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권 교체 이후 '언론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이뤄진 KBS·MBC 두 공영방송사의 파업은 이사회 재구성과 사장 교체를 목표로 삼았다.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는 YTN, 연합뉴스 등의 언론사 내부에서도 경영진 교체를 목표로 한 언론종사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과거 정권에서 지속돼 온 보도·편성·제작 책임자들의 문제적 행위와 이로 인해 발생한 불공정 보도 사례들을 폭로하여 인적 청산과 언론개혁을 이루어 내겠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이에 시민들의 지지가 뒷받침되면서 이들의 싸움은 승리로 매듭짓게 됐다.

그러나 현재 이들 언론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들 언론사 구성원들은 '적폐 청산'과 '언론 개혁'을 외쳤지만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시민들은 적잖은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시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언론 개혁'이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론사 내부의 문제를 직시해 온 시민들은 현재의 언론에 더 높은 수준의 평가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시민들이 바라는 '언론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이들 언론사가 인적청산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25일 충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정권 교체 이후 이뤄진 미디어 개혁의 성과를 진단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언론 정상화의 좌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다시 적폐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경영진 교체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을 되짚어보면 '적폐 청산'이라는 기조를 인사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고, 이제는 '구조로서의 적폐'라는 관점으로 언론사 조직과 관행의 문제들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지상파 방송 4사(KBS·MBC·SBS·EBS) 사장단이 2018년 6월 12일 산별교섭 상견례를 가지는 모습.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 인적 청산 이후에도 지속되는 언론에 대한 불신

2017년 9월 EBS 장해랑 사장 임명(2018년 12월 사퇴)을 시작으로 SBS 박정훈 사장 및 본부장 임명동의제 투표 통과, MBC 최승호 사장 취임, 연합뉴스 조성부 사장 취임, KBS 양승동 사장 취임, YTN 정찬형 사장 취임까지, 주요 지상파 및 공영언론의 경영진이 정권교체 이후 교체됐다.

김 강사는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언론사 적폐와 과거 보도의 문제점을 목도하면서 언론을 '신뢰할 정보원'이 아닌 '부단히 감시하고 평가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 기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시민들은 파업 등을 거쳐 지배구조가 바뀐 언론사에 대해 새로운 기대를 가졌고, 이전 정권 시기 언론 적폐와 현재 언론의 상황을 비교해가며 개혁 이후의 언론을 바라봤다. 그러나 몇 가지 논쟁적 사례들에서 언론과 시민 간 간극이 드러났다.

김 강사는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의 언론 취재 행태와 보도가 본격적으로 언론 불신 정서가 부각되는 단초가 됐다고 했다. 당시 평창 올림픽이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졌던 상황에서 언론은 북한응원단 가면을 '김일성 가면'으로 지칭한 CBS노컷뉴스의 오보를 무분별하게 받아 써 독자들의 항의에 직면했다. 이어 같은 시기 연합뉴스는 북한 응원단이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 속보로 올리면서 과도한 취재 경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평창 올림픽 직후에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사건을 다루며 '정봉주 옹호 논란'을 빚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종영을 맞았다. 2018년 7월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조폭과 권력 : 파타야 살인사건'편이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대상으로 한 해당 방송은 제작진과 이 지사 측 대립과 함께 이 지사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다른 시민들 간 공방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김 강사는 해당 공방에 대해 "시민들이 과거와 달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하고, 언론보도를 선택적으로 수용해 언론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SBS 뉴스로 촉발된 '손혜원 의원 목포 부동산 관련 이익충돌' 논란에서는 이 같은 시민들의 개입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다른 한편, 지난 3월 MBC 뉴스데스크는 개편 첫날 '장자연 사건' 관련 핵심 증언자인 윤지오 씨를 인터뷰하면서 앵커가 무리한 질문과 요청을 해 사회적 논란을 빚었다. 방송 다음날 앵커는 오프닝 멘트를 통해 윤 씨와 시청자를 향해 공개 사과를 해야했다.

