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한미정상의 통화내용을 유출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이고, 강 의원에게 기밀을 전달한 외교관의 행위는 “공익제보”라고 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주장이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내용은 공허하다. 우선 정상 간의 통화는 그 내용에 구분 없이 3급기밀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를 몰래 수집하거나 공표하는 행위는 따라서 외교기밀누설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어떤 정권이든 대통령의 정상간 통화내용을 전부 공개한 적은 없다. 국민 또한 그 전부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 외교를 잘 알지 않더라도 정상들 간의 통화가 그대로 알려질 수 없다는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의 통화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척동자도 모를 리 없는 상식 수준의 인식이다.

한미정상 통화 ‘기밀 유출’…한국당, “불법 감찰” 반발 (KBS 뉴스9 보도영상 갈무리)

형법 113조 1항.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상 외교기밀누설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유출하거나 수집한 사람도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판례도 존재한다.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1995년 12월 대법원은 1986년 <말>지의 보도지침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을 선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교상 기밀’에 대해서 “외교정책상 외국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 외교상 이익이 되는 모든 정보자료”라는 판례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번 외교기밀유출은 강효상 의원과 그 후배인 외교관 K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MBC <뉴스데스크> 등 다수의 언론은 23일 해당 내용이 본래는 주미대사만 보도록 봉인된 서류를 대사관 직원들이 뜯어서 돌려보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번 사건 외에도 대사관에 전달되거나 만들어진 기밀들이 전혀 기밀스럽지 않게 다뤄졌을 것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가 기강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외교기밀 유출' 외교관 "강효상이 먼저 요구해 전달" (JTBC 뉴스룸 보도영상 갈무리)

그래도 외교관 K씨가 대사관의 모든 기밀들을 전부 강효상 의원이나 외부로 유출했을 거라도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을 미국을 비롯한 외국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상상하면 낯이 뜨거워질 따름이다. 특히 한미 양국은 북한비핵화를 두고 자주 만나고,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조율해가고 있다. 당연히 그 대화는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한미양국의 동의하에 발표하는 내용 외에는 알아도 지켜야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은 국민의 알 권리도 아니고 공익제보도 아닌, 외교기밀 누설이라는 범죄라는 것이다. 형법 113조에 명백히 규정된 사건이고, 대법원 판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런 정도의 명백한 사건마저도 논란이라는, 기울지 않는 저울에 올려놓고 만다. 사건의 핵심에 전직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자유한국당 의원이 있다고 범죄가 논란으로 희석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에 묻고 싶다. 그래서 강효상 의원의 외교기밀누설은 범죄인가, 아니면 여야의 흔한 논란 중 하나인가? 그 판단에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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