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정권인수위원회를 꾸려도 될 듯 싶다. 오늘자(23일) 조선일보 32면에 실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출판기념회 참석인사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2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팔순 회고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인원은 대략 1000명이 넘는다. 모두 ‘쟁쟁한 인사’들이다.

▲ 조선일보 1월23일자 32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해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 윤관·이용훈 전·현 대법원장, 김종하·박희태·이상득 전·현 국회부의장, 정원식·현승종·이홍구·이한동·김석수 전 국무총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정대철 대통합민주신당 고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윤세영 SBS 회장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권력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의 출판기념회는 지금 대한민국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생일 겸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차기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그리고 각계 대표인사들을 대거 참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은 대한민국에서 한 손가락에 안에 꼽힌다.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면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 정도의 ‘흥행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2008년 1월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라 조선일보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80살이 되면 뭘 쓸까 고민했는데 ‘나는 언론이 두려웠다’고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앞으로 5년 일하는 동안 언론이 두렵다고 해서 절대 대못은 박지 않겠다.” 방우영 명예회장을 향해서는 “2008년 새로운 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늘 지켜보면서 사회원로로서의 역할을 크게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언론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내비친 발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이 당선인이 언론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의 연장선에서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명박 당선인이 두려워하는 건 조선일보와 같은 ‘일부’ 언론이지 전체 언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부’ 언론일 뿐이다

▲ 조선일보 1월23일자 30면.
이명박 당선인은 신년회견에서 한반도대운하와 대학자율화 문제를 거론하며 ‘일부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한겨레 등 일부 언론에 제기한 거액소송 사건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한 전문위원의 돌출행위라고 해명은 했지만 인수위의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 지시 논란도 최근 불거졌다.

강조하고 싶은 건 이런 것이다. 이 당선인은 “언론이 두렵다고 해서 절대 대못은 박지 않겠다”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언행을 꾸준히 해왔다는 것이고, 이는 자신들이 보기에 ‘우호적인 언론’과 ‘비우호적인 언론’을 명확히 구분해서 대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이 두려운 것이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이면서 조선일보만큼의 영향력이 없는 ‘일부 언론’은 별로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삼성중공업 사과문 광고와 관련한 논란이 단적인 예다. 지난 21일 경제지를 포함해 전국단위종합일간지 가운데 한겨레에만 삼성중공업의 사과문 ‘광고’가 실리지 않아 논란이 제기됐지만 오늘(22일) 이 문제를 공론화한 언론은 한겨레 외에는 없다. 특정신문사에 대한 초일류기업의 ‘광고탄압’과 같은, 언론에 대못을 박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언론자유’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대다수 언론도 마찬가지다. 국민일보와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등 '많은' 신문이 방우영 회장의 출판기념회 기사를 싣고 있지만 삼성중공업 사과문 광고 논란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 한겨레 1월23일자 2면에 실린 광고.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출판기념회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제목이 이렇다. <“55년간 권력의 압력 막고 1등신문 만들어내”>. 55년간 권력의 압력을 막았다는 부분과 오늘자 한겨레 2면에 삼성의 한겨레에 대한 ‘광고탄압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의 ‘절규어린’ 광고가 묘하게 대비된다.

일부 신문은 2008년 현재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삼성으로부터 ‘광고탄압’을 받고 있는데, 살아 있는 언론권력 조선일보는 “55년간 권력의 압력을 막았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은 언론이 두렵다고 말한다. 명심하자. 여기서 두려운 언론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