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뉴스들 뿐이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말하지 않는 이도 없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이 부정적 방향으로 급진화 된 정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25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으로 지난 18일간의 장외투쟁 일정을 ‘일단’ 끝마쳤다.민생투쟁 대장정을 선언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분간 준비 기간을 가진 후에 ‘시즌2’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당분간 준비 기간’이야말로 자유한국당의 원내 복귀를 추동해볼만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일 것이다.

물밑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알 수 없으나 원내지도부 간 협의가 진전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갈수록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은 정부 여당이다. 애초 5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을 비롯한 민생입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점쳐져 왔으나 논의가 거듭될 수록 오히려 그 가능성은 희박해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정부는 5월 내 국회 통과를 전제로 추가경정예산의 집행이 경제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일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외의 주요 경제 관련 기관 및 기구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거듭 낮추는 추세이다. 따라서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2.6~2.7%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월 하순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할 때 성장률 조정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이 가능성을 이미 예고했다.

최근 발표된 통계를 종합하면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은 여전히 감소세에 있고 우리 경제의 ‘허리’로 표현할 수 있는 40대의 고용 역시 제조업 침체 덕에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정부는 재정정책이 저소득층 소득 감소폭을 줄이는 등 일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정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분배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성장 로드맵이 될 걸로 생각됐던 혁신성장은 여전히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기술의 진보를 근거로 한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최근 이재웅 타다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언쟁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의견 조율과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혁신적(?) 자본가와 관료가 서로의 탓을 하고 있다는 게 이 문제의 본질이다.

둘째는 정부가 대기업이 추진하고 싶어하는 ‘신산업’의 정책적 보증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시스템반도체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바이오헬스니 디지털 헬스케어니 하는 분야의 집중 육성을 말하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보는 광경은 삼성이 이끄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 형성의 가능성이 아니라 분식회계와 증거인멸 시도 등과 같은 스캔들의 범주에 있는 것들 뿐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처방이 효과를 발휘하지 않고 있다면 처방의 내용을 바꿔보거나 진단을 다시 해봐야 한다. 이는 관료들의 손에 맡겨져 있는데, 재정관료가 이 정권의 정책적 철학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이 제1야당으로 유출된 것은 관료의 비협조가 경제 정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이들의 사보타주가 정치화돼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점은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반발이 자유한국당과의 밀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촛불’을 통해 정치를 정상화 하면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마치 난파선에서 탈출하는 선원들처럼 자기 이익이라도 챙기자는 각자도생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최근의 ‘여경’ 논란이 결국 팔굽혀펴기 등의 고용 방식 문제와 경찰 권력의 강화로 귀결되는 것은 이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장외투쟁을 놓고 중도 확장에 한계를 보였다는 둥 가짜뉴스의 온상이 됐다는 둥 말이 많지만, 이들의 행보가 최근의 우울한 풍경을 정치적으로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결과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과 탈원전 정책으로 경제가 무너졌고, 국가채무비율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으며, 남은 것은 세금폭탄 뿐이라는 황교안식 레파토리가 보수언론과의 공조를 통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 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거다.

개혁을 말하는 정치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회 관료 언론 재계 이해당사자들 모두에게서 우군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 국민에게 호소해 대중적 압력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총선을 겨냥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단기적 관점의 ‘묘수’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여러 난국에 빠져 당장 관철하기 어렵더라도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를 관철할 의지 역시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에 대한 평가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선거 결과로 이루어지지만 ‘역사적’으로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정치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당장은 손해와 패배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대의명분에 복무하였다는 기록을 스스로 남기는 것이다. 대의의 정치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부활할 수 있다. 생즉사 사즉생이라는 말도 있다. 말하자면,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지금 이런 각오를 가진 정치세력은 어느 쪽인가? 이른바 ‘범여권’이라 일컬어지는 ‘개혁’세력인가, 아니면 ‘극우’의 색채를 숨기지 않는 보수야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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