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노동존중 사회'는 최근 노동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현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다. 그러나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 정부의 노동정책이 출범 초기와 비교해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참여연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촛불시민항쟁 이후 시민의 삶' 토론회에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집권 2년차 정부의 노동정책 점수를 'C+'로 매겼다. 그는 지난해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A0' 평가를 매긴 바 있다.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는 참여연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로 '문재인 정부 2년, 촛불시민항쟁 이후 시민의 삶'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그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축소, ILO 협약 비준, 사회적 대화 등 이른바 '노동정책 5대 과제'에 있어 후퇴 기조가 선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맞물려 가장 많은 논란이 일었던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경제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할 실증적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수·경제층 공세가 이어지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최저임금 인상 폭 하향 조정 등 빠른속도로 정책이 후퇴했다는 게 김 이사장의 분석이다.

특히 보수언론, 그중에서도 경제지의 "집요한 공세"는 뚜렷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2017년 초까지 최저임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경제지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부터 많은 양의 최저임금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 2019년 1월까지 최저임금 보도건수 월별 추이. (그래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최저임금 보도건수 추이' 보고서)

김 이사장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사이트(KINDS)에서 관련 보도를 검색한 결과, 2018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2017년 7월 중앙 일간지들이 보도한 최저임금 기사는 신문사별로 평균 91건이었고, 2018년 1월에는 157건, 2018년 7월에는 166건으로 최고치를 갱신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의 경우 2018년부터 기사검색이 가능해 2017년 보도건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같은 시기 경제지들은 2017년 7월 213건, 2018년 1월 351건, 2018년 7월 354건의 최저임금 기사를 내 중앙 일간지보다 2배 이상 많은 기사를 내놨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중앙 일간지를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으로 구분하여 최저임금 보도건수를 살펴보면, 경제지(서울경제, 아시아경제)>보수언론(조선일보, 중앙일보)>진보언론(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순이었다. 서울경제는 4343건, 아시아경제는 3082건, 조선일보 1888건, 중앙일보는 1683건, 경향신문 1198건, 한겨레신문 1015건 순이다. 김 이사장은 "경향·한겨레 등 진보언론에 비해 경제·보수언론이 여론을 주도했다. 경제·보수언론은 팩트와 관계없이 매일 편의점에 가서 최저임금 때문에 어렵다는 기사를 긁어낸 것"이라며 '기승전 최저임금'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고 비판했다.

2018년 1월~2019년 1월 주요 언론사 최저임금 보도건수 월별 추이. (그래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최저임금 보도건수 추이' 보고서)

그러나 김 이사장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저임금과 경제지표를 분석한 결과, 경제·보수 언론의 주장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지표 악화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2017년~2018년 간 취업자는 9만 7천명이 증가했다. 상용직은 34만 4천명이 증가했고, 임시직과 일용직은 각각 14만 1천명, 5만 4천명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고용주(2인이상)는 4만 3천명 증가했고, 자영업자(1인)와 무급가족은 각각 8만 7천명, 9천명이 감소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불평등 해소와 저임금계층 축소에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김 이사장은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조사시점 : 2017년 8월~2018년 8월)와 '지역고용조사'(2017년 4월~2018년 4월)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임금불평등 축소, 저임금계층 축소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상위 10% 컷오프와 하위 10% 컷오프의 시간당 임금격차는 4.13배에서 3.75배로 감소했다. 월임금은 5.63배에서 5.04배로 감소했다. 지역고용조사에서도 상위 10% 컷오프와 하위 10% 컷오프의 시간당 임금격차는 4.10배에서 3.72배로, 월임금은 5.00배에서 4.59배로 감소했다.

또한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저임금 계층은 445만명에서 311만명으로 감소했고, 중간임금 계층은 1116만명에서 1211만명으로 증가했다. 월 임금 기준으로는 저임금 계층이 415만명에서 349만명으로 감소했고, 중간임금 계층은 982만명에서 1171만명으로 증가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취업자 증가세 둔화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김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이 아니라, 2013년을 11월(45.5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추세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제조업 구조조정, 골목상권 붕괴, 내수침체 지속, 경기 하강 등의 이유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로 대표되는 노동시간 법개정은 어떨까. 김 이사장은 '주 52시간 상한제'의 단계적 시행이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켰다고 지적했다. 노동부의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라 전산업에 걸쳐 주52시간 상한제를 도입했을 경우 적게는 13만명~29만명까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상됐으나, 단계적 적용에 따라 300명 이상 사업체에만 우선 적용되면서 1만 5천명~3만 6천명 정도의 창출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김 이사장은 노동시간 법개정 관련 처벌 유예 기간을 두고,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이 이뤄지면서 노동시간 단축효과가 상쇄되는 동시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대표되는 사회적 대화에도 악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7월부터 도입된 주 52시간 상한제는 2019년 3월까지 처벌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사실상 '도입 유예'로 귀결됐고, 지난해 11월 정의당을 제외한 청와대와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하면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논의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주52시간 초과 노동자의 감소 추세는 2017년 300만명에서 2018년 240만명으로 61만명(3.1%p) 감소했다. 이 가운데 주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한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주52시간 초과 노동자 감소 추세는 2017년 31만명에서 2018년 22만명으로 9만명(3.9%p) 감소했다. 주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주52시간 초과 노동자가 더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게 김 이사장의 분석이다.

이 외에도 비정규직 축소에 해당하는 공공부문 정규직 직접고용은 전환을 결정한 18만 1천명 중 13만 7천명이 전환됐으나 무기계약직 고착화와 자회사 설립 남용, 민간부문 확산 미비라는 한계점을 드러냈고, ILO 협약 비준은 '선 입법 후 비준'이라는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어 최근 '동물국회'로 경색된 국회 상황을 고려했을 때 데드라인으로 볼 수 있는 오는 6월까지 관련 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 할 전망이다.

한편, 김 이사장은 ILO 협약 비준 여부가 향후 노정관계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선 비준 후 입법'으로 입장을 바꿔 5월~6월 사이 비준안을 의결한다면 노정 갈등 해소의 물꼬가 틀 것이고, 이로써 사회적 대화기구의 정상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논의에 난항을 겪는 ILO 핵심 협약은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와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다. 정부는 두 협약이 노사 간 쟁점이 크고, 국내법과 충돌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도 않은 채 국회의 '선 동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인다.

'선 비준' 선례도 있다. 6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 '한국의 ILO 협약 비준 관련 동의 여부 및 비준동의 대상 협약에 대한 법률안 개정현황'을 확인한 결과, 한국이 비준한 27개 협약 중 2개 협약이 국내법 개정 전 국회 비전동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ILO 100주년 기념총회는 오는 6월 1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사정 대표단이 함께 총회에 참석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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