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최근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가 국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며 상속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그러나 여러 공제제도, 실효세율 등을 따졌을 때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같은 경제단체의 주장을 '상속세 괴담'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일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의 의견을 담은 '상의 리포트'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가업 상속 중과세제도 개선, 중소·중견 가업 승계요건 완화, 서비스산업 R&D 세제 개선, 기부문화 활성화 지원 등의 제안이 담겼다. 주로 상속세, 증여세, 법인세, 소득세 등과 관련한 법 개정 제안이다.

특히 대한상의는 "세금을 내려면 사실상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 기업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빚어지고 있다"며 상속세 부담을 OECD 평균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관련 법안 폐지 또는 개선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그러나 이 같은 경제단체의 주장은 '상속세 괴담'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23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과의 통화에서 "상속세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제도를 같이 봐야 한다. 세율도 있지만 공제제도, 가업상속공제제도 같은 제도도 같이 봐야한다"며 "(경제단체의 주장은)상속세 소설, 상속세 괴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우선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OECD 평균 수준을 요구한 경제단체 주장에 반박했다. 정 교수는 "OECD 국가들 중 상속세를 이미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국가들도 많다"고 말했다. OECD 35개국 중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13개국. OECD 국가 상속세율 평균을 계산했을 때 이들 국가의 상속세율은 0%로 집계된다. 단순히 OECD 평균 상속세율만 놓고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다.

정 교수는 "그 나라들은 (상속세와)다른 형태로 자본이득세라는 것을 걷고 있다"며 "예를 들면 일본 같은 경우에는 10%~55%까지 걷고 있어서 10%~50%인 우리보다 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도 18%~40%까지 걷고 있고, 프랑스는 45%까지, 독일도 30%까지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여전히 상속세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경우 우리와 비슷하다"면서 "우리는 공제를 많이 주고, 가업상속공제도 기업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96% 기업들한테 다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단체의 주장은) 괴담 혹은 소설 수준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대한상의 등 경제계는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이 65%라는 주장도 함께 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제도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실제로 65%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제제도 때문이다.

'65%'라는 수치는 제도상 최대주주가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회사 최대주주의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주식 매매가가 형성된다. 이를 고려해 '할증'을 붙여 65%로 과세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마저도 각종 공제를 통해 그대로 세금을 내는 기업들은 없다.

정 교수는 "공제가 있고 과세표준이 있기 때문에 최고세율이 50%라는 것이지 실제로 전체에 대해 50%를 내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500억 이상을 상속 받는 경우에도 최대 30%정도 내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면서 "더 중요한 건 '가업상속공제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96% 기업들이 이 제도의 혜택으로 세금을 500억까지 면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상속공제제도 중 공제금액이 가장 큰 제도로 피상속인이 10년~30년 이상 영위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기초공제해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제도다. 공제한도액이 2008년 이전 1억원에서 현재는 최대 500억원까지 확대됐다.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제도의 취지는 가업승계 공제금액 확대를 통한 고용유지와 국민경제 활성화로 해당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상속 이후 10년동안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정 교수는 "상속세 제도는 가업을 물려받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 30억 원만 넘어도 50%를 다 내게 돼 있다"며 "그런데 매출이 3000억 원까지 되는 큰 기업도 500억 원까지 상속세를 깎아준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연합뉴스)

또한 정 교수는 기업의 세금 부담을 볼 때 상속세와 함께 '소득세'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득세와 상속세를 합해 OECD 국가와 수치를 비교해야 기업에 대한 국가별 세금 부과 현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는 소득세 과세가 상당히 약한 편이다. '돈 벌 때는 좀 가볍게 하고, 대신 부의 대물림 정도는 막자'라고 해서 소득세를 상당히 약하게 걷고 있다"며 "모든 나라가 소득세와 상속세를 걷고 있는 셈인데, 두 가지를 합한 것이 어느 정도 (세금)부담을 하느냐, OECD 국가들에 비해 무겁냐 가볍냐를 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속세 실효세율과 상속세 부과대상의 범위도 함께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가 분석한 2018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최근 5년간 실효세율은 평균 14.2%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상속세 납부 인원은 6986명으로 전체 상속인 중 3%만이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상속세 최고세율 구간에 포함되는 인원은 전체 상속인의 0.1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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