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방통위설치법은 방송독립성을 팽개치고, 오만한 발상만을 담고 있다 -

한나라당이 21일 정부조직법개정안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 내용이 가관이다. 행정부가 방송과 통신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겠다는 속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언론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던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을 취임도 하기 전에 휴지통에 내동댕이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오만하게 권력을 행사할 지, 국민의 눈과 귀를 어떤 방식으로 막을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 이하 언론노조)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직무상 독립성을 갖는 명실상부한 합의제 위원회로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은 노무현 정권이 지난 2007년 1월 국회에 제출한 법안을 거의 원문 그대로 표절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주도로 만들어진 이른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정부법안’은 노무현 정권의 언론관이 반영된 법안이다. 그토록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해오던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행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더욱이 참여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애초부터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아왔던 법률안이다. 방통융합에 따른 이익이 시청자, 이용자, 사업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공무원들의 부처이기주의만 키워주고, 통합을 위한 통합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국무조정실 주도로 밀실에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었다. 내용은 물론 제정절차마저 결함투성이인 법률안을 한나라당이 그대로 표절하는 이유를 이해 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더 이상 언론정책에 관한한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을 얘기하지 말라.

참여정부법안을 본떠 만든 한나라당의 법안은 방통융합의 목적과 본질이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방통융합의 본질은 방송영역에 진입하는 통신 분야도, 기존의 방송처럼 공익성을 중심으로 이용자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이 방송콘텐츠 영역에 들어오는 이상 방송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법안은 이러한 사항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얻은 방송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제도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상임위원 5명 중 2명을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함으로써 합의제 위원회 구조를 ‘무늬만 위원회’로 전락시켰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설치한 저의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합의제 위원회 설치는 위장전술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받는 위원회가 되기 위해서는 상임위원 전원을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 위원 구성부터 철저히 국민 대표성을 구현해야 한다.

한나라당 법안은 방송위원회의 독립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방통융합을 국가발전과 시청자 이익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국가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법안은 방송사 임원 선임이외 방송통신위원회 모든 업무를 국무총리의 행정감독권 아래 두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무색하게 만든다. 방송통신을 권력의 손아귀에 둘 저의가 없음을 나타내는 방식은 간단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모든 업무를 국무총리는 물론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면 된다. 또한, 현행 방송법이 보장하고 있는 위원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보장을 명확히 법안에 담으면 된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예산으로 통제하려는 기도 역시 버려야 한다. 한나라당 법안대로라면 새로 만들어질 방송통신위원회는 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의 예산통제 휘하에 놓이게 된다. 위원회가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부의 예산통제가 얼마나 위원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지는 방송위원회의 지난 7년이 말해준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관리하던 기금을 자체 결정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국고를 지출하는 부분은 기획예산처와 협의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차기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아니면 문화관광부를 위한 정부인가?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면서 문화관광부를 거대 권력으로 만들더니,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한다면서 그토록 악법조항으로 지목되는 법 조항을 그대로 이어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직무상 독립된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면서 ‘방송영상정책과 관련한 사항은 문화부장관과 합의하여야’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차라리 문화부 산하 방송통신위원회임을 고백하라.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영상정책을 행정부가 쥐락펴락하겠다는 저의를 버려라. 그것이 독립성을 보장하고, 방송영상산업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살리는 방법이다. 더불어 문화관광부가 틀어쥐고 있는 방송광고에 관한 업무도 즉시 방송통신위원회로 넘겨야 한다. 방송통신 관련 제 기능을 일원화해야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사무조직 구성원들의 권한과 신분보장은 방송과 통신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무조직이 직무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방송통신위원회 또한 직무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기존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일부 조직이 통합되는 만큼 각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인사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최선의 방안은 구성원들의 요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법안은 제안이유에서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정반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논의는 지난 1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현안이다. 국회에서도 방송통신특별위원회가 구성돼 검토되었던 사안이다. 시민사회단체, 학계, 시청자, 현업단체들이 공공성과 방송독립성을 기치로 현실성 있는 대안들을 충분히 제시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는 더 이상 방송통신융합을 빌미로, 정권 출범을 이유로 급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언론노조는 한나라당이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의 논의에 충분히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더불어 국회가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우리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2008년 1월 2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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