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인 롯데마트가 하루에 닭 5000마리 팔려고(그것도 자신들이 매일 600만원씩 손해보면서) 전국의 영세 닭고기 판매점운영자 3만여명의 원성을 사는 걸까요? 혹시「통 큰 치킨」은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물품을 사게하려는「통 큰 전략」아닐까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9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멘션이다. 파장은 컸다. 아시다시피 이 멘션이 나간 이후 롯데마트는 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정 수석의 멘션을 본 롯데마트 노병용 사장은 정 수석에게 “물가안정에 기여하고자 했을 뿐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역행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당장 철회할 경우에 발생할 대(對)소비자 부담과 기타 부작용이 있고 해서 시간을 주면 잘 해결 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치킨 값에 그것도 트위터를 통해 개입하는 것이 청와대의 '정무적' 역할인지 아닌지 확인하긴 어렵다. 정무의 사전적 의미가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이니 사회적 논란이 되는 문제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순 없을 것이다. 물론, 트위터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공간임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 수석의 트위터 멘션은 청와대 정무수석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되고 말았다. 지레 겁을 먹은 롯데마트 사장의 담력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정부가 알게 모르게 음지에서 그런 식으로 기업들을 겁박해왔던 것인지는 역시 확언하기 어렵지만, 오래도록 개선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대형마트의 ‘약탈적 가격(predatory pricing)’ 문제가 정 수석의 말 한마디에 단박에 해결된 씁쓸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초구 반포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2011년 업무보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같은 문제가 '참여정부'에서 벌어졌다면 그 양상은 어땠을까? 반응은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신문들은 청와대의 '반기업 정서'를 맹렬하게 공격했을 것이다. 당연히 사설의 소재로 등장했을 것이 틀림없고, 전경련 같은 곳에선 성명을 발표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정부의 성격은 워낙에 '비지니스 프랜들리'한 것이라 조중동은 물론 전경련 같은 곳에서도 적극 양해해 주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 정도인데 그렇다면, 대통령의 한 마디 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나도 프랜차이즈 치킨을 2주에 한 번 시켜서 먹는데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며, "영세상인 보호 문제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선택 문제도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보면 싼 가격을 선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무 수석의 사적 언급만으로도 롯데마트는 장사를 접었다.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조직을 상대로 말한 것이니 이제 난리법석이 나지 않을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선택을 할런지는 뻔하다.

늘 '국격'을 염려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말씀하시는 경제 대통령께선 복지예산이 박살난 '예산안 날치기'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시지만,(아니 멱살잡이 날치기의 주역인 '괴력 김성회' 의원에겐 친히 격려 전화까지 하셨다지만) 치킨 값과 같은 사소한 그래서 오세훈 시장의 표현을 빌자면 '망국적 포퓰리즘'으로도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하고도 세밀한 오지랖을 보여주고 계시다. 덕분에 치킨 값이 조금 싸진다면, 소비자 모두는 감읍해야 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한 마디로 우스꽝스럽고 두 마디를 해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인 이 '통 큰 치킨' 논란과 관련해, 영국의 <더타임스>는 '숫자로 보는 아시아'라는 칼럼을 통해 "치킨 한 마리가 한국을 강타했다"고 썼다. "이 치킨은 출시되자마자 3시간 동안 서야하는 긴 줄을 비롯해 영세 상인의 거리 시위, 청와대의 비난 등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 16일자, 동아일보 경제 섹션 1면
관련 내용을 전한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말씀에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을 해부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평소 동아일보의 보도 방식을 따르자면, 청와대의 지침에 충실한 보도를 해야 하는데 '본사는 재료 장사, 가맹점은 인건비 장사' 당연한 말씀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사는 각이 밋밋하다 못해 싱겁다.

이유는 간단할 테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다소간의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사회적 악으로 지목될 만큼 대단한 수준도 아니고 가맹점이 치킨을 팔아 '떼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2주에 한 번씩 치킨을 시켜 먹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15,000원 안팎의 치킨 값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청와대 간식비가 박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는 10마리를 시켜 먹으면 1마리를 공짜로 주는 '10+1' 쿠폰을 제공하니 2주에 한 번씩 알뜰히 모은다면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공짜 치킨을 먹을 수도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가격 담합에 문제가 있다고 한들 그 폭리가 가전사의 '핸드폰 가격 담합', 자동차 업계의 차량 가격 담합에 비할 바는 아니다. 대통령이 개선을 지시할 사항의 깜냥'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흔한 말로 치킨 장사를 '자영업의 무덤'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기사에도 있지만, 서울 시내 웬만한 곳은 "반경 100m 이내에 치킨집이 20곳"이 넘는 상황이다. 18,000원 짜리 치킨이 비싸다고 하지만 동네에서 파는 치킨은 만원에 3마리씩 주는 전기구이 통닭부터 다양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통 큰 치킨' 판매 중단 이후 언론이 우선 주목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마땅히, IMF 이후 급속도로 많아진 치킨집 분포와 이 분포가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경제 구조의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본사는 재료 장사, 가맹점은 인건비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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