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개 주는. 심은 자가 거두는 것처럼 세상이 언제나 공평하면 좋겠지만 그런 바람과는 반대로 기껏 노력하고 발굴하고 적응시켜 놓았더니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들이 그 열매를 거두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의 아이템이나 어렵게 발견한 신인이 대세로 떠오르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면 곧바로 다른 곳에서 그대로 차용하거나 활용하기 일쑤인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그렇죠. 현재 방송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표절이나 베껴쓰기라고 지적하기 시작한다면 이런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포맷이든, 조합이든, 캐릭터든 간에 잘나가는 것, 탐나는 것들은 언제나 방송사를 오가며 이식되고 변종을 만들어내기 일쑤에요.

그런 의미에서 2010년 하반기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을 지배했던 트랜드는 그 인기와는 상관없는, 하지만 무척이나 인상적인 캐릭터와 조합들을 각 공중파 여기저기에 뿌려놓은 특이한 약자. MBC 일요일 일요일밤의 뜨거운 형제들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신설되거나 새롭게 편성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이 엉뚱하고 사고뭉치인 형제들에게서 힘을 빌려왔거든요. 출연진들의 면모만 따져본다면 새로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5인자에서 1인자로의 진입을 꿈꾸는 박명수는 뜨형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KBS와 SBS의 새로운 프로그램 진행자로 버전업했습니다. 그것도 뜨형의 형제들과 함께 진입하면서 그 효과를 배가하고 있죠. 백점만점의 토니안과 쌈디, 밤이면 밤마다의 탁재훈은 모두 뜨형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관계를 이미 만들어놓은 그의 또 다른 인맥들입니다. 밤이면 밤마다는 물론 공중파와 케이블을 오가며 다시금 재기를 꿈꾸는 탁재훈 역시 반등의 기회를 뜨형에서 얻은 것이 사실입니다. 수차례의 아바타 미팅 등의 미션을 통해 그는 자신의 개그 감각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거든요.

다른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그맨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진출할 때면 늘 겪게 되는 성장통으로 힘들어했던 박휘순은 여우의 집사 고정이나(비록 폐지가 되긴 했지만;;) 강심장을 비롯한 각종 게스트 출연으로 점차 보폭을 넓히고 있고, 새로운 대세인 쌈디도 각종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오르며 3인자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승승장구의 고정패널, 드라마 투입으로 연기활동까지 겸하면서 활발한 개인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비스트의 이기광. 새롭게 투입된 토니안까지 뜨거운 형제들의 영향력은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그램 출연진 명단에서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이들이 투입된 것들이 다들 아직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신생 프로그램이기에 그 힘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현재 뜨거운 형제들은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는 중이에요.

그것은 장수 프로그램이 늘어가면서 늘 고정되어 있는 캐릭터나 출연진에 대한 지루함, 새로운 캐릭터와 인물에 대한 절실함이 강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형제들의 출연진들은 매번 TV를 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익숙하지만 지겨운 출연진 돌려 막기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으로 다가온 것이죠. 그만큼 뜨형 안에서 각자의 호흡은 탐이 날만큼 재미나고 개성이 강합니다. 사고뭉치들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의외의 웃음 포인트를 주는, 그리고 서로의 호흡 역시도 신생 어느 프로그램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뿌리인 뜨거운 형제들은 침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심지어 툭하면 구설수나 불만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무례함, 지나침, 과도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것은 이들 출연진의 조합이 만든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톡톡 튀고 의외성으로 가득한 비정형적인 개그를 구사하는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작 이들 6명 중에서 전체를 관장하고 호흡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중간 버팀목 역할을 하던 김구라 역시도 매끄러운 조율보다는 욕쟁이라는 강하고 독한 캐릭터를 가진 악역이었고 그마저도 하차하고 난 뒤에는 더욱 난장판이 되었죠. 박명수와 탁재훈의 좌충우돌은 제어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모습을 따라하는 장난꾸러기 동생들은 그 소란을 더욱 증폭시키기만 합니다. 한번쯤 멈추고, 자제와 관리를 해줄 브레이크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비슷한 조합을 이식했지만 밤이면 밤마다에는 김제동이, 백점만점에는 박경림이 있다는, 박명수의 옆에는 유재석이, 탁재훈의 전성기는 이휘재의 지원 덕분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멈춤 장치가 없으니 뜨거운 형제들은 가장 핫하고 극단적인 재미를 추구하긴 하지만 일요일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보이에는 영 껄끄러운, 선호를 많이 타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경쟁상대는 현재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폭넓은 연령층을 커버하고 있는 1박2일이구요. 그러니 이 아까운 활력은 뻗어나가질 못하고 엉뚱한 다른 이들의 배만 불리고 있습니다. 허전한 퍼즐조각, 격렬한 일요일밤의 전장이 만든 희생자. 뜨거운 형제들은 볼수록 아쉽고 안타까운 프로그램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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