4월에는 연합뉴스TV가 노무현 전 대통령 실루엣 사진으로 일베 이미지를 사용하고, 연이어 문재인 대통령 출국 소식을 전하며 태극기가 아닌 인공기를 삽입해 물의를 빚으면서 '연합뉴스 구독료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에는 36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청와대가 답변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KBS가 강원도 산불 관련 재난보도, 문재인 정부 2주년 특집 대담방송 등으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 KBS의 강원산불 재난보도는 특보체제 전환이 늦었던 점,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재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상황 중계에 몰두한 점, 강릉시에서의 중계를 고성군 화재지역 인근 중계로 표기한 점 등의 논란으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쳤다.

지난 9일 방송된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는 인터뷰 진행자의 질문과 태도로 논란을 빚었다. 자유한국당이 사용하는 '독재자' 표현을 질문에 그대로 사용한 점과 '끼어들기'와 같은 진행자의 태도로 논란이 일었으며 방송 직후 KBS 내외부 구성원들의 우호적 평가가 SNS상에 노출되면서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게 일었다.

이와 같은 방송 논란들 속에서 기자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증대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2018년 5월에는 한겨레 소속 기자가 마약 복용 혐의로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기자들이 익명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성범죄 영상을 공유하거나 성매매 없고 정보를 교환한 이른바 '기자 단톡방'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 '인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언론 안팎의 위기…'구조로서의 적폐' 되돌아 볼 때

이처럼 언론 개혁에 대한 언론과 시민 간 인식의 간극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김 강사는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과 인사권 개혁만으로는 '언론 정상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봤다. 이사나 사장 등 한 개인의 자격에 맞춰진 적폐 청산은 개혁의 법위를 협소하게 만들고, 조직의 문제가 은폐되기 쉽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김 강사는 '구조로서의 적폐'라는 관점으로 지난 15개월 간 발생한 문제들을 바라볼 때라고 강조했다. 김 강사는 "구성원들이 더 이상 이런 언론사에서 일할 수 없다는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는 바로 조직을 망친 구조와 관행이 위태로울 때이며 그로부터 이익을 얻어온 이들이 위기를 느낄 때"라며 "이런 조직과 관행이 바로 '적폐'다. 지난 시기 전면적인 구호로 제기되었던 적폐 청산을 계속 인사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강사는 크게 ▲관료제 조직 문화 ▲변화와 혁신의 외부화 ▲극심한 언론사 간 경쟁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리는 시청자참여 등을 구조적 적폐로 꼽았다.

김 강사는 언론사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결정과 인사권이 상층에 집중되고 조직 내 본부, 국, 실 간 분리가 심화될수록 성과나 혁신보다 현재를 유지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관료제 조직 문화의 부작용이다. 김 강사는 사례로 사고 발생 시 언론사가 가장 먼저 내놓는 '매뉴얼'을 지적했다.

김 강사는 "언론사의 대응 메뉴얼은 보도의 내용과 관점보다 각 부서를 일정한 알고리즘 형식으로 배열하는 과정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계별로 어떤 부서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경계 짓는 이런 메뉴얼은 관료제의 조직에서 구성원들에게 책임 소재를 서로 떠넘길 명분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강원산불 재난방송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와 KBS는 명령체계 일원화를 골자로 한 매뉴얼 개정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매뉴얼은 재난 현장을 현지 주민들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법,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 관계기관에 어떻게 현장을 파악하여 적절한 대응 여부를 물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 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게 김 강사의 지적이다.

김 강사는 "재난 대응 매뉴얼의 문제는 단지 재난이라는 예외적 상황에 대처하는 지침이 아니다"람 "예외 상태에서 드러나는 조직의 문제는 곧 그 조직의 본질이자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보여주는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라고 꼬집었다.

