노 대상인 삼성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태안주민들이 서울로 올라오면서까지 집회를 벌이는 이유는 삼성에 대한 분노와 정부의 늑장대응을 질타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태해결을 위한 신속한 조치를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하면서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던 삼성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 23일 집회였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자(24일) 아침신문들은 사실상 대부분 ‘왜곡보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태안주민들이 분노했다는 사진은 일제히 실으면서 그 분노가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대부분 언급을 피했다. 기사제목이나 사진만 얼핏 보면 마치 그 분노가 정부 쪽으로만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삼성이라는 단어를 찾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는 데에는 별도의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 없다. 그냥 삼성의 힘일 뿐이다.

오늘자(24일) 신문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경향신문의 보도태도다. 그동안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비롯해 삼성 관련 보도에서 한겨레와 ‘쌍벽’을 이뤘던 경향이 오늘자(24일)에선 태안주민들의 집회소식을 사회면에서 사진기사로만 처리했다. 6면에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태안주민 초청 간담회 내용을 전하긴 했지만 다소 미흡한 느낌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기자들, 힘내시길

▲ 한겨레 1월24일자 4면.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늘자(24일) 한겨레 지면이 더욱 외롭게 느껴진다. 언론의 독립과 성역 없는 기사를 위해 노력해왔던 경향과 한겨레 기자들의 노고를 알기에 하는 말이다. 비록 ‘없는 살림’이지만 그 노고에 동참하고자 미디어스도 작은 힘을 보탠다. 미디어스는 경향과 한겨레에 깊은 연대와 지지를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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