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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사복군인들이 방화·총격 벌이거나 유도"특별기자회견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김용장 "광주시민 폭도 만들기 위한 고도의 공작"
전혁수 기자 | 승인 2019.05.14 07:29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직접 광주에 내려와 시민들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복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사이에 침투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방화, 총격, 군 수송차량 탈취 등을 선동하거나 자행했다는 구체적 증언도 나왔다.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이 직접 참석해 증언에 나섰다.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오른쪽), 허장환 전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 (연합뉴스)

김용장 씨는 5·18 당시 미 육군 501 정보여단 소속으로 광주에 파견돼 군사정보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김 씨는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 "허위 날조"라고 단언했다. 김 씨는 "당시 한반도 상공에는 2대의 군사첩보 위성이 떠있었다.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했다. 조기경보기도 한반도에 있었다"며 "북한군 600명이 미군의 첨단 감시망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침투했다는 보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장 씨는 한국 특수부대원이 시민행세를 하며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광주시민을 선동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시민행세를 하던 사복군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며 "5월 20일 쯤 K57 광주비행장으로 성남에서 C130을 타고 왔다. 비행기 격납고에서 2~3일 주둔했다. 저는 이 첩보를 입수하고 격납고를 찾아가 제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용장 씨는 이들에 대해 "30~40명의 편위대"라며 "전부 젊은 사람들로 그들의 얼굴이나 움직임으로 봐서 군인이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김 씨는 "그분들이 서 있는 거리가 30m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큰 오차는 없다"며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장 씨는 "이들을 광주로 보낸 사람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다"며 "당시 이들이 온 이유를 저는 합리적 추정으로 북한 특수원이 했다는 방화, 총격, 장갑차, 군 수송차량 탈취를 선봉에 서서 시민을 유도하거나, 직접 벌인 소행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전두환이 고도의 공작을 펼친 것"이라며 "이들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광주의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장 씨는 "전두환은 22일 점심 시간 전으로 광주에 왔다"며 "오자마자 157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 참석자는 정호영 특전사령관, 이재호 보안부대장, 그 외 74명"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이 사건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여기까지가 제가 (미국에) 보고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허장환 씨는 5·18 당시 자신이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등 구체적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고 밝혔다. 허 씨는 "광주 시나리오는 10일 간의 시나리오"라며 "그 시나리오 작성·기획·통제했던 10 손가락 내의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그 중 한 명 포함된 사람"이라고 밝혔다.

허장환 씨는 김용장 씨가 증언한 사복군인들의 존재에 대해 재확인했다. 허 씨는 "선무공작대를 총괄 지휘한 분은 보안사 공작과에 있다가 101 보안부대로 가신 광주일고 출신 홍성률 대령"이라고 밝혔다. 허 씨는 "저도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저는 수백 명이 왔던 것으로 안다. 김 씨는 3~40명이라고 하는데 그때그때 철수하고 다른 성격의 공작원으로 교체되고 그런 상황이었다"며 "특전단의 임무 중 하나가 후방교란과 적 지휘부 타격이다. 얼굴 인식이 되면 안 되니 철수하고 다른 조가 투입되고 그런 양상이었다"고 말했다.

허장환 씨는 헬기사격의 존재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허 씨는 "진압군에 사상자가 있으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고, 고층건물(전인빌딩)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저희가 입수했다"며 "지상군이 계단에 따라 올라가서 제압하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헬기로 저격병을 저격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호버링 스탠스 상태에서는 조종사가 사격하는 게 아니라 헬기 안에서 사격병이 조종사의 명령으로 사격하게 돼 있다. 전일빌딩 사격은 호버링 스탠스 상태에서 사격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장 씨도 헬기 사격에 대해 "당시 제가 쓴 보고서는 5월 21일 낮에 UH-1H 소형헬기로 M60으로 머싱거닝을 했다고 보고했다. 그 위치는 도청 주변이었다"며 "5월 27일 광주천 상공에서 위협 사격했다고도 보고했다"고 밝혔다.

김용장 씨와 허장환 씨는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습격의 진상은 계엄군이 다른 지역의 광주의 실상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길목 점령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교도소 습격사건은 시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상황을 전파하기 위해 나가는 과장에서 사살을 한 것"이라며 "사살당한 기사들이 운영하려고 하는 방향은 외곽으로 나가려고 하는 방향이고 교도소로 들어오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고 밝혔다.

허장환 씨는 "제가 교도소에 계엄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 176명의 시민군이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며 "제가 수사관 8명 데리고 분류심사를 위해 교도소에 이틀 간 2층 보안과 사무실에서 주둔했다. 당시 이것은 방어목적의 주둔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허 씨는 "교도소장 입회 하에 전 교도소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며 "자신들은 법무부로부터 지시 받지도 않았고, 당신들은 불청객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허장환 씨는 "광주교도소 주둔은 계엄군이 외곽으로 도피하는 광주시민을 통해 정보가 파급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목적에서 사살하고 저지한 것"이라며 "절대 교도소 방어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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