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던트는 대물을 의식한 듯 초반부터 초강수를 쓰고 있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비와 이나영의 도망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거니와 비슷한 정치 드라마란 점에서 견제와 의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물은 현실과 아주 다른 대통령과 아나운서의 모습으로 그것도 이순재와 고현정이라는 대단히 신뢰도가 높은 배우들을 통해서 픽션의 감동을 주었다. 그것보다 더 강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요즘 대물이 변질됐다고는 하더라도 쉽게 시청자를 빼앗아오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대통령 후보 저격과 장차 대통령이 될 여당 경선 후보의 첫사랑을 의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죽게 한 것이다. 굳이 사고라고 한 것은 아직 드라마가 그것이 사건임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는 시청자는 사건으로 이미 단정 짓기 마련이다. 극중 장일준(최수종)의 배다른 아들 유민기가 그런 의혹을 갖듯이 말이다. 정치인에게 흔하다면 흔한 일이 될 수도 있는 여성문제는 굳이 한국적 정치 현실이라기보다는 모든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일이니 딱히 정치적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그러나 경선 후보의 저격 사건. 그것이 자작극이건 아니건 한국에서는 자유당 시절이나 가능했던 일이다. 어쨌거나 그것이 한국적 현실과 맞기도 하고 또 그렇지도 않은 부분이 일대일로 섞여 이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픽션의 구분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그러면서 대물처럼 몇 회 지나고 작가와 PD가 또 교체되는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싱거운 걱정도 하게 된다. 대물은 고현정의 입과 연기를 통해서 현실 정치의 무능을 비판했지만 불과 2회지만 프레지던트는 픽션이라고 하기 곤란한 현실 정치의 부패상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치 자금 지원, 경선 후보끼리의 폭로와 공작, 살인, 저격 자작극 등등.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픽션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 없이 대통령 선거 때면 벌어지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런 이전투구 속에서 결국 대통령이 되는 장일준은 과거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으로 재벌가의 딸과 결혼한 타협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앞서 말한 모든 추악한 사건들은 그와 무관한 일일 것이다. 대사에서도 나왔듯이 장일준의 아내 조소희(하희라)가 그림자 지고 어두운 부분을 맡겠다고 한 것처럼 그녀의 손을 의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과정의 디테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말의 두려운 사실을 하나 감추고 있다. 바로 재벌가가 대통령의 외척이 되는 것이다. 아니 재벌가의 사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재벌가의 현역이었던 사람이 대통령도 됐는데 그것에 놀랄 일도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재의 한국 대통령은 최소한 재벌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많은 것들을 모두 긍정한다 하더라도 재벌가의 사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프레지던트의 가장 위험한 설정이다.

그렇게 해야 조소희의 캐릭터가 더 드라마틱해질 것이라는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드라마라 할지라도 소름끼치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겉만 다르지 속이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겉만이라도 다른 것도 중요하다. 그런 것 때문에 장일준의 행적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느껴지는 통쾌한 비판의식조차 더러 두렵기도 한 것이다. 대물이 한때 그랬듯이 프레지던트가 정치를 혐오하는 아나운서와 국민들에 대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참 어렵다. 프레지던트는 경선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치 다규멘터리라도 되는 것처럼 사실에 밀착하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 대선 과정을 전반을 밀착 취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러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고민을 안겨준다. 대물도 그렇고 프레지던트까지 아니 얼마 전 종영한 자이언트 역시 마찬가지다. 갑자기 정치, 경제 등 사회성 짙은 그것도 성역으로 취급되던 권력의 심장부를 다룬 드라마들이 봇물을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선이나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선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금기시 되던 이슈들이 드라마에서 연이어 그것도 같은 요일에 나란히 방영되는 이 현상의 진실이 알고 싶다. 지금의 이런 조짐이 앞으로 지속될 현상인지도 또한 궁금하다. 또한 대물도 그렇거니와 프레지던트가 시청자에게 장일준이 말한 “정치인은 투표하지 않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명심하고 정치와 특히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될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치 드라마는 감동과 재미 여부를 떠나서 사회에 큰 효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대물과 프레지던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현시점에서는 프레지던트에 더 눈이 간다. 아직은 대물처럼 실망을 주지도 않았으며, 최수종, 하희라의 연기는 한 시간을 투자하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프레지던트에는 욕쟁이 할머니 김영옥 이후로 드라마에서 대놓고 욕을 정말 잘 하는 배우가 나온다. 장일준의 홍보팀장 오재희(임지은)의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욕설이 결국 거짓이 되고만 대물의 감동보다 오히려 속이라도 시원해서 좋다. 장담할 순 없지만 대물 4회 이후로 마음이 떠난 사람이라면 프레지던트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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