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국의 최저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간수준이라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보고서가 나왔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한국의 최저임금이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이라는 자료를 발표했으며 일부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하는 등 최저임금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경연이 제시한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 상대적 수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아니고, OECD 발표 자료도 아니며, 최저임금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6일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에서 OECD와 독일 경제사회연구소의 최신 자료를 사용해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 분석했다.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과 최저임금 비율 (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 )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은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6.4유로(8350원)였으며 순위는 25개국 중 12위로 중간이었다. 2017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5.4달러로 당시 OECD 평균(6.2달러)수준에 미치지 못했으나 2018년 5.9유로, 2019년 6.4유로가 되면서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지난 2년 간 10%대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OECD 회원국 순위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OECD 회원국 중 상당 수가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 이상 크게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인 OECD 회원국은 2018년 한국(16.4%), 터키(14.2%), 라트비아(13.2%), 체코(10.9%), 슬로바키아(10.4%) 등 다섯 국가다. 2019년에는 리투아니아(38.4%), 터키(26.0%), 스페인(22.3%), 캐나다(12.6%), 한국(10.9%) 등 다섯 국가다.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17년 41.4%로 OECD 회원국 평균(41.1%)과 거의 같았다. 법정 최저임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OECD 29개 회원국 중 15위로 중간이다. 중위값 기준으로는 52.8%로 이 역시 OECD 회원국 평균(52.5%)과 거의 같고, 29개 회원국 중 13위로 중간이다.

OECD 회원국 시간당 최저임금(2019년)과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2017년). (그래프='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

보고서는 "OECD 국가 풀타임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00년 36.5%에서 2016년 39.9%, 2017년 41.1%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중위값 기준으로는 2000년 45.0%에서 2016년 50.5%, 2017년 52.5%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2000년대 들어 저임금계층이 늘고 임금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국민소득과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상관관계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한경연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OECD 최저임금 수준을 비교한 결과, 한국이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조사 대상국가 중 1위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혹세무민"이라는 반박이다.

보고서는 "국민소득 수준이 높으면 시간당 최저임금도 높다"면서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이 5만2천 달러인 호주는 최저임금이 13.8달러인데, 국민소득이 6만 달러인 미국의 최저임금은 7.3달러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는 "국민소득과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상관관계가 유의미하지 않다"면서 "이는 최저임금의 절대수준(시간당 최저임금)은 국민소득이나 경제발전의 영향을 받지만, 최저임금의 상대수준(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국민소득이나 경제발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노사 교섭력, 집권정당의 성격, 사회문화 가치 등 경제외적 요인의 영향을 받음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김유선 이사장은 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을 비교할 때 사용할 수 없는 지표인데 왜 전경련이 썼을까"라고 반문하며 "계산하다 보니 구미에 맞는 게 나와서 쓴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전경련과 한경연을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이사장은 "1인당 국민소득같은 지표는 연간개념이다. 노동자 임금 뿐 아니라 자영업자 소득, 기업의 이윤도 포함된다"면서 "상당히 왜곡이 있기 때문에 (지표로)전혀 안 쓴다. OECD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시간당 최저임금,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 딱 이 두 가지 지표만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전경련 측이 이 같은 최저임금 관련 자료들을 만들고 배포하는 이유로 '하도급 구조'를 꼽았다. 전경련에 속한 대기업들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하도급 단가 조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사실상 하도급 업체에 상당히 낮은 임금을 뿌리는 자체도 최저임금 수준이 낮은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때문에 대기업이나 재계와도 최저임금 자체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하도급 단가를 조정해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그동안 최저임금 문제를 중소상공인 문제로 얘기하는데 뿌리를 찾아가 보면 대기업하고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한경연의 주장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겨레는 7일 사설 <전경련의 '최저임금 통계 장난' 어이없다>에서 "사정이 이런데도 '주휴수당 포함 시 1위'라는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실상을 오도하고,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과잉 비난의 재료를 공급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최저임금제를 한 갈래로 삼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러 언론매체에 이런 논조로 요란하게 보도된 실태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썼다.

실제 지난 3일 한국경제, 중앙일보, 서울신문, 파이낸셜 뉴스, 매일경제, 세계일보, 이투데이 등의 매체는 <‘주휴수당 포함’ 최저임금, OECD 1위>,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 한국, OECD 국가 중 7위>등의 기사를 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기사에 인용된 ‘1인당 GNI 대비 최저임금 상대적 수준’은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로 통용되는 기준이 아니며, OECD 발표 자료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노동부는 법정 수당인 주휴수당을 비교한다면 사회보험료 사용자부담분 등 전체적인 부담을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주휴수당만 포함하여 최저임금 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기준의 일관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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