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붕 뚫고 하이킥>과 <추노>, <공부의 신>, <파스타> 등의 인기로 시작해서 <슈퍼스타K>의 허각 열풍을 거쳐 <시크릿가든>의 인기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 <공부의 신>을 제외하면 작품적으로도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과 별개로 이런 작품들의 인기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조건은 유감이다. 이런 좋은 작품들을 덜 만나도 좋으니 새해엔 그런 조건이 사라지면 좋겠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은 것은 불쌍한 식모 자매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식모 아이가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주인집 의사 아들을 사랑한다는 설정에 많은 시청자들이 눈물지었다.

이렇게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엄청난 계급차에 기반한 로맨스는 슬프고 극적이다. 그래서 인기 멜로물의 주요 소재가 된다. 올 초를 강타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 라인이 그랬고, 현재 연말을 강타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의 멜로 라인도 그렇다.

‘까도남’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재벌 3세다. 그와 까마득한 계급차가 나는, 변변한 학력도 수입도 없는 한 처녀가 현빈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시크릿 가든>의 내용이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불쌍한 처녀인 하지원은 슬픈 눈으로 현빈을 바라본다. 그때 느껴지는 아픔. 그것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수많은 폐인들을 양산한 힘이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인간은 다 똑같은 인간이어서 모두가 그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라면 이런 식의 아픈 로맨스가 가능했을까? ‘학력도 없고 미래도 없고 수입도 없는 불쌍한 처녀’라는 설정이 가능했을까? 설사 설정이 나왔다 한들 그런 사회의 청춘남녀들이 이런 ‘황당한’ 캐릭터에 공감했을까?

우리 사회에선 너무나 양극화가 심해지고, 청춘남녀들의 열패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설정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추노>는 조선시대 천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실감 나게 그려 찬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현재의 우리 사회를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 공감했다.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슈퍼스타K> 허각 열풍이 나타났다. 허각은 말하자면 ‘천민’의 신분상승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허각의 인생역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는데, 만약 한국사회가 복지사회였다면 허각의 드라마틱한 삶이 가능했을까?

<파스타>는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트렌디 드라마이지만, 한편으론 레스토랑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노동 조건도 주요한 테마였다. 거기에서 요리사들은 주방장과 사장의 기분에 따라 하루아침에 잘려나가고, 잘린 다음엔 아무런 안전망이 없어 끊임없이 기존 업소의 눈치를 보는 역할로 나왔다. 한국사회가 복지사회였다면 이런 설정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부의 신>은 올해 최악의 드라마였는데, 이것은 정말로 한국식 사회만을 위해 특화된 작품이었다. 우리 사회가 입시지옥이 아니라면, 서북부 유럽과 같은 평준화 사회라면 아예 불가능했을 일인 것이다. 그런 곳의 사람들은 대학과 대학 사이에 서열이 존재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생들이 경쟁한다는 것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그런 사회에선 당연히 <공부의 신>이 나올 수 없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하는 이유는 장래에 <추노>에 나오는 노비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혹은 <파스타>에 나오는 비굴한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신분차이의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결국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봉건적 양극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인 것이다. 지금처럼 양극화가 계속 되면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추노>같은 명작도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시크릿 가든>같은 아픈 사랑이야기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삶은?

이런 명작들 안 봐도 좋다. <슈퍼스타K>같은 짜릿한 성공스토리의 감동, 없어도 좋다. 그런 것들이 나올 수 없는 ‘밋밋한 사회’. 모두가 존엄하고 모두의 삶이 안정적이어서 딱히 피눈물을 흘릴 일도 없고, 비련의 여주인공도 나올 수 없는, 그런 ‘심심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 새해 소망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