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 연합뉴스
상처의 기억에 우열이 있을 순 없겠지만, '인사청문회'는 '촛불'과 함께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심하게 앓았던 기억이다. 언론 장악의 효과로 웬만한 충격들은 거뜬히 튕겨 낼 수 있는 엄호를 받고 있지만 유일하게 '인사청문회'와 '촛불'만은 언론이 엄호해줄 수 없는 매우 직접적인 타격의 장이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이 개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오늘자(20일) 조선일보를 보면, 한나라당은 "장외 투쟁을 하고 있는 야당을 국회로 불러오고,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개각을 꼽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뭉기적 거리고 있다. 인사를 한들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이들을 고르기가 어렵고, 청문회 통과가 어렵다는 것은 인사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단 뜻이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구냐지만 이 정부는 인사청문회 무서워 인사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몇 개월째 그냥 비워져 있는 자리들이 여럿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경제부는 지난 '8.8개각' 때 이미 장관이 바뀌었어야 했던 자리인데 그대로이고, 감사원장은 3개월 국민권익위원장은 4개월 째 공석이다. 지난 정부 같았으면 이러한 사실 자체가 '업무 공백이니', '인사가 난맥이니', '아마추어 정부니' 하며 큰 논란거리가 됐을 텐데, 아시다시피 이 정부 하에서 언론은 그런 문제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 정부는 그냥저냥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국 하긴 해야 한다. 더욱이 내년이면 이제 집권 4년차가 되는 마당이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당의 지적대로, 예산한 날치기로 인해 하수상한 연말 정국의 우중충함을 한방에 날리는데 '개각'만큼 효과적인 카드도 없다.

▲ 개각과 관련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동상이몽을 다룬, 20일자 조선일보 6면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멘트를 인용 “이달 말보다는 내년 초 개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선일보 역시 청와대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 "감사원장, 권익위원장, 문화부, 지경부 장관의 경우 후보자 검증이 상당히 돼 있다"고 했다. 종합해보면, 큰 폭의 개각은 아니더라도 연초에 개각을 한다는 것과 그 개각이 이른바 'MB맨'들을 내각 전면에 배치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연초 개각과 관련한 하마평 보도는 행간과 맥락을 매우 예민하게 읽어줄 필요가 있다. 오늘 자 서울신문과 조선일보의 기사에도 각각 중요한 언급이 숨겨져 있다. 서울신문은 'MB맨'을 꼽으며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이동관 전 홍보·박형준 전 정무 수석의 이름을 맨 앞 선에서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복수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인용 "적임자만 찾으면 빈자리는 언제든 메울 수 있다"고 했다. 이 둘의 맥락을 조합해보면, 언제든 메울 수 있는 빈자리는 4개이고, 돌출된 이름은 3개인 셈이다.

기능적으로 볼 때, 이동관, 박형준 수석이 감사원장이나 지경부 장관으로 갈 수는 없다. 결국,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가장 강력한 감사원장 후보라고 할 때 이동관, 박형준 수석이 각각 문화부 장관과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분산 배치될 거란 얘기다. 박형준 수석의 경우 권익위원장 후보군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력과 경력 상 이동관 수석이 권익위원장으로 가는 것은 생소해 보인다. 결국, 문화부 장관에 이동관, 권익위원장에 박형준으로 정리될 듯 싶다. 그리고 그것이 'MB맨'을 전면화하는 까닭과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화부 장관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부 장관에 이동관 수석이 임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시다시피 이동관 수석의 별명은 '핵관'이었다. 무수하게도 인용됐던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바로 그였다. 그는 자신 말고 누가 핵심관계자이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었다. 임기 내내 잦은 '엠바고' 요청과 '마사지' 논란으로 악명이 높았다.

문화부 장관은 연초 개각에서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자리다. 앞서 말했듯 정부의 성과를 정리해야 하는 집권 4년차이고, 무엇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홍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자타가 공인하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이 정권의 최고 실세였다. 그의 역활은 뉴스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전문 용어로 이를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라고 한다. 예컨대, 참여정부 때는 그런 역할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었다. 그 때 유 장관이 주로 공개적 논쟁을 통한 공론의 기획을 통해 그런 기능을 수행했다면, 이동관 수석은 '고소고발'과 '마사지'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동관이라는 가장 확실한 카드를 쥐고도 청와대가 개각에 뭉기적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촛불' 당시 워낙 많은 이들을 적으로 만든 그 이기에, 아니면 그 역시 신재민 후보자가 그랬던 것처럼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약점을 갖고 있기에, 그것도 아니라면 외부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보다 큰 그림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동관 문화부 장관 시절이 오면 그렇지 않아도 '장두노미' 즉, '꿩 정부'라고 불리는 이 정부가 보다 확실하게 고개를 쳐 박으리란 점이다. 세상이 뭐라 하든 고개를 쳐 박고 아니라고 버티던 것이 핵관, 고소의 달인 이동관 수석의 주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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