관료제 조직 문화는 언론사에 요구되는 변화와 혁신을 외부화, 외주화 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김 강사는 영상편집, 방송 CG 등에서 부적절한 이미지가 사용될 때 후반 작업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긴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은 노동시장의 문제임과 동시에 구조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미디어 전략이나 독자 중심의 기획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언론사에 요구되는 변화의 시도들이 경직된 관료제 조직 문화와 만났을 때 곧잘 비정규직 채용이나 언제든 해체할 수 있는 부서의 신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점차 격화되는 언론사 간 경쟁 상황도 구조적 문제, 혁신의 외부화와 맞물려 언론의 불신도를 높이는 적폐로 꼽혔다. 김 강사는 '김일성 가면' 오보, 북한 응원단에 대한 과도한 사진 촬영, MBC 뉴스데스크의 무리한 인터뷰 등은 격화된 언론사 간 경쟁의 산물로써 언론의 전문직주의를 약화시키고 시청자 불신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기자 단톡방' 사건이 언급됐다. 언론사 간 경쟁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이른바 '물 먹지 않기' 위해 참여한 공간 안에서 사적 이익을 채우기 위한 폐쇄적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김 강사는 '제보자와 평론가'라는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시민 참여 방식을 기존보다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일련의 논란들이 자칫 언론사나 언론 종사자들의 시청자 소통 회피로 이어질 경우 폐쇄적 조직문화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다수 언론사는 최근 사장 추천 과정에서 시민 참여방식을 채택했으며 이 중 일부는 시청자위원회·독자위원회 강화, 청원 게시판 신설 등 시민 참여 방식을 확대하는 안들을 개혁 과제로 상정했다. 그러나 '시민 심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시청자위원회의 위상, '시민 외주'의 경로를 따르고 있는 퍼블릭 액세스 등을 살펴보면 여전히 언론사에 대한 시민 참여는 '제보자와 평론가' 라는 형식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김 강사의 지적이다.

2017년 9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모습(사진=미디어스, 연합뉴스)

■ '구조적 적폐', 언론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질적 우위 확보했는지 돌아볼 때

이 같이 언론사가 '구조로서의 적폐'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에 참석한 토론자들 역시 공감을 표했다. 기자인 송명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위원회 간사는 구조적 적폐를 지적한 발제에 깊이 공감한다며 KBS가 최근 직면하고 있는 안팎의 여러 위기들에 대해 " (KBS가)위기를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 간사는 인적 청산과 관련해 내부적 혼란과 반발, 적폐청산 기구의 법적 당위성 논란 등으로 과거 불공정 보도 책임자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구조적 적폐라고 했다.

송 간사는 "관행과 관습으로써의 적폐들이 있다. 파업 이후 1년여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신뢰감있게 다가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며 "결국 우리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실력적 측면에서도, 공영방송 역할론의 당위적 측면에서도 KBS가 당연시 해왔던 모든 것들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송 간사는 "안팎의 여러 위기를 유발한 많은 이유 중 핵심은 국민들이 KBS에 기대했던 실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실력적인 부분에 대해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현재 언론의 위기가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언론의 연이은 실수로 언론 본연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과거의 언론장악은 신뢰 상실의 한 요인이었지만 새로운 소통 환경에서 언론이 상대적 우위를 확실하게 입증할만한 질적 수준을 확보했는지는 의문"이라며 "새로운 플랙폼 시대의 소비 방식 변화로 인한 경쟁력 약화와 차원이 다른 언론 본연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언론사의 구조적 적폐와 안팎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요 언론 내부의 치열한 반성과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전문직주의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현실을 인정하고, 엘리트의식이 장애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제작 자율성 확보의 중요성 만큼 자율성 확보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김 교수는 언론사 경영진의 정상화는 큰 의미가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성과가 적어 빛바랜 느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경영진의 정상화는 큰 의미가 있다"며 "KBS·MBC 사장 선임 방식 개혁은 법 개정에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변화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도 청와대나 여당이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개입하고 내부 반발이 있다고 상상해보면 비극"이라고 짚었다. 인적 개혁과 언론장악 방지를 위한 제도화의 가치와 성과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김 교수는 구조적 적폐 문제와 더불어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 언론의 사회적 기능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여러 주체가 다각도로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플랫폼 시대에서 공공성의 개념은 이전과 동일한지, 공공성 가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기존 매체에서는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지 등을 업계는 물론 학계, 시민사회 등과 함께 고민하고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최근 언론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미디어개혁위원회'(가칭)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미디어개혁을 위해 이용자·학계·시민사회 등이 함께 참여하는 범사회적 논의기구를 대통령 소속 기구로 두고, 미디어 정책 전반에 대해 시대에 걸맞는 논의와 결과도출을 해나가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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