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묘한 위화감, 혹은 예전과는 다르다는 낯선 침묵이나 무시의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으셨나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인가 싶으시다구요. 2010 광저우 아시아 게임이 끝난 뒤의 풍경이 주는 감흥들이 제게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특이하고 특히나 불편하거든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끝난 뒤에 벌어졌던 일들은 전부 사라져 버리고, 이상하고 괴이한 시선만 가득한 볼썽사나운 잔치만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도무지 연관성도, 정당성도, 어떤 전망도 발견할 수 없는 뻔하기 짝이 없는 얼짱 공치사에 대한 말입니다.

종합 성적 2위 달성이라는 쾌거를 거두고, 여러 의미 있는 결과들을 도출한 풍성한 잔치였던 아시안 게임의 열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회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일어난 천안함 사태는 그 환호의 함성을 순식간에 사그라뜨렸습니다. MBC와 KBS의 공동 중계이기는 했지만 몇몇 인기종목에만 편중되고, 그것도 대부분 실황을 중계하는 것이 아닌 경기 내용 재방송이나 똑같은 내용 반복하기였으니 생생한 감동과 긴장감을 전달하는 것에도 실패했었죠.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위대한 성과, 올 초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벅참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광저우 아시아게임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아시아게임은 우리의 실생활과는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적인 거리감이 있었어요. 이런 거리감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지난 동계올림픽 때와는 달리 별다른 여운이나 특집 없이 조용히 끝난 뒷마무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용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들의 호들갑으로 대회 시작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열풍이 있습니다. 바로 각 종목별 얼짱을 찾아내서 그녀들의 미모에 순위를 매기고 대회 성적 여부에 관심을 집중시킨 괴이한 접근법이었죠. 자신의 종목에 적합한 얼마만큼의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경쟁을 보여주는 스포츠 게임에서 단지 외모를 집중 조명하는 태도부터 어이가 없었을 뿐더러, 정작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도 지대한 방해일 뿐이었던 훼방 놓기였어요. 우리가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접한 선수들의 익숙한 이름들은 대부분이 바로 이 얼짱 타이틀을 소유한 미모의 선수들입니다.

이런 5대 얼짱이니, 차세대 누구이니, 누구와 닮은꼴 선수라느니 하는 시끄러운 미모 품평회 속에서 이번 아시안 게임은 소외 종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대한 필요성 환기, 경기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해설,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운동 경기들에 대한 조명과 발견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냥 예쁜 누가 어떤 성적을 냈고, 어떻게 좌절했는지만을 그녀들의 사진과 함께 시끄럽게 증폭시키며 전달하는 찌라시들만이 가득했을 뿐이죠. 이번 광저우 아시아게임은 철저하게 얼짱들의 올림픽이었고, 미남미녀들만의 잔치였습니다. 동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은 철저히 외모에 의해 구분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삐뚤어진 관심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불모지인 리듬체조에 소중한 재능을 보여준 선수이지만 지금 손연재 선수를 향한 관심은 그녀의 기량이나 발전 가능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인 잡지에 바니걸로 촬영을 마친 바둑기사 이슬아 역시도 침체되어 있는 바둑계를 향한 지원을 위한 것도 아니죠. 정다래 선수의 단순한 호감이나 순진한 발언 몇몇을 확대시켜 논란을 만들어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화제에 오르내리는 것은 오직 몇몇 미남미녀 스타들에 대한 것들뿐이에요.

물론 그들 역시도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지원을 받고 응원이 필요한 운동선수들입니다. 그런 관심에는 역시 외모가 풍기는 매력이 중요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들을 향한 관심이 해당 종목에 대한 지원과 성원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과 성원이 정당화되려면 그 한편에서는 똑같은 땀을 흘리며 성과를 거둔 운동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 그들에 대한 조명이 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영광의 승자는 물론이고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던 패자들까지 조국을 대표한 이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응원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과연 운동선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필요한 미덕이 무엇인지 자체가 헷갈릴 정도에요. 왜 바둑기사가 바니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왜 동메달리스트가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이 얻어낸 다른 수많은 금메달의 승자들보다 화제에 오르내리며 팬 사인회를 다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면서 과연 운동선수들에게 힘을 내라며 응원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훈련하기보다는 그냥 미모를 가꾸는 것이 훨씬 더 성공에 가까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정상은 아닙니다. 이놈의 끊이지 않는 얼짱 열풍은 무척이나 불쾌하고 너무나 짜증스러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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