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착각하기 쉽지만 토크쇼의 매력은 그날 초대된 게스트의 명성이나 매력보다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정 MC들에게서 나옵니다. 대개의 경우 토크쇼에 등장하는 손님들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나 발매된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단기간에 걸쳐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반복해서 출연하기 때문에 이들이 출연할 때마다 소모하는 이야기나 이미지를 보완해주고 색다른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은 결국 MC들의 능력에 달려 있거든요. 현재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거나, 두터운 팬층으로 시청률을 끌어 올리는 특급게스트의 존재는 반짝 인기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결국 자리를 지키며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MC들이에요.

현재 방송되고 있는 대부분의 토크쇼들은 이렇게 안정적이고 꾸준한 재미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장수프로그램들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시행착오와 조합 맞추기를 완성시킨 유재석의 놀러와나 해피투게더, 강호동의 강심장이나 무릎팍도사는 그 즐거움의 상당부분을 MC계의 양대 산맥 두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고, 1인자를 보완해주고 한사람의 역량을 극대화시켜주는 패널들의 재치와 어울림이 드러나는 완성된 형태의 토크쇼들이죠. 엄청나게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진행자들의 포기가 없다면 이들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좀처럼 꺼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1인자의 존재감이 부족한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는 어떤 토크쇼보다도 진행자들의 호흡과 화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프로그램입니다. 누가 나오든지 결국 이야기의 중심을 자신들에게 끌어오고, 말 한 마디에 벌떼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4명의 악동 MC들은 서로 주고받고 치고받는 아웅다웅 속에서 재미를 이끌어내거든요. 그렇기에 도박 파문으로 인한 신정환의 하차를 가장 뼈아프게 느꼈던 프로그램도 바로 라디오스타였어요. 이 예측 불가한 장난꾸러기의 공백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대체할 구원투수로 등장한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이런 우려와 걱정을 말끔히 해소하며 라디오스타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색깔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이돌같지 않은 아이돌의 등장이 주는 신선한 전환이죠. 가수들의 과거 흔적들에 풍부한 지식과 관심. 누가 나오든지 자신의 페이스로 이끌어오며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능력. 그리고 김구라를 비롯한 기존 MC들과의 호흡 모든 것을 따져도 라디오스타의 기둥으로 자리잡기에 모자람이 없어요.

90년대의 여신이었던 강수지와 하수빈의 흘러간 히트곡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 틈새를 노려 성대모사를 작렬시킵니다. 리액션이 없기로 유명한 김구라에게 끊임없이 호응을 유도하며 어색하기에 더욱 웃긴 장면들을 만들죠. 그 세대의 아이돌에 비해선 훨씬 더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아는 척으로 분위기를 띄우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3사람 40대의 MC들과는 다른 시대에서 살아왔기에 게스트까지 5명은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은 모르는 상황으로 재미난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하구요. 이상한 동생의 등장은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더욱 특이한 어색한 즐거움을 뽑아냅니다. 새로운 콤비라고 주장하는 김구라-김희철의 만남도 의외의 어울림을 보여주고요.

물론 예비 MC로 등장한 분량까지 합쳐서 이제 겨우 4번째 방송분이기에 너무 성급하게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고, 게스트들 역시도 김희철이 활약하기 용이한 가수들이었기에 다른 분야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모습도 봐야 하겠죠. 하지만 90년대 요정들과 함께 했던 김희철의 신고식은 이 특이한 막내가 아저씨 형들과 함께 만들어갈 라디오스타의 미래가 기대되는 방송이었어요. 위기는 위태로운 기회라더니 어쩌면 신정환의 하차는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연장시켜줄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신정환의 재기발랄함과 의외성이 아쉽고 안타깝긴 하지만, 전 김희철의 아이돌답지 않은 넉살과 재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동안 라디오스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프로그램을 향한 의욕과 열정이 더 보기 좋았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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