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경영평가단이 방송법 개정 사안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대해 특정 안을 지지하고, KBS 사장의 인사·경영권을 침해하거나 현재의 입법·사법체제를 부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2018년도 KBS 경영평가보고서를 내놔 논란이 예상된다. 대체로 정치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입을 전제로 하거나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큰 내용들이다.

KBS 이사회는 해당 경영평가보고서를 심의·의결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들이 KBS 경영평가와 관계 없거나 부적절한 내용임에 합의, 보고서의 의견은 이사회의 공식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로 했다. 그러나 경영평가단을 구성·운영하고 보고서를 심의·의결하는 주체가 KBS 이사회라는 점, KBS 경영진이 이행하거나 개선할 수 없는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제안이 담긴 경영평가보고서가 KBS 명의로 발간된다는 점 등에서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9일 서울 여의도 KBS사옥에서 열린 KBS 정기이사회에는 '2018사업연도 경영평가 및 공표(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KBS 이사회는 방송법과 동법 시행령에 따라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KBS 방송 및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해야 한다. 이에 KBS 이사회는 KBS 감사와 외부전문가 6인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을 구성, 도출된 평가보고서를 심의·의결한다. KBS 이사회는 도출된 평가결과를 바탕으로 회사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에 대해 사장에게 개선이나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번 경영평가보고서 의결과정에서 논란이 된 내용은 크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특정 법안 수용과 보상책으로서의 수신료 인상 추진 ▲ KBS 부사장 임명권을 소수 이사에 부여하는 방안 ▲현재의 입법·사법체제에 대한 부정 등이다.

우선 '2018 KBS 경영평가단'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의 경우 여·야 정치권의 이사 추천 몫을 방송법에 명시하는 내용의 이른바 '박홍근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소위 '언론장악방지법'이라고 불리며 2016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 있어 여·야 정치권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 여야 7대6비율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장 추천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만연했던 과거 보수정권 시절, 언론장악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차선책으로 발의된 해당 법안은 그동안 관행으로 이루어져 왔던 정치권의 이사추천 몫을 법에 명시한다는 점에서 현재 언론시민사회와 공영방송 구성원들로부터 비판 받고 있다. 과거 해당 법안을 반대해 무산시킨 자유한국당은 정권교체 이후 '박홍근 안'의 통과를 당론으로 정해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의 대상이 된 법안은 '박홍근 안' 외에도 시민참여제를 내용으로 담은 '이재정 안', '추혜선 안', 중립지대 이사 구성을 내용으로 담은 방송통신위원회 안 등 여럿이다. 여·야 정치권은 당초 지난 2월까지 관련 법안들을 논의해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데다 근래 국회 공전 상황까지 겹쳐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웅래 위원장(가운데)와 여야 간사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2018년 한 해 동안의 KBS를 평가하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야 할 경영평가단이 권한과 업무범위를 넘어서는, 정치·사회적 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특정 법안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KBS 다수 이사들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보고서에는 현재 한국의 입법·사법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 의사가 그 비례에 따라 국회의석으로 표현되지 않는 비합리적 국회 구성 방식이 여전하다. 현재와 같이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KBS 경영이 정상화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거나 '사법부조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흐릿하다', '사법부 판결이 오락가락 한다' 등의 내용이다.

선거제도 개혁, 사법농단 이후 사법개혁 등에 대한 보고서 작성자의 의견으로 풀이되는데, 관행 또는 보고서에서 제안한 '박홍근안'의 통과 등으로 정치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입을 전제한 뒤 입법·사법체제 개혁을 통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된다. 이 역시 정치적으로 다분히 논쟁적인 사안이며, 한 개인의 비판이 아니라 공공기관격인 KBS의 공문서에 적시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다수 이사들의 의견이 개진됐다.

보고서에는 KBS 사장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내용도 담겼다. KBS 사장 임명 시 부사장 임명권을 KBS 소수 이사들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사진 구성에 대한 정치권 개입을 전제로 KBS 지배구조의 정치편향성 극복을 위한 제안으로 풀이되는데 시민평가를 반영해 사장을 선출한 직전 선례나, 사장의 인사·경영권을 온전히 보장하고 이사회를 통해 관리·감독한다는 방송법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018년 10월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사장 후보자 정책설명회. 약 18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이 KBS 사장 선출에 참여했다.(사진=KBS)

이 같은 보고서 내용에 KBS 이사회 다수 이사들은 보고서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청했으나 경영평가단은 이를 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용환 이사는 이날 이사회에서 "전문가의 주관적 견해를 배제할 수 없으나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론에 입각해야 하는데 너무나 주관적인 의견을 KBS에 대한 보편 타당한 인식처럼 서술한 게 너무 많다"면서 "공공기관으로서 공문서에 담아서는 안 되는 내용을 담았다"고 비판했다.

조 이사는 "한 시민으로서 마음에 안든다고 공문서에 '국회 구성부터 잘못됐다', '선거법이 잘못돼 그러니 다 뜯어 고쳐라', '대법원이 헌법해석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저도 대법원에 누구보다 비판적인 사람이지만 (경영평가에)하등 필요없는 개인의 의견"이라면서 "지배구조 법안 문제도 어쨌든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국민 의사를 수렴해 결정할 문제에 대해 자기 개인을 내세워 '이게 옳다'는 결론으로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조 이사의 평가다.

김경달 이사는 "경영평가는 결과적으로 KBS의 발전적 개선에 기여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지배구조 문제 등 이 경영평가를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발전적 기여를 하고자 함인지 상당히 의문스럽다"며 "이 평가서가 공유됐을 때 KBS가 개선 노력을 해야한다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상당히 소모적인 논쟁을 양산할 것이다. 경영평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일 이사는 "지배구조 개선 관련 문제는 정치적 함의가 있어 악용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과연 경영평가에 담겨야 하는지 의문이다. 거기에 사장의 인사·경영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내용이 있다. 경영진 구성을 이사회가 나눠먹자는 이 부분이 어떻게 KBS 책임경영을 보장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영근 이사도 "KBS는 방통위가 아니다. KBS는 사장이 경영책임을 갖는데 인사에 제도적 개입을 인정하자고 하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며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 이대로 나가면 엄청난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평가단이 이사들의 내용 수정 요청을 거부한 가운데 KBS 이사회는 경영평가단 동의 없이 내용을 수정할 지를 두고 고민했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이사회는 경영평가를 심의할 수 있지만 회사 정관에 따르면 경영평가 내용에 대한 수정권한은 없다. 법과 정관의 취지나 과거 전례 등에 비춰보면 경영평가단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이사회의 내용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KBS 이사회는 보고서 첫 머리에 경영평가단의 보고서 내용이 이사회 공식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기재하기로 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문제, 국회 구성과 사법부 판결에 대한 평가 등의 보고서 내용은 이사회 의견과 다름을 강조하기로 했다.

해당 경영평가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오는 31일 KBS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KBS1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는 경영평가 방송문안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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