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또 ‘탓’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나눈 대화가 녹음돼 공개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비판하며 “조금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나눈 사담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으레 그렇게 하듯 사실관계와 맞지 않거나 과장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뜨거운 감자’가 돼 있는 건 두 가지 차원이다. 첫째는 그럼에도 이 대화 속에 정권 핵심부가 갖는 관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권이 추진하는 ‘무리한 정책’을 비판하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왜 자기들 책임인데 관료탓을 하느냐”이다.

버스 파업은 이렇게 말하기에 좋은 소재이다. 정권이 주52시간 근무제를 무리하게 밀어 붙인 것이 버스 회사들에는 추가 채용 압력으로, 노동자들에게는 실질 임금 하락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52시간 근무제가 파업의 원인인데 엉뚱한 관료 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없애야 할까? 정책이 갖는 실익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 돼 생산성 하락까지 초래하는 것은 문제이다. 유예기간이나 예외적용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미봉적 대책일 뿐이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그 과정에 있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은 관료와 정치가 맡아야 할 일이다.

실제 노조가 주52시간 근로제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핵심은 왜곡된 임금체계에 있다. 다른 수많은 사업장이 그렇듯 버스의 경우도 임금의 상당 부분이 수당으로 이뤄져있는데, 주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면서 연장 근로 등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52시간 근로제를 관철하면서 이들의 임금도 보전하는 길은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버스 회사는 운영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이러한 해법은 거부하고 있다. 버스 회사를 설득하려면 부담을 경감시켜 줘야 하고 그러자면 요금인상이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후자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어 못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요금인상만 남는데 이건 지자체장들이 정치적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이유로 꺼린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을 마련해 상황에 개입한다고 하면 그것은 누구여야 하겠는가? 결국 정부가 대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관료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적극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첫째는 실제로 국회가 법 제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추진했다가는 정권이 바뀐 후에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상황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능의 이유’를 댈 게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이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김수현 정책실장과 이인영 원내대표의 불평(?)은 이런 차원의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료와 정치의 ‘이유있는 무능’은 최근 들어 더 자주 보게되는 광경이다. 예를 들면 검경수사권조정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수사권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정했듯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로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이 조직 간의 권한 싸움 수준에서 다뤄지는 것은 문제다. 이 문제는 이미 코미디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검찰이 전 정권에서 일어난 정보 경찰들의 선거 개입 의혹 등을 수사하기 위해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경찰이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응한다거나 법무부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조기에 가동시킨 것을 두고 검찰이 문무일 검찰총장의 힘을 빼려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걸 보면 그렇다.

조직 간 경쟁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해 우리 공동체를 위한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지금의 진통은 감내할 수 있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이 모든 난리 끝에 나오는 결론이 ‘현상유지’에 그치는 경우이다. 지금 상황에 비추어 보면 여당과 제1야당이 각각 경찰과 검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국회에서 제도 개선이 좌초되는 것이다.

국민이 과연 개혁을 바라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가정할 때 관료와 정치의 ‘이유있는 무능’으로 현상이 유지되면 기성 정치의 불안정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때에 민주주의가 오히려 반민주주의적 체제를 탄생시키거나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그리고 이것이 ‘차기 대권주자’를 자임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전국을 돌면서 독재를 타도하겠다느니, 이 나라는 수령국가라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지금 보는 광경은 정상적인 국가 운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퇴행적 저항과 이로 인한 파국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일 수도 있다. 둘 중 무엇이 되느냐는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 관료나 검찰, 또는 경찰을 ‘탓’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무엇으로 어떻게 찾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론이 사건을 정파적 주장의 근거로 삼을 게 아니라 이것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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