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이 초반의 강렬함을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고현정의 SBS 연기대상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현정의 역할은 4회 정도까지만 해도 올 최고의 캐릭터가 될 것 같았지만, 중반부에는 그저 순진하고 착한 아줌마 정도에 머물렀다.

그밖에 <인생은 아름다워>나 <이웃집 웬수>도 인기를 끌었지만 존재감이 <자이언트>에 비해 약했다. 따라서 올해 SBS 연기대상에선 <자이언트>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자이언트>는 대하시대극으로 올 한 해 SBS 드라마의 주축이었다. 이 작품은 초반에 보수성 논란에 시달렸지만 후반엔 부패정치인에 대한 권선징악으로 내용이 정리되면서 시청자의 찬사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이언트>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다. 일단 재미의 차원에서 봤을 때 중반에 늘어진 감이 있었다. 두 남녀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에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지도 못했다.

의미면에서 봤을 때도 찬사만을 하기에는 아쉬웠다. 만약 이 작품이 1990년대 초에 방영되었다면 상당히 기념비적인 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금기에 가까웠던 군사독재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2010년이고, 과거의 군사독재 비판을 그야말로 ‘개나소나’ 다 하는 시대여서 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중년층 이상의 시청자에게 ‘그땐 저랬었지’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킨 정도였다.

지금의 문제는 군사독재가 아닌 자본에 있다. 문화예술작품이 당대의 질곡과 모순구조를 드러낼 때 큰 의미를 가진다고 했을 때, <자이언트>의 문제의식은 뒷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말끝마다 계급의식을 상기시키는 <시크릿 가든>이 더욱 현재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자이언트>의 기본 구도는 군사독재일당, 특히 그중에서도 악질적인 몇몇의 권력자가 모든 악의 근원이고 기업은 그들에게 협박을 당하며 수동적으로 협력한 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극 중반부 이후엔 몰락하고, 이강모라는 깨끗하고 강직한 자본가가 나타나 새로운 기업의 시대를 연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강모는 새로운 재벌이지만 극중에서는 철저히 서민으로 묘사됐다. 구시대 인물들이 호화판 식사를 할 때 이강모는 포장마차의 우동이나 해장국, 자장면, 그리고 소주만을 먹었다. 심지어 사채계 대부의 후계자로서 새롭게 금융자본을 키워가기 시작한 여주인공과 이강모가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서민의 수준을 넘지 않았다.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설정이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새로운 기업가들의 생활상은 <시크릿 가든>이 훨씬 공감이 가게 묘사해준다. 여기에 나온 재벌상조차도 왜곡이 심한 판타지인데, <자이언트>는 더욱 심했던 것이다.

시대극은 역사를 그리는 것이고, 역사서술은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해석하며 현재의 문제를 드러낼 때 의미를 갖는다. <선덕여왕>이나 <이산>같은 시대극이 찬사를 받았던 것은 그 작품들이 충분히 현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이언트>는 조금은 부족한 시대극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대하드라마로서의 무게감을 가지며 SBS 드라마의 중심을 지켰고, 그에 필적하는 다른 작품이 없기 때문에 연기대상의 주인공은 <자이언트>가 되는 것이 순리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이범수냐 정보석이냐로 압축된다. 이범수는 대하드라마의 주역으로서 크게 모자라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기본은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정보석은 올 한 해를 대표하는 악당으로 악역계의 ‘미친존재감’이 되었다.

둘 중의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이범수는 큰 작품을 끌어가는 중심 역할을 모자람 없이 해냈다는 점에서, 정보석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떻게 보면 <선덕여왕> 때 이요원, 고현정과도 같은 구도다.

그렇지만 <선덕여왕>과 <자이언트>는 다르다. 이요원에 비해 이범수는 보다 강렬했고, 정보석은 고현정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 이런 점까지 고려했을 때, 주연으로서 작품의 중심에 있었던 이범수에게 대상이 가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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