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빙상 코리아'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빙상 전 종목에서 좋은 성적으로 종합 역대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종목은 바로 스피드 스케이팅이었습니다. 모태범이 남자 500m에서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데 이어 이상화가 여자 500m에서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첫 금메달을, 그리고 이승훈이 남자 1만m에서 기적 같은 레이스를 펼친 끝에 금메달을 또 하나 추가하며 한 대회에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들은 올림픽 이후 각종 행사나 언론 인터뷰에 '빙속 3총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쇼트트랙보다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한 한 선수는 그야말로 좌절감을 느끼며 홀로 조용히 귀국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대회 전만 해도 '메달 1순위'로 거론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는 전 대회보다 더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자 500, 1000m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며 아쉽게 메달을 따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후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그는 조용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시 일어서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가운데, 그는 다시 세계 정상을 잇달아 밟으며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로 '한국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이강석(의정부시청)입니다.

▲ 이강석 선수 ⓒ연합뉴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5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4년 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이강석이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강석은 2010-11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와 5차 대회에서 주종목인 500m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해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1차, 2차 대회에서 3위, 2위에 올라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이강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하다 마침내 월드컵 대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통해 스피드 스케이팅이 상당한 관심을 받으면서 당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에 대해서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꾸준하게 '빙속 코리아'의 위상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한 선수를 꼽는다면 바로 이강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월드컵,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메달권 진입을 독차지하다시피 할 만큼 좋은 활약을 펼쳤던 이강석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제외하면 가히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던 선수입니다. 메달을 딴 세 선수, 그리고 베테랑으로서 마지막 투혼을 보여준 이규혁만큼이나 이강석에게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을 법도 했겠지만 '올림픽에서의 노메달' 단 하나의 이유로 그는 그동안 쌓았던 공에 대해 모두 이렇다 할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도 얻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 점이 바로 이강석을 자극했습니다. 이강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올림픽에 미쳐보고 싶다'고 했을 만큼 확실한 목표 의식을 다지면서 허무했던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훈련에 매진하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습니다. 후배의 성장에 더욱 독기를 품은 이강석은 그렇게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렸고, 그 땀은 새 시즌 월드컵 대회 연속 입상, 그리고 우승이라는 '소중한 결실'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강석의 선전이 반가운 것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실패로 자칫 슬럼프에 빠지기 쉬울 수 있는 상황에서 꽤 빠른 시간에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 개인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잠재적인 기대주로만 꼽혔다 동계올림픽에서 스타로 떠오른 '신예' 모태범이 향후 부상에서 회복돼 정상 컨디션을 찾는다면 '이규혁-이강석' 구도만큼이나 꽤 흥미로운 '선의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서 궁극적으로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의 경쟁력 향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4년을 준비하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입장에서는 두 간판의 꾸준한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래서 이강석의 조기 부활이 참 반갑기만 합니다.

아직 이강석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26살입니다. 4년 뒤면 서른 줄에 접어들어 지금보다 더욱 탄탄한 기량과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진 이강석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로 상당한 좌절감과 쓰디쓴 경험을 맛본 그였기에 새 시즌의 부활은 정말 많은 것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당장 다음달, 내년 1월에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노리는 이강석입니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며 꾸준하게 정상급 선수를 유지하며 스피드 스케이팅의 전설급으로 거듭난 '선배' 이규혁만큼이나 더 다부진 각오로 일어서며 다시 아시아 정상, 그리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이강석의 모습을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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