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님이 배신을 당해 폐인처럼 살고 계시다는 뉴스가 떴더군요. 영화관련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아무래도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가 매니악한 편이다 보니 일반적인 관객들보다 이쪽에서 더 반응이 뜨겁겠죠. 바꿔 말하면 뉴스에서 지목하고 있는 배신자에 대한 비난의 강도도 훨씬 강합니다.

기자는 직접적인 언급만 피하고 있으며 누가 배신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니 거의 확신하게 합니다. 한 마디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기사 쓰는 양반들 경멸합니다)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독이 누군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대로라면 장훈 감독님이죠. 덕분에 '배신'의 주체에 보다 가까운 제작자와 배급사는 뒷전으로 가고 장훈 감독님께서 집중포화를 받고 있습니다. 배급사도 어딘지 알 수 있고, 제작자도 좀만 수고하면 알 수 있겠지만, 그걸 까발리자는 게 목적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전 이번 일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이것이 과연 '배신'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몰아가야 할 일인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그보다는 기사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그냥 연예 찌라시들이 하는 작태처럼 무작정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이슈성 기사를 작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잘 읽어보면 기사에 필요한 중립성이나 객관성부터가 지극히 미약합니다. 김기덕 감독님과의 인터뷰야 할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자신이 기사에서 지목한 - 혹은 몰아가고 있는 - 감독과 제작자, 배급사의 의견은 전혀 없습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요? 하긴 우리나라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무책임한 기사를 쓰는 게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죠. 한국인 특유의 냄비근성을 담보로 해서 일단 저질러놓은 뒤에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비겁한 행태 말입니다.

이 기사만 해도 과연 그들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린 전혀 모릅니다. 보아하니 기자도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한쪽을 궁지로 몰아넣으면 뭐라도 언질을 줄 것이라 여기고 의도적으로 이런 기사를 썼겠죠. 이를테면 "자, 이래도 너네들 입 다물고 있을래?"라는 심보로 말입니다.

기사에도 언급됐다시피 김기덕 감독님은 <의형제>의 제작초기단계에서 '기획자'였습니다. 시나리오도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당시에 확정됐던 감독과 출연진은 누군지 언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투자를 받기 힘들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의형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고, 그래서 제작자가 배급사와 함께 장훈 감독님을 설득하여 따로 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장훈 감독님께서 스승이나 다름없는 김기덕 감독님을 배신했다고 하는데...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봅시다. 누구든 땅 파서 영화를 제작하는 게 아닙니다. 엄연히 비지니스고, 당연히 수익이 나야합니다. 헌데 잘 알다시피 김기덕 감독님은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는 꺼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제작이 불가능해지거나 도중에 엎어지는 영화는 수두룩합니다. 위의 기사대로라면 <의형제>도 투자단계에서 그렇게 될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이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면 제작자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투자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다만 <의형제>의 경우 여기서 초기의 기획자였던 김기덕 감독님을 배제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버렸습니다.

글쎄요... 이것만 보면 배신자로서 화살을 맞아야 할 사람은 일차적으로 제작자입니다. 허나 이 또한 <의형제>를 독자적으로 제작하게 된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진짜 말 그대로 김기덕 감독님의 공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진행한 건지, 혹은 최소한의 대화가 오고 갔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국 따로 진행하게 된 것인지... 만약 전자라면 이는 배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죠. (후자라도 크레딧에조차 김기덕 감독님을 올리지 않은 건 너무한 처사이긴 합니다)

다만 저는 제작자의 행위에 대해서도 일말의 이해는 해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라는 확신이 있는데 투자문제로 인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애초의 기획자를 없는 사람쯤으로 치부하고 강제적으로 진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난을 피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의형제>가 김기덕 감독님의 손을 떠나는 과정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벌써 섣불리 쓴 기사로 인해 장훈 감독님은 모든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굳이 배신자라는 단어의 올가미를 씌우자면 장훈 감독님보다 제작자에게 더 잘 어울립니다. 장훈 감독님은 이미 김기덕 감독님의 손을 떠난 영화를 자신이 책임지고 찍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의 기사가 거듭 재생산이 되면서 김기덕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훔쳐서 찍었다는 말로 와전까지 되고 있습니다.

충무로에서 영화 한 편을 찍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 안 해도 잘 아실 겁니다. 제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투자를 못 받으면 바로 사장됩니다. 그게 비지니스고,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신인 감독으로서는 더더욱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의형제>와 같은 영화의 감독제의가 들어왔다?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많은 분들은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을 장훈 감독님이 빼앗어서 찍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제 맘에 안 드는 기사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김기덕 감독님의 손을 반강제적으로 떠난 작품이니 제자인 장훈 감독님이 고사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시겠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건 지나친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위선입니다.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김기덕 감독님을 몰아낸 것도 아닌데 일생일대의 기회를 물리쳤어야 한다는 건 무리한 요구입니다.

김기덕 감독님께서 영화계를 떠나셨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이전에 있었던 사태, 즉 수익금 관련하여 소송까지 갔던 영화도 장훈 감독님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였습니다. 그 때문에 장훈 감독님을 향한 비난이 더 거세지고 있겠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원인은 장훈 감독님이 아니라 당시의 배급사였던 스튜디오 2.0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장훈 감독님을 화형에 처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안하무인인 기자들만큼이나 네티즌들의 '다구리 정신'도 지긋지긋할 만큼 숱하게 보았습니다. 뭐 하나 건수만 터지면 우르르 달려들어서 너도나도 돌멩이를 집어던지지 못해 안달이죠. 제발 그 돌멩이를 던지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이라는 걸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싫으면 모든 일의 잘잘못이 가려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라도 길러주세요. 적어도 저런 일방적인 기사로 흠씬 두들겨 패도 될 만큼 시시비비가 가려진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솔직히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님, 장훈 감독님 모두 영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합니다. 특히 장훈 감독님은 일전에 제가 <의형제>의 리뷰에 썼다시피 <영화는 영화다>를 본 직후부터 주목했던 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과오마저 덮어줄 생각은 없고, 그러려고 쓴 글도 아닙니다. 다만 아직은 어떤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때가 이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밝혀진 부분으로 장훈 감독님을 무작정 비난하기에도 무리가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의견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행동은 지양해야 합니다. 아울러 여론형성에 큰 힘을 발휘하는 기자라면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독자 역시 사실여부를 가려서 읽을 줄 아는 지혜를 갖춰야 합니다. 언제까지 기자의 의도된 농간에 휘둘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놓고 기자란 작자들은 자기의 잘못은 감춘 채로 대중들의 군중심리를 질타하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니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조금만 냉정과 이성을 되찾고 기다려봅시다. 과연 제대로 된 후속기사가 나올지 의문입니다만, 이 상태로 조용하게 묻히는 건 저도 결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졌으면 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