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언론에 비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러울 때가 많다. 촛불이 만들어낸 정권이라는 어떤 사명을 안고 한국 사회를 무언가 바꿔보겠다는 마음은 나름대로 분명한데, 생각대로 상황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함께 느껴져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KBS와 취임 2주년 대담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담은 큰 무리가 없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대통령의 답변은 현안에 비교적 충실했고 현실적 고민이 실려 있다는 느낌도 줬다. 전임 정권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광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부 지지층이 대담을 진행한 기자의 태도 등을 문제 삼아 비난을 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이 기자가 던진 질문들 덕에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를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대담은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 진행되었다. 오후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을 거의 따라 잡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되었다. 대통령 입장에선 당장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상세한 답변과 함께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협상과 대화의 국면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경고했고 비록 단거리라도 탄도미사일이면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했다. 북한이 최근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를 미사일로 단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간 통화를 하던 당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 등에 대한 양해와 지지를 얻었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것은 아마도 대통령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일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중재자 외교’에 대해 더 이상 신뢰를 갖고 있지 않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행보는 하노이 회담 협상 실패의 책임 문제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북한의 대미협상은 우리 정부가 제시한 교환조건을 기본으로 해서 진행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보니 남한의 주장대로는 협상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적 방식으로 되돌아가 자체적인 계산법으로 미국 등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되면 남한이 중간에서 중재를 서는 그림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등장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환경이 조성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의 조건없는 대화를 시사한다든지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갖는다든지 하는 일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일 이 구조가 고착화되면 중재자나 ‘촉진자’를 자처하는 남한 정부의 공간은 매우 협소해진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2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대북정책에서의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지만 경제 분야에선 미흡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대북정책에서의 성과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가장 문제인 것은 일자리 및 고용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인정하는대로 일부 거시지표와 고용이 유지되는 노동자들의 고용의 질 개선 등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자영업자나 고용시장 밖으로 탈락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대담을 진행한 기자가 객관적 지표들의 양호함을 말하기보다는 과거 5.18 피해자들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제안에 가까워보였다. 어떤 ‘제스추어’가 실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긍정적인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 차원의 대책은 결국 제조업에서 부진을 딛고 활력을 다시 찾는 것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무방비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행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대비 -0.3%를 기록한 것은 자동차나 조선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반도체 경기마저 꺾인 영향이다. 무언가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마침 삼성이 경기 영향을 덜 받는 비메모리 반도체 관련 투자를 진행한다고 하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관련된 이런 저런 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바로 힘을 실어주는 액션을 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송현정 KBS 정치 전문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든 신성장동력이든 또는 추경편성안 심사든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개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항변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야당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답은 여야정협의체 운영의 재개이다. 장외투쟁에 무게를 싣고 있는 제1야당에게 국회 복귀 명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여야정협의체 재개가 지금 상황에서 돌파구 마련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제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새로 선출된 이인영 원내대표의 역할 등이 더해진다면 성과를 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습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기자가 야당에 대한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질문을 하면서 자유한국당이 “독재자”라는 표현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망설이면서도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를 색깔론을 더해 ‘좌파 독재’라고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한 것이다. 이 덕에 대통령이 고압적 태도로 훈계를 하는 장면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제1야당의 비상식적 대응에 대해 나름의 할 말을 하는 효과가 만들어졌다.

제1야당이 내걸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사면 요구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효과가 만들어졌다. 기자의 곤란한(?)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원칙적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제 전임자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다”는 정서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할 말을 다 하면서 거둘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거의 다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보수언론의 반응은 대담 내용 자체를 크게 문제삼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이나 결정구조 개편 등에 대한 입장도 대통령이 직접 명확히 했기 때문에 이른바 재계의 반응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중도화’를 해야 하는 여당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긍정적이다.

물론 이런 정파적 이해득실을 떠나 이 상황 자체가 나타내는 문제가 없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늘 나름의 비판을 제기해 왔지만 다른 기회에 또 다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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