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특별기획 <이몽>은 실존 인물인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이다. 최근 김원봉에 대한 국가 유공자 대우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김원봉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은 <이몽>은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 이에, <이몽>의 윤상호 피디는 '김원봉은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인물이라 하면서 정작 드라마는 김원봉이란 실존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이름과 상징성만 가져왔을 뿐, 허구가 가미되어 새로이 창조된 역할'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만, 정작 캐릭터는 창작에 의거했다는 <이몽>의 김원봉, 드라마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변절자를 두고 마주 선 이영진과 김원봉

MBC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

드라마를 연 건 '파랑새'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운동 세력에게 답지한 60만 불의 성금. 대한민국 국무원 비서장을 한때 역임했던 김립은 이 자금을 운반하던 중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다 오면직, 노종균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사라진 독립운동 자금, 이 자금을 찾기 위해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애를 쓰고, 김원봉은 그 자금과 관련된 '파랑새'라는 인물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바로 그때 이영진(이요원 분)이 일하는 자혜 병원에 한때 의전에서 동문수학하던 김에스더가 찾아온다. 우연인 듯했지만 자혜병원 의사가 되었다는 그녀가 이영진은 그저 반갑기만 한데, 그런 반가움을 나눌 사이도 없이 총상 환자가 들이닥친다. 바로 변절하여 마쓰우라(조선명 노정술, 허성태 분)에게 동지들의 정보를 넘기려 했던 박혁이 김원봉의 총을 맞고 실려 온 것이다.

죽어가는 박혁에게 정보를 빼내려는 마쓰우라, 혹시나 살아서 다시 동지들의 정보를 넘길까 우려하여 찾아든 김원봉, 그리고 그런 양쪽의 입장과 무관하게 환자를 지키려 하는 이영진. 이 세 사람의 입장은 생사를 오가는 박혁의 병실에서 첨예하게 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박혁을 두고 마주하게 된 김원봉과 이영진, 그저 환자 앞에서 기꺼이 자신의 몸으로라도 막아선 의사 이영진과 독립운동가 김원봉일 뿐인 줄 알았다.

드라마와 역사, 그 행간이 낳은 독해의 어려움

MBC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

동고동락했던 동지 앞에서 총구를 떨구는 김남옥(조복래 분)을 다그치며 기꺼이 변절자를 처단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김원봉. 변절의 이유가 있지 않겠다는 남옥의 말문을 단호하게 막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가 쪽팔리지도 않느냐는 김원봉의 신념은 단호하다. 그리고 그 단호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배달원으로, 심지어 경찰로 변신하며 자혜병원, 종로 경찰서까지 거침없는 김원봉은 ‘만능키 히어로’로 시간을 건너뛰어 시청자 앞에 나타났다.

드라마는 단호한 독립운동가로서 김원봉이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동지의 배신을 죽음으로 응징하는 설정을 응용했고, 이의 실행을 위해 때와 장소를 불문한 변신의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실존 인물의 이름만 도용한 캐릭터라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첫 회에 배신한 동지를 처단하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습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문득 배신한 박혁의 입에서 '파랑새'와 '한국인 여의사'라는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그렇다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형사들이 진을 친 자혜병원과, 심지어 일본 경찰의 중심부인 종로 경찰서를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변장을 거듭하며 드나든다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드라마의 캐릭터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고개가 갸웃해진다.

드라마에서 '파랑새'로 오해를 받았던 김에스더는 알고 보니 '파랑새'가 아니었다. 지청천 부대에서 선생님과 의사로 활약했을 정도의 인물인데,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3.1운동 당시 제암리 사건의 명령자였던 헌병소장을 암살하기 위해 이영진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온 의사이다. 결국 독립운동 세력의 파랑새로 암살 작전을 위해 잠입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인적 원한이었다는 김에스더의 암살 시도.

지청전 부대에서 의사로 활약할 정도의, 독립운동 내에서 역할을 가진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나 개인적 원한으로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도 안이한 설정이다. 하지만 비록 독립운동가의 개인적인 작전이라 하더라도 그 여파가 한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에서 보여지듯, 결국 드라마는 지청전 부대에서 활약까지 한 독립운동가 김에스더를 '개인적 모험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MBC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

그런데 비록 개인적 모험주의자라 하더라도 김에스더는 헌병대장을 암살하려 한 사람. 일개 의사가, 그것도 신원조차 파악되지 않은 어제 부임한 의사가 이상이 있으니 검사를 하잖다고 달려온 헌병대장도 그렇고, 그런 김에스더의 '모험주의적 일탈 복수'에 달려온 이영진은 기어코 그녀의 작전을 무위로 돌리고 그녀를 적들의 총구에 희생되도록 만든다. 1920년대 여자 의사라는 설정의 비현실적인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영진의 극중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 회차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가 그렇게 했던 것이 김원봉과 다른 입장, 즉 무장투쟁이나 암살 등과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맞서겠다는 '파랑새'로서의 그녀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신념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친했던 언니가 지금 개인적이든 어떻든 자신의 작전 실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걸 굳이 가서 들통 나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할 필요가 있을까? 드라마 속 설정은 김에스더를 구하려는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은 김에스더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 굳이 이영진을 위기에 몰아넣기 위한 작위적 설정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혜병원도 종로 경찰서도 내 집 드나들듯 자유롭게 드나들던 김원봉은 이제 내 편이 하나 죽었으니, 상대편도 하나 죽여야 한다며 김에스더가 죽이려다 실패한 헌병대장을 '손쉽게', 그가 변절자 박혁을 죽이기 위해 그토록 극 초반 종횡무진했던 것과 다르게 대번에 죽여 버린다.

안이한 서사, 독립운동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

MBC 특별기획 드라마 <이몽>

<이몽>은 서로 다른 방식을 선택한 김원봉과 이영진, 두 사람의 독립운동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싶은 듯 보인다. 하지만 독립운동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서사적 기반이 설득력 있게 짜여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 노출이 전체 독립운동에 미치는 여파가 큰 시점에, 그래서 변절자를 기꺼이 동지의 입장에서 처단하려는 시점에, 홀로 헌병대장을 사적 복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돌아온 독립운동가 하며, 그렇다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숨은 독립운동가에 대뜸 그녀의 복수를 대신한 의열단이라니! 멋들어진 분장과 활약과 액션 사이를 메꾸는 서사가 치밀하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는 의열단의 무장독립투쟁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으로 평가된다. '조국과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참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혈지사를 규합하여 적국의 군주 이하 각 대관과 일체의 관공리를 암살해야 한다. 끊임없는 폭력만이 국가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마침내 조국 광복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취의 시간은 많은 의열단원들의 체포와 죽음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동지들의 잇따른 죽음은 의열단장 김원봉으로 하여금 개인적 테러가 아닌 무장투쟁으로서의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물론 1920년대 의열단과 김원봉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당국자들과 친일파 지주, 자본가들에게는 최대 공겁의 표적이었으며, 2,30대 젊은이들한테는 민족해방의 상징적 존재'(님 웨일스가 만난 장지락이 본 김원봉)였다. 그렇게 1920~30년대의 상징적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몽>이 보여주는 건 과연, 그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그 상징적 존재였을까란 반문을 하게 된다.

어설픈 서사에 멋진 액션으로 채워진 드라마 속 김원봉, 과연 이 사람이 2019년에 되새겨 볼 그 김원봉일까. 차라리 성공도 실패도 한계도 되새겨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 필요한 위인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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