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결말에 해당하는 내용을 미리 알고 관람하면 흥미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영화가 있다. 그럼에도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중요 내용을 기사화해 포털에 버젓이 송출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영화 관계자들에게 배포하는 보도자료 맨 첫 페이지에서 봉준호 감독이 “모 시퀀스 이후의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최대한 감춰주면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신신당부할까.

‘기생충’엔 계급이 존재한다. 자본의 유무에 따라 성공한 IT 기업 CEO라는 재력가 계급, 가족 모두가 백수에다가 반지하에 거주하는 빈민 계급으로 캐릭터가 구분된다. 6년 전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계급투쟁을 내세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이 계급투쟁에 천착한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에서 유산계급은 열차에서 가장 좋은 칸에 탑승하고, 무산계급은 가장 낙후된 칸에 타고 있었다. 무산계급은 유산계급이 누리는 풍요와 혜택을 자신들도 공유하기 위해 투쟁한다.

영화에서 열차의 앞칸에 탑승한 유산계급은 봉준호에게 있어 ‘악마화’가 불가피했다. 유산계급은 점차 앞칸으로 달려오는 무산계급을 무력화하기 위해, 해체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다. 봉준호 감독은 바퀴벌레를 갈아 무산계급에게 음식으로 제공하는 방식의 묘사로 유산계급에 대한 악마화를 시도했다.

이런 일련의 묘사 속에서 유산계급은 무산계급에게 응징당해도 마땅한 ‘악’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기생충’ 속 유산계급인 박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 무산계급인 기택(송강호) 사이엔 계급이란 경제적 서열은 존재해도 계급투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 가운데엔 재력가는 응징당해 마땅한 악의 몫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베테랑’의 유아인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기생충’ 속 박사장과 연교는 응징당해 마땅한 재벌로 묘사되지 않는다. ‘설국열차’나 ‘베테랑’처럼 유산계급에게 ‘악마화’를 덧입히지 않는 설정은 ‘기생충’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런 설정은 무산계급이 가질 수 있는 분노를 유산계급에게 돌리는 뻔한 클리셰를 피하도록 만들어준다. 대신 영화는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을 때의 부작용에 대해 시니컬한 블랙코미디의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유산계급에 해당하는 박사장과 연교가 탈(脫)악마화에 성공했다 해도 이들 유산계급은 무산계급이 넘는 경계를 무척이나 증오한다. ‘기생충’에서 유한계급과 무산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경계는 ‘냄새’다.

박사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고 연교에게 뒷담화를 하고, 극 후반부 연교가 통화하면서 코를 막고 창문을 여는 건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데 있어 냄새가 무언의 상징으로 작용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돈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억압하거나 갑질을 하진 않지만, 유산계급의 경계 안으로 포용할 수 없다는 구분이다.

물질적으로 결여된 자에겐 냄새가 난다는 설정을 하되, 있는 자에겐 향수 등의 특징되는 냄새가 없이 묘사되는 점도 ‘기생충’이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을 구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각 말미에 나오는 성악가의 클래식, 무산계급이 TV에 매몰되기 쉬운 반면에 상류층은 이탈리아어로 제공되는 아리아에 귀를 맡기는 설정도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을 나누는 기호로 작용한다.

‘기생충’은 ‘중용(中庸)’을 강조하는 영화다. 중용이란 단어는 모라자거나 넘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은 없다 해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어떤 사태가 야기될 수 있는가를 반전과 더불어 선사하는 21세기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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