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언젠가 다음 총선에 대한 전직 국회의원의 견해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총선이 정권심판의 구도로 치러질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면서 정권심판일지, 반대로 국회심판일지, 아니면 평화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회심판까지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평화를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인가에 대해선 좀 의문이었다.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논쟁은 다음 총선에서도 이른바 ‘평화’ 프레임이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보여준다. 보수세력은 국방부가 애초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했다가 40분 만에 단거리 발사체로 수정한 것을 두고 미사일을 미사일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정부’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장외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피를 토한다”고까지 했다.

북한은 문제가 되고 있는 자신들의 발사체를 ‘신형전술유도무기’로 부르고 있다. 이 표현은 이미 지난달 18일에도 나온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하고 지도했다는 사실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서로 다른 목표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격했고 특수한 비행유도 방식과 강한 전투부 장착으로 완벽하게 검증됐다”는 등의 자평을 내놓았다.

이 ‘신형전술유도무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당시에 이미 대략적인 추측을 내놓은 바 있다. 차량 또는 고정발사대를 통해 발사하는 미사일인데 비행 중에 목표물을 변경하거나 장애물을 피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기능이 탑재 됐을 거라는 등의 전망이 그것이다. 이번에도 비슷한 평가가 나오는 걸 봐서 이것과 이번에 등장한 무기는 같은 종류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합참, 국정원 등이 평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견 이해가 간다. 지금까지 실제로 등장하지 않았던 무기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분석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개발해왔던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의 경우도 몇 차례 발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했다.

다만 북한이 스스로 사진까지 공개한 마당인데도 당국이 ‘미사일’이라는 규정에 소극적인 것은 기술적 측면 외에 대북정책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일 북미간의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단거리 미사일’이란 평가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을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의 태도를 봐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사일’이란 표현을 일정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격노’했지만 참모들의 만류로 이성을 되찾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첫째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판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국내정치적 입지에 타격이 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문제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실험도 없고 발사도 없다”며 실질적 성과를 자랑해왔다. 만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한 게 되면 더 이상 이런 주장을 하기 어려워진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구도의 경우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추가 제재가 결의되고 북한이 제재가 아닌 체제보장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국면이 되면 협상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서 우리가 재차 확인할 것은 ‘홍길동 정권’의 어떤 거짓말들이 아니라 북핵문제의 장기화 쪽으로 추가 기울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미국 정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국면으로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평화 프레임’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북미가 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합의를 이루고 다시 마주 앉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북미관계는 꾸준히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왔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한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렇다면 ‘국회심판’의 구도로 총선을 치르게 되는 것일까? 이것도 지금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를 통해 5월 2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가 과거와 별 차이 없거나 악화됐다고 답한 이들의 34.8%는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31.6%는 청와대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정당지지도까지 고려하면 현 상황에 대해선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더 큰 걸로 볼 수 있지만 정부 여당과 청와대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목소리 역시 예상한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정권심판론과 국회심판론이 힘을 겨루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치가 정권심판론을 강하게 밀어 붙일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단지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이를 위한 ‘판’을 적극적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조선일보 7일자 지면에 실린 김대중 고문의 칼럼을 보면 “문 정권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거나 분노하고 있는 국민은 문 정권을 심판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써 있다.

이 글에 의하면 이른바 ‘반문전선’ 구성에 방해가 되는 보수정치 내부의 요인은 여전히 계파 갈등과 분열이다. 그래서 김대중 고문은 “김무성 의원 등 이른바 탄핵 찬성파도 자중할 것은 자중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협조할 것은 해야 한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미래당파도 머뭇거리며 계산하지 말고 한국당에 합류해야 한다”, “친박이 '박근혜 신당'을 만들거나 당 화합에 조건을 달고 나오면 문 정권 견제는 물 건너간다”고 썼다.

이들의 무기는 여러차례 지적했듯 종북론과 경제위기설이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안보 정책에서 후퇴했고 독선적인 정책 운용과 끼리끼리 나눠먹기, 내로남불 때문에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는 레파토리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뭉칠 기회를 찾으면서 중도층의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국회심판’은 이에 맞서는 정부 여당의 주요 논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회심판론은 결국 정부가 무언가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해 한국사회를 바꾸려고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발목 잡기’를 해서 제대로 안 되고 있고, 그게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서사로 귀결된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이 무엇인지가 실체화 돼야 하고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늘 지적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오히려 정부 여당이 ‘개혁의 피로감’을 경계하거나 중도층 여론을 의식한 중도화에 더 방점을 두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 사회 원로들과의 대화를 둘러싼 논란 역시 이런 사례의 하나이다. 여기서 대통령이 ‘선 적폐청산, 후 협치’ 등을 강조했다는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수습에 나선 것은 애초에 이 행사가 기획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나마도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이다.

‘국회심판’의 서사는 아마도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들의 연내 처리 국면에서 정점에 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공수처, 검경수사권조정, 선거제도 개혁만 갖고 충분할까?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이르는 ‘수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평가는 ‘맥락’에 제기되는 것이지 하나의 이벤트에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지지층 단결의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더 과감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늘 늦었다고 말하지만 그때가 또 가장 빠른 때라는 틀에 박힌 격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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