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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기밀 누설, 본질은 무엇인가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의원과 보수언론, 외교부 관료의 삼각동맹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5.24 09:21

[미디어스] 이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격이 기밀누출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출신의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외교부 지인을 통해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불법적으로 취득해 공개했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강효상 의원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7일 통화를 하면서 방한 일정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잠깐이라도 한국을 방문해달라”면서 5월 일본 방문 일정 전에 방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 방문 뒤 미국에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방식이면 충분하다”는 답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구걸 외교’의 한 사례로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지나치게 북한에 온정적인 태도로 대북정책을 추진해 미국과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추진하고 이를 성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끼워넣기식 일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게 자유한국당 주장의 어느 부분을 말하는 것인지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청와대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일정 문제보다 기밀 유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청와대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 유출 경위를 외교부와 합동감찰한 결과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부 직원 모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 사람은 강효상 의원의 고교 후배로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다. 모씨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읽고 강효상 의원에게 그대로 알려줬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3일 오전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3급 기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외교관에 대한 처벌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원칙적으로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주미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도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이를 돌려본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사건은 특정 외교관의 일탈을 넘는 조직적 문제로 비화된다. 주미 한국대사관 전체에 대한 감찰과 처벌도 피할 수 없다.

외교부를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식 자료에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틀리게 서술하고 이를 방치하는 사건 등이 수차례 있었다. 얼마 전에는 ‘구겨진 태극기’를 내걸어 심각한 문제가 된 일도 있다. 지금의 상황을 놓고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이런 사건들은 어떤 ‘사고’였다기보다는 외교부 관료들의 ‘사보타주’가 어떤 의미로든 작용한 것 아닌가 의심된다. 그러고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부처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이나 업무능력에 대한 의문 등이 보수언론의 지면에 심심찮게 오르내렸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는 일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간 외교부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외교부 내 관료들의 반발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강경화 장관이 비고시 출신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처의 수장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법농단 등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문제 때문에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에 관료들이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앞의 두 이유에 더해 대외정책의 변화 때문에 원래 외교부 내 주류였던 미국-일본 라인이 배제되는 현상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언론들이 이런 사실들에 방점을 찍고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효상 의원을 통해 이뤄진 기밀 누설이 관료의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정 언론의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통해 보수언론의 여론전이라는 ‘지원’을 얻으면서 반대급부로 정권에 불리한 기밀을 야당에 누설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기밀을 누설한 것에 대한 책임은 엄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국가 운영이라는 차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공무원 집단의 조직적 반발과 맞서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관료의 힘에 밀리기만 해서는 정권이 원하는 개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23일 외교부 1차관으로 ‘대표적인 일본통’이란 평가를 받는 인사가 임명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인사를 통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이 인사에는 그간 언론이 비판해왔던 대일관계 개선이라는 대목에 있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 또한 실려있을 것이다.

현지시각 23일 프랑스에선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됐다. 역시 가장 뜨거운 감자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인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에 반발하는 그림이 재연됐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한일관계에서 당장 성과를 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일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뭔가 한일관계 개선의 발판이 마련되리라는 기대를 또 버릴 상황은 아닌 듯도 보인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얼마 전 “한국과의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고 발언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한일관계 개선 시도는 지금 상황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G20 정상회의를 놓치면 이번 정권에선 일본과의 관계를 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지금까지 일련의 상황에 대한 평가이다. 최근의 변화를 대외정책이 원래의 전통적 접근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애초에 외교부 내 관료조직을 대상으로 한 개혁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관철되었는지 등을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밀 누설보다 이 문제가 더 본질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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