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용의자 X의 헌신> 속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일찍이 <탐정 갈릴레오>에서 부터 전문적인 과학지식을 활용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에피소드가 종종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라플라스의 마녀>는 작가 자신이 30주년 기념작이라 한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인 '과학'과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으로 찬사 받은 작품이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라이프니츠의 이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은 수학적으로 진행된다. 만약 누군가가 사물들의 내부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다면 그리고 더욱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고려할 수 있는 충분한 기억력과 지식을 가진다면 그는 예언가가 되고 거울에서처럼 현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30년의 역작 <라플라스의 마녀>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 포스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이런 라이프니츠의 결정론을 확장한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현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존재로서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한다.

과학자들은 늘 갈망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다면, 조금 더 정확한 수치로 계산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정확한 공식을 얻는다면, 궁극에는 이 세계에 대한 '진리의 값'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런 과학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명적 진보를 추동했고, 그 과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판타지적 소망이 '라플라스의 악마'로 나타난다.

'악마'라지만, 이는 우리가 그간 SF를 통해 접했던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론의 또 다른 버전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공계 출신 히가시노 게이고는 30주년 역작으로 바로 그런 과학적 모티프를 끌어와 자신만의 새로운 과학적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지금까지의 소설들을 산산조각 내니 만들어졌다는 작품', 그게 <라플라스의 마녀>이다.

그렇다면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이런 작가의 30주년 역작으로서의 성과가 잘 드러났는가 여부를 놓고 살펴봐야 할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이는 불가능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 리메이크된 <용의자 X의 헌신>을 봐도 그렇지만, 몇백 페이지의 구구절절 장대한 원작을 두 시간 여의 영화로 콤팩트하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물리적 법칙에 통달하여 뉴턴의 운동법칙을 꿰뚫어 과거를 알고 그로 미루어 미래를 꿰뚫는 존재'만큼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있을까?

영화로 온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 스틸 이미지

영화의 시작은 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영화 제작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 사인은 황화수소 중독. 과학자로서 이 사건에 참고인이 된 교수 아오에 슈스케(사쿠라이 쇼 분)는 온천지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보건대 살인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단순 사고’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온천 지대에서 '황화수소 중독'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온천 지역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가 된다.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타마키 히로시 분)는 죽은 사람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금을 수상하게 여겨 죽은 제작자의 아내를 의심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온천 지역에서 벌어진 황화수소중독 사건. 이번에도 지형상으로 보면 사고사일 수밖에 없지만, 같은 독극물에 의해 온천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의 조사에 따르면 오래 전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사건은 점점 더 단순 사고사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의문의 살인 사건에서, 8년 전 벌어진 아마카스 사이세이 일가족에게 벌어진 황화수소 중독 사건으로 시점이 옮겨진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아마카스 감독의 아들 아마카스 겐토(후쿠시 소타 분)가 등장하고, 점점 더 사건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아오에 교수 주변에 의문의 여성이 얼쩡거리기 시작한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 스틸 이미지

그렇게 등장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닌, '마녀' 우하라 마도카(히로세 슈즈 분). 영화는 의문의 사고사에서 시작된 스릴러에서 이제 '라플라스의 마녀'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의 일가족 몰살 사건'을 감독의 블로그를 배경으로 설명해 나가고, 거기에 다시 스스로 마녀가 된 우하라의 사연까지 얹는다.

즉, 시작은 의문의 두 사건이지만, 그 사건부터 과거로 들어가 거기서 아마카스 감독의 일가족 독극물 중독사 혹은 미수 사건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두 명의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의 등장으로, 황화수소 중독으로 시작된 사건은 '라플라스의 정의'에 근거한 과학 판타지로서의 영역으로 확장되어간다.

불가능한 독극물에 의한 살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라플라스 과학 결정론', 그리고 그 결정론의 집합체가 되어버린 '실험실의 모르모트' 같은 두 사람,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 8년을 견디며 복수를 향해 달려온 청년과, 함께하다 보니 어느덧 그 청년을 사랑하게 되어 그의 복수 아니, 복수를 빙자한 자멸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진 소녀의 순애보에 도달하게 된다.

두 시간 러닝 타임으론 품어낼 수 없는 500여 페이지의 인간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스테디셀러로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스릴러, 과학적 스릴러, 때로는 킬링타임용 탐정물에 학원물, 연애물, 휴먼스토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을 쓰는 작가의 성실하고도 꾸준한 능력이 제 일의 이유이겠지만, 그런 작품들을 씨실로 하여 그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고뇌와 욕망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만화경처럼 인간사에 대한 천착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 스틸 이미지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영화’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특수효과를 살려 이른바 히가시노 게이고가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라플라스 이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득을 하고 있다. 특히 클라이막스에서 아마카스 감독의 낡은 세트를 배경으로 한 '다운 버스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우하라의 순애보적 기지는 영화가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반면,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행간을 채웠던 복합적인 사건. 그 사건의 결 속에서 각자의 욕망과 고뇌를 가지고 살아 숨 쉬던 인간들과 그 관계의 미묘함에 대해, 영화는 결국 단편적이거나 혹은 설명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아니 어쩌면 군더더기의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접어두고 보면, 영화가 그려내는 단편적인 설정이나 교훈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책을 단 몇 줄의 결론을 알기 위해서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영화는 자신의 가족들마저도 완벽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아마카스 감독의 위선과 완벽주의에 맞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우하라의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조차도 소설의 궤도를 따라 사건을 설명해가던 아오에 교수의 시점에서,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교훈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즉, 이런 모든 것들을 ‘지켜보게’ 됨으로써 ‘아, 이 영화가 사랑을 말하고 싶은 거구나, 혹은 과학적 진리를 통해 알 수도 있게 된 미래라는 게 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또한 사건과 인물의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서사의 과학적 설정은 가장 영화적이었지만, 그 행간을 채운 서사는 영화로 감당하기엔 너무 복합적이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각 인물들 면면을 더 알기 위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들춰봐야 하는 것. 책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오기는 힘들지만, 책을 다시 꺼내들지 않도록 만드는 영화들은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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